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수 Jan 24. 2023

나는 게으른 걸까, 아픈 걸까?

답: 둘 다



어떤 하루를 써 보겠습니다.


오후 두 시에 일어납니다. 작은 원룸이라,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상에 올려둔 컴퓨터가 보입니다.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웹서핑이며 게임을 하다 보니 금세 네 시가 됩니다. 배가 고파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습니다. 할 일은 있어요. 하지만 할 일을 잠깐 떠올렸다가도 도망치듯 다시 인터넷과 게임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갑니다. 마음 한편에 불안하게 자리하고 있던, 할 일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부상합니다. 오늘 밤을 새워서 할지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할지 고민되기 시작합니다. 늦게까지 해야겠다 생각하고는 맵고 짠 야식을 시켜 먹습니다. 음식을 먹고 바로 자면 안 된다고 했으니까 잠시 게임을 합니다. 소화가 될 때까지만요. 어느덧 새벽 세 시가 됩니다. 더 앉아 있어도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요. 내일(이미 오늘이지만) 일찍 일어나서 하겠노라고 계획을 변경한 뒤 잠듭니다. 오늘 아무것도 못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내일 일찍 일어날 테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다음날, 다시 오후 두 시에 일어납니다.



이게 누구 얘기냐면... 대학교를 다닐 때의 제 얘기예요. 이 시기의 저는 원룸에 살았는데, 이불 주변으로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쓰레기 소환진에서 사람이 소환된 것처럼요. 저와 연락이 안 되니까 동기나 친구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집에 없는 척 숨을 죽였습니다.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어지다 못해 집 앞 편의점에 가는 일도 힘들어졌어요. 싱크대에 쌓인 그릇은 설거지를 한다고 해서 다시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썩어가는 중이었고요. 모두가 내게 실망하고 나를 포기했으리라는 상상이 확신이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예전처럼 찢어지게 가난했다면 이렇게 게으름 피울 틈도 없었을 텐데, 먹고 살만 하니까 이런다'는 자책도 고개를 듭니다. 그런데 또 넉넉한 것도 아니예요.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내고, 학기 중에 쓸 돈은 방학 때 벌어 둬야 하는 형편인데도 이렇습니다. 장학금을 타려면 성적이 나와야 하는데, 역시 정신을 못차려서 이런다는 생각이 들죠.


좋아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요, 움직이기 싫은 것도 맞습니다. 정신건강이 좋을 리 없습니다.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관계를 파괴하는 행동도 더러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채 잠수를 탔습니다.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쌓이지만, 메시지 숫자를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워서 핸드폰을 싱크대 하부장에 넣어버렸습니다. 항상 위가 아프고 신물이 올라왔습니다.


이미 학사경고도 한 번 받았습니다. 방학 때는 알바라도 했는데 학기 중에는 어김없이 이런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이 상태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우울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질환 때문에 이렇다고 하자니 회피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차라리 정신질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가 진단 척도를 체크하면서 '병원 방문 요함'이 나오면 묘하게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는 가설도 설득력이 높죠. 그래서 각종 자기 계발 영상과 글을 찾아봅니다. 이쪽이 좀 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 같기도 해요.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나와서 백 퍼센트 효과가 있는 방법이라고, 이 방법을 쓰면 너는 성장할 거라고(혹은 이 방법을 안 쓰면 남들보다 뒤처진 쓰레기가 될 거라고) 말해 주잖아요. 저는 여러 조언들을 모아서, 머릿속에 이런 모습을 그립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난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다. 시리얼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제 시간에 강의에 가고,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은 뒤 카페에 가서 과제를 한다. 밀린 연락은 오늘 꼭 답장한다. 저녁에 유산소 운동과 요가를 한 뒤 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든다.



자기 계발의 서막처럼 보이죠. 미루는 습관, 게으름을 고치는 방법이 이어질 것 같고요. 하지만 덧붙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정신과 약을 먹은 적이 있고, 자해 문제가 있었고, 자살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별반 나아지는 게 없다는 생각에, 그리고 복용을 곧잘 까먹는 바람에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예약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병원을 가는 날도 점점 줄어들었고요. 저는 '내일'부터 저 '계획'을 실천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죠. 결연한 다짐이 무색하게도 저는 다시 오후 두 시에 일어납니다.


저 시기의 저에게 필요한 건 대체 뭐였을까요? 의지력? 노력? 상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용할 방법도 달라질 겁니다. 그런데 어쩐지 '정신질환'과 '게으름'이라는 길은 갈림길처럼 보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고려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같죠. 그런데 두 길은 사실 하나였어요. 저런 상태를 여러 번 반복해 겪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높은 불안

양극성 장애의 우울 삽화

게으름(정확히는 게으르게 사는 패턴)

ADHD

부적응적으로 자리 잡힌 루틴



이 다양한 원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가 바로 저 상태였습니다. 정신질환 탓을 해야 하는 것도 맞고,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맞았어요. 같이 해야 하는 거였습니다. 물론 상태가 너무 지나치지 않다면 의지와 노력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상황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할 거고요. 누구에게나 저런 시기는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고 기간이 길어진다면 정신과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병원 좀 가라

먼저 병원에 가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안 간다고 하면 제가 세수를 박박 시키고 손수레에 실어서라도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일 겁니다. 누운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는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뇌가 삐끗해서 그렇다고요. 그렇게 한 달 혹은 몇 달쯤 약을 챙겨 먹이다 보면, 저는 "약 먹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멍해. 역시 안 먹어야지" 같은 소리를 할 겁니다. 하지만 이게 맞죠. 드디어 '생각만' 많은 상태에서 탈출할 때가 됐습니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현실과 동떨어지는 특징이 있거든요. 불안도 약으로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불안할 때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행동들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바로 뭐가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손떨림이나 두근거림, 식은땀, 속 쓰림, 호흡곤란 같은 신체적 변화를 '증상'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다음에 해주고 싶은 얘기는 이겁니다.




일상을 만들자

당시의 제게 일상이 없었다는 건 아닙니다. 오후 두 시에 일어나서 게임만 하다가 새벽 네 시에 자는 것도 일상은 일상이죠. 여러 방면에 지장을 주는 부적응적인 형태였을 뿐이에요. 그렇게 살아도 문제가 없다면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그런 삶의 형태가 만족스럽다면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수업 출석이나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고립되는 중이었고, 매일매일 조금씩 자신이 싫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상이 필요했습니다. 비교적 건강한 수면, 식사, 운동, 사회적 접촉을 포함한 일상이요. 이렇게 생긴 일상을 만드는 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관적인 일상, 즉 루틴이 그 자체로 정신건강의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은 지지대 역할을 한다. 기분에 기복이 생기더라도 생활에 지장이 덜 가도록 할 수 있다.

일상이 깨질 정도로 기복이 생긴다면, 일상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반복적인 일상 자체가 기분의 기복을 줄인다.



정신과 진료 때마다 의사 선생님들이 묻는 질문이 일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 아닐까요? 물론 일상은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신건강이 쉽게 나빠지는 기질을 타고났다면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상이 춘권피보다 쉽게 깨지거든요. 하지만 잘 잡힌 일상은 잠시 미친 짓을 하고 있을 때 돌아갈 곳이 되어 주고, 큰 사고를 막는 데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살면서 갑작스러운 사고가 닥칠 때도 물론 있지만, 작은 균열이 모이다가 와르르 붕괴하는 상황이 더 많으니까요. 일상을 지키는 건 균열을 그때그때 보수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저는 좀 더 자주 보수해야 된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죠.


여러분은 '회복'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시간'을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간다는 인상을 받아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어느 시절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아갈 상태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러기에 가장 좋은 때가 정신과 약의 부스트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심리상담도 병행한다면 더 좋을 거예요)


일상을 만드는 건 어떤 '성취'를 이루는 일은 아니기에 재미도 없고 지루하지만, 보람이 없는 일은 아닐 겁니다. '돌아갈 곳'이 생긴 사람은 그만큼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거든요. '안정'이란 있고 없고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빨간불 파란불처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땅따먹기에 가까워요. 내 상태에 다양한 원인이 있음을 알고, 통합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안정'이 차지하는 땅이 점점 넓어져요. 어차피 불안정은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도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하지만 안정의 비율이 높아지면 그 불안정함이 있다는 사실에도 덜 흔들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는 게으른 걸까, 아픈 걸까?"에 대한 답은 "둘 다"가 되겠습니다. 제가 인정하기 싫어도 그랬습니다. 정신질환과 게으름 중 어느 한쪽만이 답이길 바라는 마음은 오히려 도피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이 글의 자매품으로 "나는 성격이 더러운 걸까, 아픈 걸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했어요. 현재의 저는 여전히 불안정의 비율이 살짝 높지만, 평생을 통틀어 가장 안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11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고, 삼시 세 끼를 먹고, 러닝을 하고, 출퇴근을 하고,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요. 익사이팅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지만, 안전함 안에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하루가 지나갑니다. 어제의 나를 증오하거나 탓하는 날이 줄었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이런 날이 올 거라 말한다면 아마 못 믿을 겁니다. 네가 '회복'해야 할 상태가 미래에 있다고 말하면 더 안 믿겠죠. 하지만 그래도 다시 말해주고 싶어요. 병원에 꾸준히 다니고, 일상을 잡으라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지금부터 한번 해보라고. 그렇게 한 결과가 썩 나쁘지 않다고.






이전 01화 사용하기 전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