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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희곡 - 혼자가 힘들 때 6~7회/7회

창작 단편 희곡

by 원윤경

창작 희곡 단편집

등장인물
한필수 (39세) : 장수 아빠, 미군부대 군무원.
서현식 (42세) : 큰아빠, 영세 두부공장 주인
파주댁 (40세) : 큰엄마, 서현식의 아내
한장수 (8세) : 한필수의 아들
김은정 : 한장수와 같은 미술부 친구

잠시 등장인물
아이 1,2,3


6장 자신감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장수네 집 평상.


한장수 : 아빠 그렇게 좋아요?

한필수 : 그럼, 좋고 말고, 우리 장수가 전교 1등 했지, 서울 대회에서는 금상 받았지.


서현식 : 장수야. 우리 왔다.

한필수 : 아 네 형님. 어서 오세요. 이 쪽으로 앉으세요.


서현식 : 오 대단하네. 대단해. 1등 했어?

한장수: 1등은 아니고요. 금상이에요.

파주댁 : 그게 그거지. 요새 금이 최고 아니냐. 그래. 상장하고 메달만 주는 거야? 학교 운동회 해도 일, 이, 삼 등하면 공책이라도 주던데?


한필수 : 들어오실 때. 밖에 자전거 보셨어요? 그거 상품으로 탄 거예요. 우리는 자전거 필요 없으니까. 형님 돈 받으러 다니실 때 타시라고, 장수가 큰아빠 드리라고 했어요.


서현식 : 아니야. 난 자전거 없어도 괜찮아.

파주댁 : 아니. 그럼 안 되지. (서현식 옆구리를 쿡 찌른다.) 장수가 큰아빠 생각해서 선물로 드리는 건데. 선물을 안 받으면 안 돼요. 그치? (장수 쳐다보며)


한장수 : 네. 맞아요. 큰아빠. 수금하러 다니시면 힘드실 텐데. 제가 진짜 선물로 드리는 거니까. 꼭 타세요.

파주댁 : 그래. 자 이거 받아라. 장수 좋아하는 거 사 왔다. 다 같이 먹자. 앉아 봐라.


한필수 상을 들고 나와 평상에 피고, 그 위에 후라이드 치킨하고 피자 올린다. (한장수 일어나서 관객을 보며 대사 한다. 사이 모두 퇴장.)


한장수 : (내레이션) 이 일은 제 삶에 큰 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깜짝 놀라게 바뀌었거든요.


저는 변한 게 없는데 이름도 한장수. 키도 몸무게도 같고. 제가 입고 있는 옷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저는 평생 혼자 외롭게 다녀야 되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먼저 다가왔어요.

마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요.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학교 앞.


아이 1 : 야 장수야, 좀 있다가 쉬는 시간에 우리 딱지치기할 건데 같이 안 할래?

한장수 : 이젠 딱지치기 안 하는데?

아이 1 : 그럼, 구슬치기 할래?

한장수 : 딱지치기, 구슬치기 안 하는데.

아이 1 : 어 그래? 언제든지 하고 싶으면 우리 불러라~ (손 흔들며 퇴장.)

한장수 : 응, 알았어. 고맙다.

김은정 : 장수야, 나 미술반 김은정. 너랑 같이 그림 그리게 돼서 반갑다. (손 내민다.)

한장수 : 나도 반가워. (악수하고 객석 쪽으로 나온다.) 나 지금 선생님이 보자고 하셔서 교무실 가야 하는데? 수업 끝나고 미술실에서 보자.

김은정 : 그래, 미술실에서 보자~ (손 흔들며 퇴장.)


한장수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한장수 : (내레이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제가 혼자 있다고 매일 울면서 집에만 있지 않고 그때마다 일어나서 산에도 오르고 그림에 집중한 것이 잘한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운이 좋아 잘 되니까. 친구들이 먼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제가 상을 받은 것보다. 이 사실이 더 기뻤습니다.


그중에서도 미술반 김은정을 만난 건 제게는 새로운 기쁨이었습니다. 은정이네 아빠는 경기도 민통선 안에서 콩을 재배하시는데 알고 보니 큰아빠와는 부대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큰아빠가 많이 힘들 때 두부를 만들어 팔아보라고 하신 은인이십니다. 그러니까, 큰아빠가 콩을 가지고 오는 집 딸이 김은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저희는 가깝게 지냈습니다.


두부는 콩이 중요하다고 큰아빠가 늘 말하셨는데 언젠가부터 나라에서는 콩을 대량으로 수입해 식용유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입 콩 가격은 국산 콩보다 두세 배 적어서 두부를 만드는 공장에서도 수입 콩을 섞어 국산 두부라고 속여서 파는 곳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큰아빠는 은정이네 콩만 고집하셨습니다.


저는 수입콩도 다 똑같은 콩인데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큰아빠는 늘 웃으시면서 그래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한장수 퇴장. 무대 중앙 두부 집. 문 열면서 서현식 등장. 평상 위에 콩 자루 올려놓는다.


서현식 : 안녕하세요? 한장수 큰아빠 서현식입니다. 저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서상사입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월남 전쟁이 일어났을 때, 상사로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라는 병을 얻어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부대 주임 상사셨던 은정이네 아빠가 저를 도와주셨지요.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두부 가게를 하며 아내와 어머니와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욕심이 없습니다. 제가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하거든요. 작지만 어머니 모시고 살 수 있는 집도 있고, 두부를 만들어 팔 수 있는 건강도 있으니 이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돈 조금 더 벌자고 수입콩을 넣어 국산콩이라고 속이는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맛이 틀리거든요. 고소함이 틀리답니다. 장사는 신뢰가 먼저 아닌가요?


신뢰? 쌓기는 힘들지만, 무너지는 건 1초도 안 걸리잖아요. 국산콩은 이윤이 조금 작지만 제 두부를 사가시는 손님들이 먼저 알아보시면서 좋아들 하시니 그것으로 전 됐답니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한장수, 집 앞 평상 위에 앉아 있다. 일어서며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다.


한장수 : (내레이션) 큰아빠는 마음이 천사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매일 두부와 콩나물을 손수레에 실어 보육원에 전달하고 계셨습니다.


그 보육원은 아빠가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큰아빠는 아이들이 두부를 맛있게 먹는 모습만 보셔도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것 같다며 아빠가 제게 이야기해 주신 기억이 납니다.


7장 너는 별이야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무대 좌측. 학교 미술실. 은정, 장수 이젤 앞에 앉아 그림 그리고 있다.


김은정 : 장수야 내가 노래 불러 줄까?

한장수 : 난 노래 못하는데?

김은정 : 나도 잘 못해. 이 노래는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건데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어젯밤꿈속에 나는 나는 날개 달고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올라 갔지요

무지개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이리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

무지개 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이리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


한장수 : (내레이션) (일어나서 관객 보며.) 그렇게 저는 은정이와 노래를 함께 부르며 즐겁게 그림 연습을 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무대 우측 한장수네 집 평상. 한필수 퇴근하며 평상에 앉아 있는 장수를 보며.


한필수 : 장수야. 보육원 벽이 너무 낡아 보이더라. 벽화를 그리면 좋을 것 같은데. 아빠가 너네 학교 미술반과 보육원에 있는 학생 중에서 함께 할 참가자 신청을 받았다. 미술반에서는 은정이와 미술반 아이들 2명이 참석할 거고, 보육원에서는 원장선생님 추천으로 3 명이 참석할 거야.


한장수 : 얘기 들었어요. 은정이도 같이 가요?

한필수 : 우리 장수 은정이만 찾는 게 수상하다?

(웃으며 놀리는 말투로)

한장수 : 아빠, 같은 미술반 이거든요. 제가 안 챙기면 누가 은정이 챙기겠어요?

한필수 :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왜 은정이를 니가 챙기는데? 은정이 챙길 생각 말고 내일 벽화에 필요한 준비물이나 잘 생기세요.


한장수 : 네~ 창고 가 보겠습니다. 아빠 (가던 길 돌아서서) 내일 보육원에서 은정이 있는데 은정이 이야기하시면서 저보고 이상하다고 하지 마세요. 알았죠? 저 그럼 아빠 안 볼 거니까.

한필수 : 걱정하지 마시고, 같이 창고 가 봅시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무대 중앙. 다음 날 보육원. 벽에 플래카드에 천사 보육원이라고 적혀있다. 한필수 평상에 벽화 준비물 정리하고 있고, 아이들 1,2,3. 김은정. 한장수 등장한다.


한필수 : 얘들아 어서 오너라. 자, 여러분 지금부터 벽화를 그릴텐데, 페인트로 색을 섞는 방법과 붓으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 줄게요. (아이들 손에 붓을 하나씩 들고 서 있다. 잠시 후 흩어져 그림을 그린다.)


김은정, 한장수 : (같은 벽에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 나비와 예쁜 집을 그린다.

한필수 : 그래, 잘하고 있다. 예쁘구나.


벽화를 그리는 동안 서현식과 파주댁 음료수와 건빵과 초콜릿을 가지고 등장.


파주댁 : 얘들아 그만하고 간식 먹고 해라.

(아이들 파주댁 주변으로 모인다.) (서현식, 파주댁.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 얘들아. 맛있게 먹어. 모자라면 더 먹어. 많으니까.


아이들 간식을 먹고. 파주댁, 서현식 퇴장한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그림을 보고 모두 만족한다.


한필수 : 자 다들 벽화 앞으로 모이세요. 이 위대한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 안 찍을 수 없지?

(아이들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다.)

다들 수고했어요. (서로 인사하고 헤어진다.)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벽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짙푸른 하늘에서는 예쁜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


한장수 : (한필수의 손을 잡고 가면서) 아빠. 저를 아들로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도 가르쳐 주시고,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도와주시고 다 감사합니다.


한필수 : 무슨 소릴. 이 아빠가 더 고맙지. 아들. 저기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보이지. 우리 장수는 하늘에 핀 꽃이야.


한장수 : 하늘에도 꽃이 펴요?

한필수 : 저기 보이는 별이 북극성이고 저기는 카시오페이아 또 저기는 거문고, 독수리, 백조, 전갈, 헤라클레스, 궁수, 작은 여우, 돌고래. 다들 예쁘지? 그러니까. 하늘에 핀 꽃이지.


우리 아들처음 만났을 때, 그날 하늘에서 유난히 빛나던 별이 있었는데, 바로 저기 보이는 저 별이었어. 북두칠성이라고 저 별이 반짝반짝 빛나더라고. 북두칠성이 무슨 뜻인지 아니? (관객을 바라보며, 잠시 기다린다.)


희망이란다. 아들. 아들은 아빠의 희망이에요.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란다. 이제 아빠는 더 바랄 것이 없단다. 얼마 있으면 우리 장수가 전국대회 나가는 날이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날이 될 거야.


한장수 : 아빠 그러다가 꼴찌 하면 어떡하라고 그래요.


한필수 : 그래? 우리 장수 그림은 이 아빠가 잘 알지. 꼭 일등 할 거야. 그리고 꼴찌 하면 또 어때,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괜찮아요. 다시 하면 돼요.


아빠가 웃으시며 칭찬을 하시자, 나는 기분이 좋아져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는 나를 닮은 북두칠성이 반짝이고 아빠 눈에는 장수가 반짝이고 장수 눈에는 온 세상이 반짝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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