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 구둣발로 들어선 그가 나를 던지고, 목 조르고, 따귀를 때리고 자신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치려 필사적으로 휘청거리며 네발로 기어 다니는 헐벗은 내 모습을 어떤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와 살다시피 한 3년 동안 수없이 보아왔던 그 표정.
미간을 모으지도 눈썹을 들어 올리지도 않는다.
칼날 같은 턱선에 근육하나 잡히지 않는다.
짙고 깊은 눈동자가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저 내려다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저 내려다보던 그도 곧 알아차렸다 내 고막에서 흐르는 액체를 보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
그곳은 범죄자들에게 한없이 관대하며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범죄에 대해 무지했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그곳은 온 세계를 통틀어 여자를 보호하는 법이 가장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을법한 "미국"이었다.
이 사람이 진정 싸패라는 것이 점점 더 명확해지는 순간이 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번쩍이는 슈트차림으로 자기 옷매무새만 고치던 그가 한쪽귀만 부여잡고 울먹이던 내게 다가와 갑자기 무릎 꿇었다.
시간은 새벽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수희야 미안해 오빠가 미안해 실수였어. 네가 갑자기나를 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손이나 간 거야 미안해."
들을 수 있었다 두개골을 관통하는 바늘 같은 이명 속에서도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생생히 전달됐다.
그러나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엉켜서 무엇부터 풀어내야 할지, 그보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왜? 이 사람 왜? 911을 부르지 않지? 왜? 아프냐고 어디가 어떠냐고 묻지 않고 변명을 하고 있지? 왜?.'
같은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우리는 일 년 전 뜨겁고 아름답게, 모든 이들의 축복과 시기 질투를 받으며 요란하게도 사랑을 시작했다.
그날 그것은 첫 폭력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그의 언뜻언뜻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우연히 뒤적이던 구글 사진파일들 속에 지나간 사랑들과의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의문의 카톡 캡쳐본을 발견하게 된 순간부터였다.
나의 가장 아름답던 시절, 그의 가장 빛났던 그 시절 우리는 만나 캘리포니아의 태양 그 아래서 그보다 뜨겁고 찬란하게 사랑했었다.
그러나.. 내가 잊지 말자, 또 당하면 안 돼! 정신 차리자. 그렇게 다짐하고 저장했던 수많은 카톡과 문자들.. 녹음파일.. 그것은 공개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처절했다.
그 속에서 나는 계속 살려달라 빌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 모든 걸 다 잊고 좋은 기억만 남겨둔 거냐?
이 머저리...
십년이 지나도 잊지말자고 이렇게 간직하고 있었잖아 이 바보야
그가 빌듯이 말했다.
"자고 일어나서 한국병원 가자 제발 부탁할게 오빠한 번만 살려주라."
그때 복잡하게 엉켜있던 머릿속 실타래가 단숨에 흩어져 정리됐다.
'아! 여기 미국이지! 내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해도, 응급실에 가서 내 실수로 다쳤다는 거짓말을 해도 그냥 넘어가줄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이지. 그는 어쩔 수 없이 중형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보석금을 내고 나온다 해도 액수도 상당할 테고 며칠은 차가운 교도소에 처박혀있어야 할 것이다. 그게 두려워서 목소리가 떨린 거였어.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내 걱정 때문이 아니었어.!'
그럼에도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해 줬다.
실수? 였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홧김에 헤어지자 내뱉은 내 말에 어쩔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가 수갑을 차고 외국인 죄수들과 갇혀 지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아침에 한국병원을 갔다. 고막의 3분의 2가 찢어졌다. 난 그곳에서 수술이 아닌 시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으려 미국 병원에 가면 그곳에서도 자동으로 경찰에게 리포트를 올려야 한다. 그게 미국이다.
난 그를 위해 내 몸을 또 희생했다. 그때의 부작용은 십 년이 넘은 지금 아직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