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아니면 도, 말고 걸도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자기혐오를 느끼며 살았다. 조그마한 실수를 크게 해석하고, 극단적으로 사고했다.
내가 올린 콘텐츠에 반응이 없을 때, 친한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졌을 때,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해야 하는 과제를 잊었을 때, 자신만만하게 했던 선택을 뒤엎어버리고 싶을 때, 상대가 나를 보는 눈빛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까지도.
인생이 아무리 문제와 해결의 연속이라지만, 이 정도로 연속이면 그냥 확 죽어버리는 게 최선의 해결방법처럼 느껴졌다.
생각은 습관이었다. 모 아니면 도의 사고방식은 그렇게 나를 두 개의 선택지로 몰아갔다.
죽기 아니면 살기.
김세희 작가님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흑백논리네요.
문득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생각하게 됐다. 학교에 지각했다면, 지각할 수 있다. 다음부터 일찍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지나치게 확대해서 스스로 모자란 사람으로 나를 규정한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경험들을 꺼내며 나 자신을 폄하한다. 이런 사고 구조에서 그럼에도 괜찮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흑과 백 안에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다. 진한 회색, 옅은 회색 등 다양한 선택지로 나의 경험을 판단할 수 있다. 단순히 망했다가 아니라 부족했던 점과 보완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위협한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도 살고 싶어서 도망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항상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것처럼 위협했을까. 나에게는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바라보고, 진단하고, 용기를 주는 태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실수나 행동들에 다양한 판단들을 내려보기로 했다.
확 죽어버려? 빼고
그래 이번엔 안됐지만 나는 이걸 배웠어.
그리고 저 부분을 개선해서
다음에는 이걸 할 거야.
나 잘했네. 괜찮아 새로운 기회가 있잖아.
겪게 되는 문제를 단순히 '망해버렸어! 되돌리고 싶어! 가 아니라,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학습할 수 있는 기회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그 친구를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고,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었다. 다음 기회가 있을 거라며 독려했다.
그러자 내가 겪는 문제들이 덜 심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별로인 사람으로 몰아가지 않고, 문제들을 왜곡하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를 미워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을 때까지 함께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물론 소중한 가족과 친구도 있겠지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할 순 없다. 24시간을 붙어 다니는 친구가 작은 실수에도 위협하고, 모자란 사람이라며 폄하한다면 어딘가 끔찍하다.
세상에는 '잘했네', '망했네'의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다.
'잘하진 못했지만, 다음엔 이걸 보완할 수 있겠네',
'이번 시도는 경험이었네'
그리고
'괜찮아, 이것까지 완벽하면 내가 사람도 아니지.'
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