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희곡
창작 희곡 단편집
등장인물
멍멍이(남)
냐옹이(여)
안내방송(여)
무대 가운데 의자 두 개 놓여 있고, 멍멍이와 냐옹이가 오른쪽 무대에서 나와 지하철 선로에 서 있다가 문이 열리자 의자에 가서 앉는다. 멍멍이와 냐옹이가 함께 대학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자리에 앉자 잠시 후, 안내방송이 나온다.
안내방송 :
고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열차 내에서는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휴대전화를 사용하실 때에는 이어폰을 착용하시고 작은 목소리로 짧게 통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음식물 섭취나 큰 소리로 대화하는 행위는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줄 수 있으니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멍멍이 : 저게 무슨 뜻이야?
냐옹이 : 조용히 해.
멍멍이 : 조용히 해?
냐옹이 : 응, 너 조용히 하라는 말이야.
멍멍이 : 왜 나한테 조용히 하라고 그래?
냐옹이 : 네가 여기서 제일 시끄러우니까. 지하철도 널 알아보는 거지.
멍멍이 : 난 휴대폰도 없는데?
냐옹이 : 너 목소리가 크다고.
멍멍이 : 내 목소리가 크다고? 이게? (목소리 점점 높아진다) 그럼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
냐옹이 : 하지 마.
멍멍이 : 어제는 말 안 한다고 화내더니. 말하니까 하지 말라고 화내고!
냐옹이 : 나 화 안 났거든. 네가 지금 화내고 있는 거야.
멍멍이 : 사랑이 식었구나.
냐옹이 : 여기서 사랑이 왜 나오는데?
멍멍이 : 사랑이 식었어.
냐옹이 : 조용히 하라는데 사랑이랑 무슨 상관이야. 할 말 없으면 사랑이 식었데. 뭔 사랑이 라면이냐? 더웠다 식었다 하게?
멍멍이 : (화난 목소리) 멍 멍 멍
냐옹이 : 넌 가끔 못 알아듣는 말만 하더라.
멍멍이 : 내 말이. 너는 내가 무슨 말하는지 잘 듣지도 않잖아. 그게 다 사랑이 식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
냐옹이 : (어이없어하는 목소리) 냐~~ 옹.
멍멍이 : 너도 마찬가지야. 나 보고만 못 알아듣는 말 한다고 하지 마.
냐옹이 : 넌 왜 내가 말할 때 잘 안 들어? 그래놓고 멍 멍 멍. 개 짖는 소리나 하고 그래.
멍멍이 : 그래. 나, 개다. 뭐 그래서. 어쩔 건데.
냐옹이 : 이러면서 사랑 얘기는 왜 하는데. 앞으로 내 앞에서 사랑. 꺼내지도 마.
멍멍이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지.
냐옹이 : (여기저기 둘러보며) 지금 지하철에서 떠드는 동물은 우리밖에 없다는 거 알아? 넌 이래서 나랑 안 된다는 거야. 생긴 게 달라. 나랑은 종자가 다르다고. 알아?
멍멍이 : 그건 나도 알아. 넌 고양이고 난 개라는 거 알아. 미안하다.
냐옹이 : 진짜로 미안해?
멍멍이 : 응
냐옹이 : 그럼, 말해봐.
멍멍이 : 뭘?
냐옹이 : 뭐가 미안한지. 뭘 잘못했는지. 말해 보라고.
멍멍이 : (귀찮은 느낌) 멍 멍 멍 멍
냐옹이 :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한 척하니까. 표가 다 나잖아. 못 알아듣는 말만 혼자 중얼거리잖아.
안내방송
이번 역은 혜화, 혜화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내리실 때, 발 빠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This stop is Hyehwa. The doors are on your left. Please watch your step when exiting.
스크린 도어가 열립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 다음 역은 한성대. 한성대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냐옹이 : 아이 씨. 우리 혜화역에 내리는 거 아니었어?
멍멍이 : 넌 항상 이래. 뭘 딱 딱 알아서 잘하는 게 없어. 그래서 내가 자꾸만 이야기하는 건데. 넌 잔소리로만 듣더라. 이제부턴 너랑 아무 말 안 할래.
냐옹이 : (화내면서) 이래서 내가 싫어하는 거야. 이게 내 잘못이야? 지하철에서 네가 얼마나 시끄러우면 조용히 하라고 방송까지 했겠어? 그것도 한국말로 하다가 네가 계속 떠드니까 미국에서 온 강아지인가? 하고 영어로도 했다가 그래도 떠드니까 중국말로 하더니 나중에는 일본말까지 한 거 알아 몰라?
네가 끝까지 말 안 들으니까. 왼쪽 문으로 내리라고 정중하게 안내까지 했잖아. 그래도 안 내리고 앉아있으니까. 지하철도 얼마나 화가 났으면 기다리지 않고 문. 닫고. 출발했겠어?
멍멍이 : 그래. 다 내 잘못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다 내 잘못이래. 소크라테스 할아버지가 너 자신을 알라고 그랬지? 넌 날 그렇게 잘 안다면서 왜 넌 모르는 건데?
냐옹이 : 내가 뭘 모른다고 그래?
멍멍이 : 넌. 내게 말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한 번쯤 생각이라는 걸 해 본 적 있어? 말이 얼마나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지 넌 모르지. 내가 아프게 말을 안 하니까. 넌 모르지?
냐옹이 : 내가 틀린 말 하는 거 봤어?
멍멍이 : 아니. 넌 말 안 하면 안 하지. 틀린 말? 절대 안 해. 내가 너~ 무 잘 알아. 그런데. 네가 말하면 틀린 말. 하나도 없는데. 여기가 아파. 여기가. (오른손으로 가슴을 툭툭 친다)
안내방송
현재 객실 내 소음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서로를 배려하여 조용히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냐옹이 : 야. 너보고 또 조용히 하라고 방송 나오잖아. 제발 조용히 좀 해라.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여기저기 둘러보며 고개를 숙인다.)
멍멍이 : 넌 매일 말로 날 죽여요. 내가 네 말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 많이 한 줄 알아? 그 비싼 학원비 내면서 종로에 있는 고양이 외국어 학원도 다녔지. 토익 시험도 봤지. 토플도 봤지. OPIc 시험까지 정말 고생고생 했는데. 넌 날 위해 한 게 뭐 있어?
냐옹이 : 뭘 해야 돼? 뭘 해야 사랑이야?
멍멍이 : 아니.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닌데 사랑하면. 변한다는데 넌 하나도 안 변하잖아. 사랑하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중에서 뭐부터 하는지 알아?
냐옹이 : 좋아하는 거?
멍멍이 : 이래서 넌 문제야. 좋아하는 거 아홉 개를 말하는 동물보다, 싫어하는 거 하나를 안 하려고 노력하는 동물이 더 믿음이 가는 거야.
냐옹이 : 그게 그렇게 중요해?
멍멍이 : 중요해. 내가 싫어하는 거 하나. 절제도 못하면서,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한다느니, 하늘의 별을 따주겠다느니 하는 말을 어떻게 믿겠어?
냐옹이 : 네가 좋아하는 거 해준다는데 그게 뭐가 믿기 힘들어?
멍멍이 : 사랑이 진짜라면. 네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그게 배려고, 그게 예의고, 그게 존중이고 그게 사랑이지.
냐옹이 : 그럼 내가 평생 너만 위해 살게. 하면 믿을 거야?
멍멍이 : 아니. 그 말, 들을 때마다 평생 ‘냐옹이만을 위해 살게’로 들리거든.
냐옹이 : ……
멍멍이 : 내가 싫어하는 게 단순히 내 이기심 때문이라면 나도 이해하지. 근데 그게 상식적인 배려에 대한 거라면, 그걸 무시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야.
냐옹이 :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너한테 사랑은… 뭐야?
멍멍이 : 절제. 배려. 그리고 말보다 행동. 그게 사랑이야. 그러니까. 말만 참기름 바른 미꾸라지처럼 뻔지르하게 잘한다고 해도 난, 안 믿어.
안내방송
이번 역은 당고개, 당고개역입니다. 더 이상 열차가 운행하지 않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모두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리실 때에는 소지품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코레일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냐옹이 : 멍멍아 종점이라는데?
멍멍이 : 어, 그래? 그럼 어떡하냐?
냐옹이 : 뭘 어떻게 해. 빨리 내려. 바꿔 타면 되지. 암튼 화내서 미안해. 돌아갈 때는 나도 조용할 테니까. 너도 말 시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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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차는 오이도. 오이도행 열차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을 위해 발 빠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열차가 곧 출발하겠습니다. 출입문 닫힙니다.
멍멍이 : 알았어. 근데 우리 대학로는 갈 수 있는 거야?
냐옹이 : 조용히 하라고 그랬지?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