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워홀러의 진짜 영어 적응기
캐나다에 입국한 날, 공항에 있는 검역소에 들렸다. 강아지 이동봉사로 함께 왔던 조이를 검역소에서 확인을 받은 후 입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역소에 들어가자 백인 남성이 나왔다. 하얗고 키도 크고, 무엇보다 잘생겼다. 그의 얼굴을 감탄하고 있는 것도 잠시,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말이 무척이나 빨랐고, 악센트가 셌으며 어디서부터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었다. 토익 듣기 평가는 몇 단어만 들어도 유추해서 풀이가 가능했는데, 검역소 직원의 말은 도통 해석이 불가능했다. 빠르게 흘러나온 영어는 전두엽도 스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 와중에 조금씩 들렸던 단어를 유추해 대답을 하려는데 입이 막혔다. 목소리는 나오는데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손짓 발짓을 쓰다 파파고를 틀려는 무렵, 그는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한 듯 싶었다. 그리곤 검역소에 딸린 큰방으로 들어갔다. 눈앞이 새하얘지는 경험. 이게 현지 영어를 제대로 처음 마주한 나의 상태였다. 그 후 검역소 직원은 웬 동양인 할아버지와 함께 나왔다. 할아버지는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이 강아지는 누구 건데!”
캐나다에 온 후, 한참 이력서도 돌리고 잡을 구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영어 3등급에 토익 800은 넘었으니 기본 회화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나는 알게 됐다. 토익 점수는 영어 회화 실력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보통 문법이나 발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영어 단어를 낚시질하듯 아는 단어 한 개 나오면 월척~으로 건지고 우리 대화의 맥락을 추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사용하게 되는 영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This..' 하면 주문은 세상 쉽게 끝났다. 나는 그것마저 영어 실력으로 착각했다.
문제는 영어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영어로 일을 하는 것은 친구와 대화하듯 대충 때려 맞출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정확해야 했다. 아무리 캐나다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기다림의 미덕을 즐기는 사람들일지언정 주문이 잘못 나오는 것을 반길리 없었다. 음식 앞에서 자신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빠르게 섭취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만국 공통의 욕구였다.
하루는 덩치가 크고 수염이 많았던 백인 남성이 손님으로 왔다. 그는 분명 "블라블라~ 촐밀!"라고 했다. 순간 '촐밀?' 도대체 '촐밀'이 뭘까? 우리 메뉴엔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촐밀'이라는 메뉴는 없었다. 뒤에 다른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더욱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일단 급한 대로 "스몰 코크?"라며 대충 때려 맞추는 답을 말하고 봤다. 그런데 세상에! 또 촐밀이라는 거 아닌가. 아니 도대체 그놈의 촐밀이 뭔데!!
뒤에서 사모님은 말씀하셨다.
"아~ 그건 초콜릿 밀크야!"
캐나다에 와서 보니 내가 알던 영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영어와 동거동락하며 살아왔지만 한국식 영어와 실제 영어는 달랐다. 한국의 '말차라떼'는 캐나다에서 '맛차 라테-', '제로 콜라'는 '지로 코크'로 발음해야 했다.
발음의 변화만큼 묵음도 복병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묵음'에 대해 듣기는 했다. 하지만 읽기와 듣기, 그리고 늘 정확한 발음으로 온 문장을 읽어줬던 시험들 앞에서 묵음의 중요성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캐나다에 막상 와서 생활을 하고,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들어보니 그들이 강조하고 싶은 표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말은 묵음으로 처리돼 들리지 않았다. 스타카토 형식으로 딱딱 떨어지는 한국말과 치즈처럼 늘여져 녹아버리는 영어는 왠지 정반대의 끝점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구나. 그런데 미쳤다고 워홀에 왔구나.. 주문할 때, 주문받을 때, 마트에 갈 때, 룸메와 대화할 때 나의 현실은 매일 파악할 수 있었다. 영어로 일해야 하는 국가에서 대화 창구의 기본이 안된다니. 한국에서 서빙할 땐 너스레 떨며 실수도 넘길 수 있었는데, 이곳에선 그럴 수가 없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더 요청하고 싶은데 요청하지 못하고, 지금 이 마음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는데 전달할 수 없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장벽'이라는 언어를 붙여 설명했는지, 유튜브의 영어 콘텐츠가 높은 조회수를 차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come again"이라는 말은 '다시 와라'가 아닌 '다시 한번 말해줘'라는 뜻이었다. "Don't mention it"은 '언급하지 마'가 아닌 '천만에요'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아는 영어와 실제 원어민이 사용하는 영어는 이토록 다르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캐나다 밴쿠버 한복판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얼마 전 지하철에 있는데 룸메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용기를 내 받았다. 베트남 사람인 룸메는 내게 영어로 "어디야?", "버스 타고 같이 가자. 기다릴게"라고 말했다. "나는 걸어서 가고 싶어. 너 먼저 가"라고 대답해야 했다. 그런데 쉬운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어버버 댔다. '룸메가 walking을 working으로 오해하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와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허접한 나의 발음을 웃을까 봐 그것이 신경 쓰여 편하게 말하지 못했다.
오고 보니 이겨내야 할 것도, 공부해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어로 프리토킹하며 자유로운 문화를 경험하고자 했던 순진한 워홀러의 환상. 그 환상은 현지인의 일상 대화와 함께 와장창 깨지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