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희곡
창작 희곡 단편집
등장인물
한필수 (39세) : 장수 아빠, 미군부대 군무원.
서현식 (42세) : 큰아빠, 영세 두부공장 주인
파주댁 (40세) : 큰엄마, 서현식의 아내
한장수 (8세) : 한필수의 아들
김은정 : 한장수와 같은 미술부 친구
잠시 등장인물
김상민 : 1학년 1반 친구
아이 1,2,3
메리 중위 : 미군 여성 장교, 자원봉사자
정 선생님 : 한국인 교사, 통역 맡음
어린 한필수 : (9세)
경찰 1,2
4장 장수의 학교 생활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한장수.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오른쪽 가슴에 1학년 1반 한장수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등에 가방을 메고 무대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무대 왼쪽에서는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고 무대 가운데서는 남자아이들은 딱지치기를 하며 놀고 있다.
한장수 : 어, 1-1반? 우리 반 애들이네. 딱지치기하면 내가 안 빠지는데. 얘들아 나도 같이 놀자.
아이 1 : (장수를 한번 쳐다보더니) 야 제 무당집에 사는 애 아니냐? (다시 자기네끼리 논다)
한장수 : (가방에서 딱지를 꺼낸다) 나 딱지 많아. 나도 껴주라.
아이 1 : 저리 가~ (아이들 계속 자기네끼리 논다)
조명 어두워지고 한장수 객석을 쳐다본다.
한장수 : (내레이션)
저희 집은 동네와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동네 끝 집인 큰아빠의 두부집을 지나서도 산 쪽으로 10분은 더 가야 있었죠. 아이들 말이 틀린 건 없었습니다. 사실 같은 동네이긴 하지만 외딴집이라 다른 동네나 다름없는 집이죠.
전쟁이 끝나고 고아가 된 저희 아빠. 미군부대와 가까운 곳에 가격이 싸고 저렴한 집을 산다는 게 어느 무당이 살다가 이사 나간 점집을 사신 거죠.
동네 사람들은 무섭다고 가까이 가지도 않던 집을 "내가 성당 다니는데 무당, 점집? 뭐가 무섭냐?" 하시면서. 거저 산 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는 동네 친구가 없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저와 놀지 못하게 한다는 소문도 있었거든요. 학교 다닌 지 한 달이 지나도 똑같았어요.
조명 잠시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남자아이들 세 명이 왼쪽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여자 아이들 몇 명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고무줄을 가지고 놀고 있다.
한장수. 가방을 메고 아이들 앞을 왔다 갔다 한다. 아이들은 아는 척도 안 하고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 앞으로 다가가서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을 열고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 든다.
한장수 : 얘들아 이거 줄게 나도 같이 딱지치기하게 해 줄래?
아이 1,2,3 : 그 순간 아이들은 딱지 치기를 멈추고 모두 장수가 손에 들고 있는 초콜릿과 사탕을 쳐다본다. 그리고 서로 눈으로 괜찮다는 사인을 주고받는다.
(아이들 정지 상태. 한장수 객석을 보며.)
한장수 : (내레이션)
간식이라고는 뻥튀기나 설탕을 국자에 녹여 만든 뽑기나 눈깔사탕이 전부였던 시기에 입안에 넣으면 살살 녹아 버리는 달콤한 초콜릿과 예쁜 비닐에 쌓여 있는 사탕을 보고만 있었을까요?
(아이들 정지 해제.)
아이 1,2,3 : 장수야 이리 와. 딱지치기 하자.
(장수. 아이들 쪽을 쳐다보며 걸어간다. 먹을 것을 나눠주고 딱지치기한다.)
아이 1,2,3 : (한장수 쉬는 차례인데 권유) 야 너 한번 더 해.
한장수 : 얘들아 너네 이런 거 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우리 큰아빠네 집에 엄청 많아.
아이 1 : 너네 큰아빠, 뭐 하시는데?"
한장수 : (자랑하듯) 미군부대 후문 산 밑에 있는 두부집 있지? 우리 큰아빠 집인데 미군들하고 친하시거든.
그날 기분이 좋았던 장수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빠에게 자랑한다. 조명 바뀌고 무대 우측 장수네 집 평상 위.
한장수 : 아빠, 오늘 친구들하고 딱지치기하고 놀았어요.
한필수 : 오 드디어 친구들이 우리 장수를 알아보는 군. 잘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친구들이 우리 장수를 딱지치기에 끼워주더나?
한장수 : 먹고 싶어도 참고 물 마시면서 모아두었던 초콜릿과 사탕을 가지고 갔는데 난리 났어요. 그래서 우리 큰아빠 두부집에 많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먹고 싶으면 말하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앞으로 매일 같이 놀자고 했어요.
(말을 듣던 한필수.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얼굴이 하얗게 된다.)
한필수 : 장수야, 잠시 큰아빠 집에 갔다 올게.
한장수 : (내레이션)
저는 '제가 너무 심하게 자랑을 해서 아빠가 놀라셨나!' 생각하며 다음부터는 자랑해도 살살하기로 마음을 먹고 기분 좋게 아빠를 기다렸어요.
무대 어두워지고 한필수는 무대 뒤로 빠져나갔다가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온다. 다시 밝아진다.
무대 중앙 두부집. 평상 앞. 경찰 두 명 빨간색 경고등을 번쩍이며 들고 있고, 가게 앞에는 큰아빠가 미군으로부터 받은 양주, 담배, 초콜릿, 사탕, 시레이션, 미군 야전잠바가 잔뜩 쌓여 있다.
한필수 : (서현식 옆으로. 작은 소리) 형님.
서현식 : 저기 저분이 너 찾더라.
한필수 : 왜? 저를? (경찰에게 다가간다) 찾으셨다고요?
경찰 1 : 아 안녕하세요. 저는 풍산 초등학교 1학년 1반 김상민 아버지입니다. 한장수 아버님 되시죠?
한필수 : 아. 네. 제가 한장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장수가 무슨 일이?
경찰 1 : 아닙니다. 나중에 저기 저분한테 물어보십시오.
경찰 한 명. 물건을 가지고 나가고 한 명은 큰아빠를 데리고 경찰서로 간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두부 집 평상 앞. 서현식과 한필수 무대 중앙 등장.
한필수 : 형님 이거 물건 값이유.
서현식 : 벌금만 내줘도 고마운데 그건 아니여.
한필수 : 그럼 나 형님. 다신 안 볼 거요.
서현식 : (어쩔 수 없이 받으며, 망설이다 받는다) 그래. 고맙다.
한장수 (내레이션)
객석을 바라보며. 당시 신문과 TV에서는 하루 걸러 한 번씩 전국적으로 양물건을 집중 단속한다는 소식과 무슨 특별단속으로 외국산 양주·담배 적발 후 벌금을 부과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 일이 큰아빠와 관계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1980년대 한국은 외화 부족으로. 공식 수입 업체의 허가를 통하지 않은 유통은 단속 대상이었어요.
저는 다음날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학교에 가서야 그 모든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복도.
김상민 : 야, 한장수
한장수 : 어, 안녕 김상민.
김상민 : 너 네 큰아빠 괜찮으시냐?
한장수 : 어? 우리 큰아빠 왜? 우리 큰아빠 걱정을 니가 하냐?
김상민 : 어제 딱지치기할 때 니가 준 초콜릿 집에 가지고 갔다가 우리 아빠한테 혼났거든.
한장수 : 야, 그거 미제 초콜릿인데 먹고 가지. 집에 왜 가지고 갔냐.
김상민 : 그러니까. 그게 미제잖아. 우리 아빠가 그거 어디서 났냐고. 하셔가지고 너 얘기랑 너네 큰아빠 얘기 했거든.
한장수 : 야. 뭘 그런 얘길 다하냐. 그냥 나한테 먹고 싶다고 하면 가지고 올 텐데.
김상민 : 그게 아니라. 우리 아빠 경찰이신데. 너네 큰아빠 어제 잡혀갔다가 너네 아빠가 벌금 내고 풀려나셨다던데? 앞으로 너랑 놀지 말라고 하셨어.
한장수 : (갑자기 놀라면서 정지. 잠시 후) 어?
김상민 : 앞으로 우리 아는 척하지 마라. 간다.
한장수. 집으로 힘없이 걸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구슬과 딱지와 초콜릿과 사탕을 모두 가지고 나온다. 나무아래 땅을 파서 묻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한장수 :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 저는 혼자였어요. 친구들 없어도 좋으니까, 아빠와 큰아빠에게 더 이상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도와주세요.
한필수 : 장수야, 아빠 왔다.
한장수 : 아빠......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 죄송해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한필수 : (한장수를 꼭 안으신다.)
아들. 살다 보면 말이야. 이런 일 저런 일 생길 수 있어. 그럴 때마다 힘들어서 걱정만 하고 울면 어찌 살겠니. 어차피 일어난 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거기에만 집중하고 걱정은 숨 돌리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단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한필수 : (장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집으로 들어간다.)
5장 그림을 그리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다음날. 학교 갔다 돌아온 한장수. 집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걸어서 천천히 평상 주변을 돈다. 그리고 무대 중앙 평상 위로 올라간다. 잠시 후 두 손을 굽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허리를 핀다.
그리고 두 손을 입모아 '야호'라고 외치고 평상 위에 앉아 객석을 쳐다보며 말을 한다.
한장수 : (산 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기분이 상쾌한 얼굴.) 여기는 경로당, 여기는 마을회관, 저기는 교회, 저기는 시장, 저기는 우리 학교. 여기서 보니까 다 이쁘다. 마치 그림 같아. 내일은 스케치북을 가지고 와서 그림을 그려보면 좋겠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다음날. 학교 갔다 돌아온 한장수. 집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손에 스케치북과 연필이 들려있다. 걸어서 천천히 평상 주변을 돈다. 그리고 무대 중앙 평상 위로 올라간다. 스케치북 연필 내려놓고 잠시 후 두 손을 굽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허리를 핀다. 그리고 두 손을 입모아 '야호'라고 외치고 평상 위에 앉아 객석을 쳐다보며 말을 한다.)
여기는 경로당, 여기는 마을회관, 저기는 교회, 저기는 시장, 저기는 우리 학교. 여기서 보니까 다 이쁘다.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잠시 후, 이때 장수 뒤로 한필수 등장한다.
한필수 : (어깨 툭 친다.) 아들. 여기서 뭐 해?
한장수 : (눈물 흘린다.) 아빠?
한필수 :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 그림 그리고 있었어?
한장수 : (눈물을 팔뚝으로 닦으며 웃었다. 눈물 계속 흐른다.)
한필수 : 좋다. 좋아. 역시 아빠 아들이야. (잠시 후, 장수의 눈에 눈물을 보더니 꼭 안아 준다.) 아들. 왜? 왜 울고 그래? 그래 뭔지 몰라도 울어라.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 거야. (등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장수를 잠시 두고 일어나 무대 중앙에서 객석을 바라본다.)
우리 장수가 마음 아파하는데 무슨 말을 해 주면 좋을까요? 하나. 그냥 안아준다? 둘. 맛있는 거 사준다? 셋. 같이 울어준다?
다 좋은 말씀인데. 저는 이렇게 말해줬어요.
(다시. 장수 곁으로 다가간다. 장수 눈물을 닦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들. 뭐든지 말이야.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보면 속상하고 힘든 일은 금방 잊을 수 있단다. 우리 장수 그림 괜찮네. 앞으로 그림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아빠가 도와줄게.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한장수 집 앞. 평상에 장수 앉아 있고 한필수 물감과 붓과 스케치북을 들고 나와 장수 옆에 앉는다.
한필수 : 장수야.
한장수 : 네?
한필수 : 아빠가 미군부대에서 장수 주려고 특별히 챙겨 왔다.
한장수 : 아빠 물감이 무슨 치약통 같이 커요?
스케치북도 엄청 두꺼워요. 붓도 멋져요. 이거 저 다 주시는 거예요?
한필수 : 오늘부터 물감과 붓과 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줄게. 색칠을 할 때는 모두 똑같이 칠하면 안 돼. 가까이 있는 것은 진하게 칠하고. 멀리 있는 것은 연하게 색을 칠해야 해. 그림자는. 그림자는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서 칠해야 해.
이 쪽으로 와 바라. (무대 중앙 큰 평상 옆에 큰 종이를 걸어 놓는다. 깡통으로 된 물통에 물을 담고. 파란색 물감 하나와 붓 4개를 꺼낸다. 그리고 물감을 팔레트 네 곳에 짠다.)
장수야, 첫 번째 물감은 물을 섞지 말고 붓을 물에 살짝 담그고 물끼를 뺀 다음에 종이 위에 가로로 길게 한번 그어봐라.
한장수 : (그대로 따라 한다.) 이렇게요?
한필수 : 잘했다. 이번에는 물감 위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똑같이 종이 위에 가로로 길게 그어봐라.
한장수 : (그대로 따라 한다. 필수를 쳐다본다.)
한필수 : 그래, 이번에는 물 두 방울 떨어뜨리고
똑같이 종이 위에 가로로 길게 그어봐라.
한장수 : (그대로 따라 한다. 한참 선을 쳐다본다.) 아빠, 같은 색인데 색이 다르게 보여요.
한필수 : 바로 그거야. 같은 파랑인데 물의 양에 따라 파란색이 다르게 보이지? 물의 양에 따라 파랑이 하늘색으로 변하지?
한장수 붓을 손에 들고 무대 중앙으로 움직인다. 조명은 한필수를 어둡게 한장수를 밝게 비춘다.
한장수 (내레이션)
저는 붓을 세워서 점을 이렇게 톡톡톡 찍는 연습도 하고 붓을 눕혀서 선 긋기 연습도 했어요. (허공에 점찍는 흉내, 선 긋는 흉내)
그리고 스케치북에 굵은 선을 그리고. 물감이 완전히 마르고 난 뒤(허공에 선을 긋고 잠시 기다린 후) 그 위에 다시 물감을 덧칠하는 연습도 했습니다.
그림자 그리는 연습도 했는데. 그림자가 저는 제일 어려웠어요. 수채화에서 그림자는 단순히 검은색만 칠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빛의 방향을 따라서 물체가 놓인 형태와 위치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와 각도가 다르고 물체와 닿는 부분은 그림자를 선명하고 진하게, 그리고 물체에서 멀어질수록 옅게 그리는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저는 5년 동안 매일 물감과 물만 가지고 놀았어요. (한장수, 붓과 물을 들고 논다.) 그랬더니 6학년이 된 어느 날부터 제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무대 가운데. 아이 1,2,3. 한장수 서 있고 선생님 손에 상장과 메달을 들고 등장한다.
아이 1 :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아이들 : (목례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담임 선생님 : 자, 오늘 그림 그리기 대회. 잘 마쳤고. 이번에 수채화 그리기 대회에서 우리 반 한장수가 전교 1등 했다. 장수 앞으로.
한장수 : (뒤쪽에서 선생님 앞으로 나와 선다.)
담임 선생님 : (상장을 읽는다.)
상장. 6학년 1반 이름 한장수. 위 적은 학생은 교내에서 실시한 수채화 그림 그리기 사생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이에 상장을 수여합니다. 1980년 3월 1일 풍산초등학교 교장 구경훈 대도.
상장 전달하고,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악수한다. 아이들 손뼉 친다.
담임 선생님 : 그리고 얘들아. 좋은 소식 하나 더. 우리 장수가 풍산 초등학교 대표로 5월에 있을 서울 수채화 사생대회에 참석한다. 그림의 주제는 경복궁 뒤뜰에 있는 '향원정의 봄'을 그리는 대회란다. 자, 앞으로 장수가 서울에 가서도 좋은 성적낼 수 있도록 다 같이 박수 한번 치자.
한장수 :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한장수 무대 왼편에서 무대 우측으로 기분 좋게 걸어온다. 등에 가방을 메고, 손에 상장을 들고 목에 걸려있는 메달을 손으로 만진다. 한필수. 평상에 앉아 있다가 일어난다.
한필수 : 아들~ 축하한다. 잘했다.
한장수 : 아빠? 어떻게 아셨어요?
한필수 : 다 아는 수가 있지? (웃으면서 상장을 보고 메달을 목에 걸어 보면서 입으로 깨물어 본다.)
한장수 : 그렇게 좋아요? 나보다 더 좋아하세요.
한필수 : 그럼, 좋고 말고, 우리 장수가 전교 1등을 했는데 안 좋아?
아빠가 기분을 한참 내고 있으실 때. 서현식 부부. 무대 좌측에서 등장한다.
서현식 : 어, 장수 벌써 왔네?
한필수 : 형님. (이거 보세요. 상장과 메달 건넨다.)
서현식 : 오 대단하네. 대단해. 1등을 했어?
파주댁 : 어머나, 우리 장수 최고네 최고. 자 이거 봐라. 아빠한테 소식 듣고 장수 좋아하는 치킨하고 피자 사 왔다. 다 같이 먹자. 앉아 봐라. (다 같이 앉는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얼마 후 경복궁 가는 날.
파주댁 : (무대 중앙 두부집 문을 열고 나온다.)
장수야 일어났나?
한필수, 한장수. 문을 열고, 필수. 손에 스케치북. 물감. 물감통. 붓이든 가방을 들고 나온다.
파주댁 : 이리 와 봐라. (평상을 가리키며)
한필수, 한장수. 평상 앞에 다가간다.
파주댁 : (계란, 사이다, 김밥을 펼쳐 놓는다.)
이거 얼른 먹고, 이거는 서울 가서 아빠랑 먹고.
한필수 : 아니, 우리도 먹을 거 있는데, 새벽부터 잠도 안 주무시고요?
파주댁 : 장수가 풍산 초등학교 대표로 서울 간다는데 잠이 오나?
이때, 아이들, 담임선생. 서현식 등장. 한필수, 한장수. 서로 인사한다.
담임 선생님 : 장수 아버님. 잘 다녀오십시오.
한필수 :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임 선생님 : 저도 같이 가야 하는데 남아 있는 학생들 수업도 있고 해서, 제가 학교 대표로 왔습니다.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며)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교장선생님이 차비에 보태 쓰시라고 보내주셨습니다.
한필수 : (두 손을 저으며) 아니 아닙니다. 저희 차비 충분합니다.
담임 선생님 : 이건 학교에서 드리는 거라. 꼭 받으셔야 합니다. (한필수 손에 쥐어 준다.)
한필수 :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주댁 : 저 선생님 애들하고 여기 오셔서 이거 같이 좀 드세요.
담임 선생님 : 아닙니다. 저는 전달해 드렸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얘들아 가자. (담임 선생님, 아이들 다시 한번 서로 인사하며 퇴장.)
한필수, 파주댁이 주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한장수, 그림 도구를 들고.
한필수 :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파주댁 : 잘 다녀와요. 장수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그리고 와라.
한장수 : 네, 다녀오겠습니다.
파주댁 퇴장, 한장수, 한필수 몇 발자국 움직인다. 한필수 동작 정지. 한장수 객석을 보며.
한장수 (내레이션)
저희는 큰엄마가 가져다 주신 김밥을 먹고 기차역으로 가서 비둘기호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렸습니다. 역 광장에 있는 시계탑을 지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도착했습니다.
향원정은 경복궁 입구에서 조금 걸어가야 나왔어요.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한필수 다시 움직인다. 무대 중앙 평상 앞. 뒤에는 향원정 사진이 플래카드에 크게 걸려있다.
한필수 : 장수야 여기가 향원정이다.
한장수 : 아빠, 저 하나도 안 떨려요. 이상하네.
한필수 : (이마를 짚어 본다.) 정상이네. 정상이야. 연습을 많이 하면, 안 떨리지. 즐기게 된단다. 좋은 징조다. 좋아.
한장수 : 그래도 조금 떨리긴 떨려요.
한필수 : 그래. 마음 편하게 먹고 잘 그려봐라.
아빠는 끝날 때 올게.
잠시 후, 시작을 알리는 방송 소리.
아, 아. 지금부터 제20회 서울. 경기 초등학교 수채화 사생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대회 참가자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계자 직원. 평상 앞에 이젤을 갖다 놓고 나간다.)
한장수 : (객석을 바라보며 이젤 위에 스케치북을 펼친다. 그리고 오랫동안 향원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걸어서 객석 앞으로.) 여기는 개나리꽃, 여기는 진달래, 여기는 향원정, 여기는 취향교. 보기만 해도 취한다. 그런데 저건 뭐지? 저기 향원정 뒤쪽으로 보이는 해발 342.5m 산은 무슨 산이지? (잠시 관객의 반응 기다림) 맞아, 북악산이 보이네.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그림을 그린다.)
잠시 후, 대회를 마친다는 안내방송. 5분 후에 대회를 마칠 테니 아직 다 그리지 못한 참가자는 빨리 마무리해 주시고, 다 그리신 분들은 앞으로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한장수 : (제자리로 돌아가서 스케치북을 들고 객석 앞으로 다간다.) 저는 향원정과 꽃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저기 보이는 북악산을 그림 제일 뒤에 놓고 연못 위에 비치는 향원정과 취향교도 같이 그렸어요. 특히 물에 비친 북악산과 향원정과 취향교에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이쪽저쪽에 그림을 보여준다.) 이제 저도 제출하러 가겠습니다. 퇴장.
6~7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