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하수희 Dec 26. 2024

4 그녀의 어떤 사랑

쓰레기는 나였어

그래 쓰레기는 나였어.
그럼 물어볼게.

어떻게 하면 차가운 바다위에서

판자 떼기 하나를 붙잡고 둘 다 살아남을 수 있어?
타이타닉의 잭의 선택에 대해서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그 사람은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처럼 나를 판자 위에 올려놓고 자기는 바다 멀리 떠나갔어. 침몰은 아니야 영화에서도 잭이 가라앉긴 했지만 죽었다는 직접적인 묘사는 없잖아? 그도 나를 밀어주고 떠나간 거지.

우리는 지쳤어.

삼층짜리 단독주택에서 투배드 아파트로, 포르셰에서 벤츠로. 마지막에는 에어컨도 설치되지 않은 빌라에 BMW중고차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후져 보이고 싫증 나지 않았어.
단지 깨달았지.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어느 날 우리는 베니스 비치를 걸었고 길거리에 1.99달러짜리 인형들 앞에서 걸음을 멈췄어.

어찌 보면 섬뜩해 보일 수 있는 특이하고 묘한 분위기의 인형들이 아무렇게나 바구니에 엉켜있었지.
나는 사고 싶었고 그는 기분 나쁘다며 말렸어. 인형이 무슨 계기가 됐을까 마는.. 신기하긴 해.
나는 굳이 굳이 고집을 부려 그 인형을 사 왔고. 그는 내내 못마땅해했지. 그저 인형일 뿐인데
그렇게 까지 못마땅해하는 것도 그답지 않긴 했어.
그렇게 인형을 내 머리맡에 두고 잔 다음날 기적과도 같은 일이 생겼어.


한국에서 알던 사람이 미국에 와서 유명한 프랜차이즈를 차릴 건데 그 식당에 매니저를 맡아달란 부탁이었지. 한국인으로 팀을 꾸려준다면 꽤 큰돈을 보상으로 선 지급 해준다는 이야기도 있었어.

나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단숨에 일은 진행됐고 나는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고 직장이 생기고 좋은 일들만 생기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보고야 말았지. 

출근준비를 하고 나오는데 베니스비치에서 사온 기분나쁘다고 사지말라던 인형들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빌고 있는 그를 봤어.
“내가 잘못했다 내 일도 좀 잘 풀리게 해 줘 부탁이야.”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나는 못 본 척했지만.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 인형은 십오 년이 지났지만 버릴 수가 없어 아직도 가지고 있어.

왠지 버렸다간 큰 화를 당할 거 같은 웃어넘길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밑에 삼총사 그때 그 인형이야.


문제는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한국에서 온 프랜차이즈 사장은 나랑 오래 알고 지낸 나를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었어. 그렇기에 초특급의 제안을 해주었을 거라 생각해.
같이 일하면서 나도 그 사람에게 그전에 느낄 수 없었던 카리스마나 열정적인 모습을 봤어. 지금 찌그러져 있는 내 남자친구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고 그러니 그가 더 남자로 보이게 되더라고.

나에게 돌을 던져. 어쩔 수 없지 맞아야지. 하지만 이별을 말한 건 내가 아니었어.
누구도 아니었지.

나는 어느 날 그 사장에게서 에르메스 백을 선물 받았어. 거절했지. 너무 비싼 선물이었고 그런 선물을 그냥 받는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선물을 받는다는 건 그의 마음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의미잖아?

선물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며 그 일을 이야기했어.
“오빠 내가 어느 날 에르메스백을 들고 오면 내가 바람 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를 버려.”
워낙에 좁은 동네라 오빠도 나와 그 사람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어.
그날 그 사람은 별 이야기 하지 않았어.
다음날 편지를 써놓고 그가 나갔어.
-미안하다. 오빠가 꼭 너 데리러 올게.-
그는 도망치듯 나를 떠났고 나의 원망은 길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벌킨백을 받았지.
그렇게 다른 사랑이 시작된 거야.
환승인 건가? 바람인 건가?

결국 쓰레기는 쓰레긴 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