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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희곡 - 혼자가 힘들 때 1~3회/7회

창작 단편 희곡

by 원윤경

창작 희곡 단편집

등장인물
한필수 (39세) : 장수 아빠, 미군부대 군무원.
서현식 (42세) : 큰아빠, 영세 두부공장 주인
파주댁 (40세) : 큰엄마, 서현식의 아내
한장수 (8세) : 한필수의 아들
김은정 : 한장수와 같은 미술부 친구

잠시 등장인물
아이 1,2,3
메리 중위 : 미군 여성 장교, 자원봉사자
정 선생님 : 한국인 교사, 통역 맡음
어린 한필수 : (9세)

1장 만남
무대 가운데 가로 큰 평상, 뒤에는 '현식이네 두부' 간판 아래 콩나물, 계란. 잡화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있다. 좌측은 학교. 우측은 장수네 집, 작은 평상 놓여있다.

(한장수, 무대 중앙에서 평상 앞으로 나온다.)


한장수 (내레이션)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한장수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작고 예쁜 노란색 분홍색 꽃이 만발하던 4월 끝자락 즈음. 미군기지 담벼락 가까운 허름한 두부집 앞 (평상을 가리키며) 이곳. 평상 위에서 발견되었다는 거 외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부터 8년 전이었어요...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지면서 한장수 나가고 한필수 무대 가운데 등장.

한필수 : 형님. 저기. 평상 위 좀 보세요.
(한필수의 다급한 소리에 서현식 놀란 눈으로 가게 안에서 나온다. 뒤따라 파주 댁도 나온다.)

서현식 : 새벽부터 뭐가 있다는 거야?
파주댁 : 아니 새벽부터 무슨 난리가 났어?
한필수 : 애기가 있어요. 애기가.
파주댁 : (깜짝 놀란다) 아니 이게 무신 일이래. 어머나 여보. 얼른 주전자에 물 끓여요. 애가 배가 고파서 그런지 울지도 못하고 있네.

한장수 (내레이션)
저는 그렇게 세상에 왔고, 미스터 한을 아빠로 동네 두부집주인을 큰아빠로 파주 댁을 큰엄마로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 이름은 한필수. 미군 부대에서 간판 고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제 이름은 한장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죠.

아버지는 황해도 금천군 강북리가 고향이신데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부모님을 따라 피난을 내려오셨어요. (한장수 퇴장.)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짐. 평상 뒤쪽 '개성', '한탄강'. '38선' 표지판 세워져 있다. 중간중간 총탄 소리. 찬 바람 소리. 무대 왼쪽에서 우측으로 끝없는 인파 줄지어 피난길 떠나는 모습.

한필수 부 : (앞만 쳐다보며 등에 짐보따리. 양손에 보따리) 보따리 꼭 잡고 따라오라우.

어린 한필수 : (손이 꽁꽁 얼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는지 놓았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들고 있는 짐 보따리 끝을 겨우 잡고 끌려가듯 힘들게 따라간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아부지, 손이 얼어서 잡을 수가 없어요. 앞이 안 보입니다.

한필수 부 : 앞만 보고 걸어라우.
어린 한필수 : 너무 추워요. 너무 추워. 손에 감각이 없어요.

무대 중앙. '한탄강 표지' 앞에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얼음판이 깨지는 소리가 난다. 순식간에 사람들 흩어지고 짐 보따리 끝을 놓친 어린 한필수. 가족을 잃어버린다.

어린 한필수 : (아무도 없다. 혼자 쓰러져 있다가 상반신 일어난다. 이불 등짐은 옆에서 뒹굴고 있다.) 아부지~

조명 어두워지고, 한필수 뒤쪽에서 있는 한장수 비춘다.

한장수 (내레이션)
저희 아빠는 한탄강 얼음판 위에서 그렇게 전쟁고아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동두천 천사 보육원에 맡겨졌습니다. 보육원은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2장 보육원
무대 조명.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진다. 두부집 대신 '동두천 천사 보육원'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한필수, 순이, 아이 1. 평상에 옆으로 쪼르륵 앉아 있다. 김 선생님 옆에 서 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 조명 밝게. 칠판에는 분필로 HELLO, GOODBYE, THANK YOU.라고 쓰여 있다. 메리 중위 들어온다.

정 선생님 : 얘들아, 메리 선생님이 오셨어요. 인사드리자.

아이들 : 굿~ 모~닝!

메리 : (밝게 웃으며) Good morning, children Today, we learn English!

아이 1 : (작게 속삭임) 또 잉글리시야…
한필수 : 조용. 메리 선생님 듣겠어!

메리 : (장난스럽게) I heard that! (웃음)
Okay, everyone. say after me. I’m hungry.

아이들 : 아임 헝그리!
정 선생님: (웃으며) 선생님, 아이들 정말 배고프대요.

메리 : (장난스럽게) Then study fast. and eat soon! Next. “Goodbye.” Say it together.

아이들 : 굿바이!
한필수 : 선생님, “Goodbye”는 언제 써요?

메리 : When someone goes away.
저 가요… 할 때.

한필수 : (조심스럽게) 그럼… 친구들하고 헤어질 때도 “굿바이”예요?

정 선생님 : 그래, 맞아. 굿바이… 다시 만날 때까지.

메리 : (조용히) Yes. In English, “Goodbye” means… “See you again.” 다시 만나요.

(한필수의 눈이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 선생님 : 자, 이번에는 노래 따라 불러요~
조명 따뜻하게 변함. 메리 중위가 손뼉을 치며 노래를 시작한다.

메리 :
Hello, hello, hello how are you?
Hello, hello, hello how are you?

I good. I great. I wonderful.
I good. I great. I wonderful.

아이들 : (웃으며 함께 따라 한다.)
Hello, hello, hello how are you?
Hello, hello, hello how are you?

I good. I great. I wonderful.
I good. I great. I wonderful.

한필수 : 아임 파인! (기쁘게 외친다)
메리 : (웃으며) That’s right! I’m fine!

아이들 웃으며 따라 한다.
정 선생님 : 전쟁은 아이들의 웃음을 빼앗지만 우리는 웃음을 돌려줘야 해.

한장수 (내레이션)
보육원은 외국인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굶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아빠는 보육원 생활을 하면서 어깨너머 배운 영어로 19살 때 보육원 근처에 있는 미군 부대에 취직도 할 수 있었습니다.


3장 사단 마크

한필수 : (미군 전투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한 손에 페인트, 한 손에 붓을 들고 머리에 군인 모자를 쓰고 좌우로 움직이며 무대 우측에서 좌측으로 자신 있게 걸어간다.)


한장수 : (내레이션)

아빠는 10년 동안 꾸준히 돈을 모아. 마을이 끝나는 산 초입에 자리한 방 두 칸짜리 집도 샀습니다. 그 집이 두부 만드는 큰아빠의 가게와 가까워 두 분은 자연스럽게 형님 동생하며 지내게 되셨답니다.

무대.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무대 가운데 평상, 뒤에는 '현식이네 두부' 간판 아래 콩나물, 계란. 잡화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있다. 한필수, 서현식 평상에 앉아 이야기한다.

서현식 : 필수야.
한필수 : 네, 형님. 왜요?
서현식 : 우리 두부 가게 벽에 그림 그려 놓으면 어떻겠어? 걔들 이 길로 많이 지나다니는데. 그림 좋아하잖아.
한필수 : 그림 그려 놓으면 좋은데 무슨 그림 그려요?

서현식 : 미군 애들은 자기네 사단 마크 좋아하니까. 어때?
한필수 : 그런 생각을 다 하시고 역시 주임 상사님이십니다. 난 왜 그 생각 못했나 몰라. 제가 내일 쉬니까. 내일 해도 될까요?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한필수 : (사단 마크 그림이 그려진 판넬을 들고 나와 플래카드 옆에 세운다.) 어디 보자, 형님 나와 보세요.
서현식 : 좋아. 아주 멋져. 인디언 모습. 살아있네.

미군 1 : (우측에서 등장. 사단 마크 그림 보고.)
Oh, I like this division emblem design.
이 사단 마크 그림 좋아요. 혹시 이런 것들 필요하면 놓고 갈게요.

(담배, 양주, 초콜릿, 야전잠바. 평상 위에 올려놓고 서현식과 인사하고 사단기 그림을 보고 엄지 척을 보이고 좌측 퇴장.)

서현식 : 야전잠바 입어 보고 벗어서 이상 있나 없나 이리저리 쳐다본다.

한장수 (내레이션)
야전잠바는 인기가 많았어요. 당시 미군이 주고 간 물건들은 나라에서 판매가 금지된 것들이라 몰래 팔았죠. 야전잠바 같은 경우에는 검은색으로 물을 들여 입었는데 가난했던 시절 추운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멋쟁이 옷으로 통했기 때문에 없어서 못 팔았죠.

아빠와 지낸 지 8년. 꽃피는 봄날. 저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한 학년에 두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였어요.


4~5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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