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희곡
창작 희곡 단편집
등장인물
민서 : 23세 약대 4학년
유진 : 23세 최연소 변호사
준호 : 25세 약대 4학년
무대 중앙. 작은 원목 탁자. 의자 두 개.
우측 : 작은 책장과 스탠드 조명
좌측 : 낡은 2인용 소파.
후면 : 창문 모양의 프레임.
3장 중간 점검
조명, 차가운 흰빛, 책상 위 스탠드 조명.
원목 탁자 위 스탠드 조명.
음향, 빗소리 + 시계 초침소리 (느리게)
밤 11시, 거실. (민서는 노트북으로 강의 듣고 있고, 준호는 책상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다. 방 안은 조용하다가, 냉장고가 갑자기 윙— 소리를 낸다.)
민서 : (귀를 막으며) 아, 진짜... 냉장고 소리 너무 커. 공부에 집중이 안 돼.
준호 : (고개도 안 들고) 그거 어제도 말했잖아. 냉장고 뺄 수는 없다고. 음식 다 상해.
민서 : (짜증) 그러니까. 아예 끄자는 게 아니라... 공부할 땐 잠깐이라도 꺼두면 안 돼?
준호 : (한숨) 지금 우유, 인슐린, 비타민 다 들어 있는데. 그건 좀... (준호, 조용히 문제집을 덮는다.)
30분 후. (민서는 컵라면을 먹고 있다. 준호는 커피를 내리려 한다.)
준호 : 또 라면? 요즘 배달 아니면 라면이네?
민서 : (건조하게) 공부 때문에 끼니 챙길 여유가 없잖아.
준호 : 근데 그 생활비 정산은? 저번 달 것도 아직 안 했는데?
민서 : (짜증) 또 돈 얘기야?
준호 : 아니, 공평하게 하자는 거지. 저번 배달도 내가 다 결제했잖아.
민서 : 커피값으로 퉁 치자니까. 그렇게 따지면 나도 빨래 세제 샀잖아.
준호 : (조용히) 그건 서로 쓴 거지.
민서 : (단호히) 그럼 다음부터 각자 밥 먹고, 각자 냉장고 칸 쓰고, 각자 청소해. 깔끔하게.
(준호는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내리며, 뜨거운 김이 천천히 올라온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다음날 아침.
(유진이 탁자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민서와 준호는 소파 양쪽에 앉아 있다.)
유진 : (기록을 읽으며) 자, 중간 점검 회의 시작합니다.
첫째, 감정적 충돌 : 감소.
둘째, 스킨십 빈도 : 안정적.
셋째, 연락 패턴 : 일정.
준호 : (씁쓸하게) 너무 완벽하네. 사랑이 아니라 무슨 KPI 보고서 같아.
민서 : 그래도 불안하진 안잖아. 우리 처음엔 많이 싸웠잖아.
준호 : 긴장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지는 거야. 긴장감이 없는 사랑은 예의상 잡는 빈손 악수 같은 관계지. 무미건조한 관계야.
(민서 고개를 떨군다.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명 아래로 한 걸음 나간다.)
유진 : 다들, 웃겨. 한 명은 감정을 계산하고, 한 명은 계산을 감정으로 느끼고. 둘 다 맞는데, 그래서 안 맞아. (잠시 정적. 유진이 관객 쪽으로 몸을 돌린다.)
유진 : (독백) 관계는 계약보다 어려워요.
계약은 파기할 수 있지만, 기억은 삭제가 안 되거든요. (스탠드 조명만 남기고 전체 조명 어둡게. 빗소리 점점 커진다.)
4장 유효기간 만료
조명, 차가운 푸른빛. 창문 뒤엔 비 내리는 영상 투사, 음향 : 시계 초침 소리 점점 커짐. 멈춤.
(민서 홀로 앉아 있다. 계약서가 탁자 위에 있다. 준호가 조용히 들어온다.)
준호 : 오늘이야. 우리 계약 만료일.
민서 : 응. 이상하게 후련해.
준호 : 나는 아니야. 매일 시계를 보며 끝을 기다렸어. 그게 벌 같았어.
민서 : (조용히) 그래도 싸우지 않았잖아. 계약 덕분에.
준호 : 그게 슬픈 거야. 우리를 붙잡은 게 사랑이 아니라 조항이라서.
(문 열림 소리. 유진 등장. 봉투를 들고 있다.)
유진 : (조심스럽게) 나, 해지서류 가져왔어. 둘 다 서명하면 공식적으로… 끝이야.
준호 : (웃음 섞인 분노로) 이제 사랑도 문서로 끝나네. 내 기억 속 어디엔가는 결제 내역처럼 남겠다.
민서 : (조용히) 이건 예의야. 우린 끝을 약속했으니까. (잠시 정적. 유진이 두 사람 사이에 앉는다. 조명이 세 사람만 비춘다.)
유진 : (진지하게) 민서야, 법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도 있어. 그건 기한이 아니라 의지로 끝나는 거야. 사랑도 그래.
(준호가 계약서를 천천히 찢는다. 종이 찢는 소리, 스피커로 확대.)
준호 : 이건 그냥 종이야. 사랑에는 계약서 같은 거 없어. 난 안 믿어.
민서 : 이건 아니다. 다 끝났어도. 계약서 내가 찢어도 되냐고 물어봤어야지. 그게 나를 사랑하는 거지. 오빠는 나보다 오빠 생각이 더 중요하네? 궁금해서 그러는데 오빤 내가 어디가 좋은 거야?
준호 : 그걸 몰라서 물어? 당연히 다 좋지.
민서 : 그렇게 공처럼 둥글게 이야기하지 마. 어제 김밥 먹자고 할 때 나는 김밥 속에 당근, 시금치, 우엉, 노란 무, 참치 들어간 거 좋아한다고 한 거 기억나? 그렇게 자세하게 말해봐. 그 사랑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준호 : 넌 무슨 약 조제하니? 사랑에는 이유가 없는 거야.
밤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아?
장미꽃은 왜 피는지 알아?
나는 자기를
사랑하도록 태어난 거야.
세상의 꽃들이 태양을 향하듯
하늘의 별들이 우리를 향하듯
나는 자기를 향하도록 태어난 거야.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
유진 : 준호 씨 멋진 말도 할 줄 아네? 계약 기간은 오늘 끝났고, 연장은 서로 동의하에 결정한다. 알지? 준호 씨는 계속? 민서는?
민서 : 우리 엄마가 남잔 다 누구 같다더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다 똑같아. 계약 연장 하려면. 내가 좋은 이유 3가지만 이야기해 봐. 그럼. 나도 인정.
준호 : 세 가지만 말해야 돼? (민서 눈치 봄) 알았어. 첫 번째 민서의 자립적인 정신이 좋아. 용돈도 하나 안 타고 직접 과외해서 다 벌잖아.
두 번째 민서가 엄마 생각하는 거 보면 정말 사랑이 깊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서 좋아. 나까지 사랑받는 거 같단 말이야.
민서 : 뭐래?
준호 : 세 번째 운동도 꾸준히 하고, 사랑할 때도 진심을 다하는 열정이 너무 매력적이야. 너랑 있으면 나까지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
민서 :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왜 공처럼 이야기하고 그래? 나 헷갈리게. 내가 오빠 사랑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있었겠어?
유진 : 두 사람 그럼. 기간이 없는 계약 한다는 거지? 구두 계약도 계약인 거 알지?
민서, 준호 서로 다가가 꼭 안는다.
밝은 재즈 피아노 음악 흐르고, 조명 밝은 색.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