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그 남자가 내대답을 듣고 두 팔을 식탁 위로 올려놓더니 깍지를 끼고 그 위에 자기 턱을 받치는 거야. 무슨 프로파일러가 연쇄 살마를 관찰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번 더물었어. 확실히 전달받은 느낌은
'너 말 잘해라.'
입으로 나온 질문도 그와 같았어.
"다시 한번 물을게 지금 네가 한 거 이상으로 나한테잘할 자신이 없다는 거야?."
난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잘도 해냈어. '더 잘할 수 있지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된다면, 그건 당연한 게 아닐까? 근데 난 당신을 두 번째 만났어. 사랑하고 싶어서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고 그저 당신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더 잘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사기야.'
그렇게 결론을 내고 나도 그 사람과 똑같이 턱받침을 하고 눈은 흘겼지만 입은 웃으며. 말했어.
"떡 주니까 팔 달라고 하고 팔 주니까 잡아먹을라고 하네?. 응 지금은 이게 내 최선이야."
턱받침도 해님달님의 비유도 상황을 풀어보고자한 나만의 유머였는데.. 그게 그리 큰 잘못이었을까?
그의 돌발적인 행동이었어. 실로 그 신속함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거침없고 준비된 거 같았어. 내대답이 끝나자마자 튕겨져 나가듯 손가방과 전자담배를 동시에 들고나가버리는 거야. 이해할 수는 있어. 그의 기준에 나의 최선이 짧고도 부족하다 느끼면 이 만남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 싶다면..그래도
'우린 여기 까진 거 같네 서로 생각이 다르네 좋은 인연 만나길 바라'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나는 당황해서 깍지를 낀 손을 풀지도 못하고 또 짧은 시간에 앞으로 펼쳐질 많은 비참한 내 모습을 장면장면 떠올렸어. 하필 이 남자 차에 있는 내 가방을 찾기 위해 졸졸 주차장까지 따라가서 우산도 없이 부슬부슬 빗속에서 택시를 기다리겠지. 그것만큼은 너무도 싫었어. 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고 동시에 내 곁을 막 스쳐 지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어.
"알겠어요 무슨뜻인지는 알겠는데 잠시만 앉아주시겠어요?"
난 반말과 존대를 섞어 쓰고 있었어 기분이 안 좋을 땐 나도 모르게 존대가 나오더라고.
사랑을 한 번도 못해봤다는 그 정보는 그의 입에서 나온 거지만 그 외의 정보는 사실 많지 않았어 경제상태도 학력도.. 그저 지인이
"남자가 여자 먹여 살릴 능력만 있으면 됐지 안그래? 돌싱도 아니고."
난 그렇지 라는 짤막한 대답을 하고 속으로 생각했어
'돌싱도 나쁘지 않아. 심지어 사춘기만 아니면 아이가 있어도 괜찮아.사람만 좋다면.'
그 정도로 깐깐하게 굴지 않았단 거야. 그렇지만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판단했어. 한밤중에 데이트 중인 여자와 대화 중에 나가버리다니.. 거기서 끝인 거야. 돌이킬 수 없는 거야. 이 사람은 바뀌거나 고쳐 쓸 수 없는 거야. 내가 그의 손목을 잡고 앉히니 그가 기다렸다는 듯 맥없이 자리로 돌아와 앉았어.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송아지 같은 눈망울을 껌뻑거리는 거야. 그 사람은 장거리에서 운전을 하고 와서 근처 호텔을 잡은 상태였어. 내가 말해.
"미안해요 그동안 시간낭비 하게 해 드려서. 푹 쉬다 가세요 여기까지 제가 계산할게요. 죄송하지만 뒷자리에 제가방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그건 해주실 수 있죠?."
여기서 잠깐 그 남자가 날 소개받고 나의 첫 소설책을 사고 읽었다는것에 감동해서 그 책에 캘리그래피를 해주려고 준비해 둔 준비물과 감사의 편지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이 하필 그의 차에 있었어.
그걸 들고 가게 할 순 없더라고. 그러자 그 남자는 자다가 봉창뚜드리냐는 표정으로 잠시 쳐다보더니 "그냥 가겠다고?"라고 묻는 거야. 너무 황당해서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어. 방금 내가 잡지 않았으면 그대로 차에 앉아서 대리를 부르고 나는 그대로 택시 잡아가야 하는 상황 아니었냐고 물었어. 그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어. "그랬겠지." 점점 더 복장이 터지고 어이가 없어지니 표정도 관리가 안 됐겠지? 그때 불쑥 코앞까지 손을 내밀면서 한마디 하는 거야. "우리 화해하자."
어떻게 생각해? 화해했어야 했나?
질문이 하나 더 있어 첨부한 사진이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의 내 옷차림이야. 이게 문제였을까? 첫인사가
"왜 이렇게 치마가 짧아?"두 번째 첫인사는
"홀 딱 벗고 나왔어?."였거든. 물론 나도 땍땍 거렸지 내 스타일이다. 짧다해서 청바지 입었더니 이 날씨에 뭘 입으라는 거냐. 근데 난 스타일도 내 일부라고 생각하거든. 게다가 내입장에선 그 성의 없는 옷차림도 작은 키도 민머리도 다정한 말 한마디로 다 덮었는데. 그에겐 내 스타일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 그리 쉽게 자리를 뜰 수 있었나? 그는 그 후로 한 시간가량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뜨려놓으며 나를 잡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접혔지.. 소름 끼치는 건 단호한 내 표정을 보고 방금까지 절절매던 남자가 처음 보는 낯선 표정으로 한마디 하더라.
"계산한다며?."
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씨!
당신은 모르나 본데 당신 사랑해 봤잖아. 심지어 지금도 열렬히. 당신 자신만을.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해서 아무것도 양보하기 싫고 가슴에 작은 상처라도 날까 봐 그리도 빨리 도망 다니는 거야.
그냥 난 당신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 초라하게 비를 맞고 돌아온 나 역시.. 우리에게 부족했던 건 이해심만은 아니었던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