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연습하려고 하는 거예요
캐나다에 온 지 50일 쯤 되었다. 그리고 오늘 첫 영어 인터뷰가 잡혔다. 사실 워홀 온 후 한인잡에서 일을 하고 있다보니 영어 인터뷰는 거의 무경험자이다. 도착하자마자 구했던 로컬잡은 3분 만에 인터뷰가 끝났기에 인터뷰라 말하기도 어렵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나는 언어와 소통에 대한 자신감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
한인잡에서 일을 시작한지도 3주는 넘어간다. 적응한다고 하고 있지만 주방일은 역시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쉽지 않다. 여기는 면접도 한국말로 하고 들어왔다. 손님들과 소통할 땐 영어를 쓰지만, 주방일은 한국말로 배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와중, 영어로 소통하는 캐나다에서 더이상 영어를 피하고만 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엊그제 했던 일이 너무 힘들어서 튀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도 맞다.
엊그제 했던 일은 설겆이였다. 꽤나 무게가 나가는 접시들을 식기 세척기 없이 한땀 한땀 씻기는데 설겆이를 하다 몸이 그대로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노동. 고생이란 진짜 이런 거구나. 일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는데 손마디와 발가락, 목이 쑤셨다.
돌이켜보면 한국에 살 때는 정신이 고된 일은 해봤지만, 이렇게까지 몸이 고된 일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선 주방 일을 한 적도 없고, 서빙하며 했던 설겆이는 대부분 컵이었다. 무게가 나가는 커다란 그릇은 식기세척기를 이용했다. 무엇보다 너무 힘들면 다른 알바자리를 구하면 되었으니 알바로 인한 몸의 고됨을 많이 못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몸을 덜 고생시키려면 입이 고생인 일을 해야하는데 영어가 어려운 상태인 지금은 결국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이런 회화 상태로는 이력서를 돌릴 자신도, 인터뷰를 할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영어 인터뷰는 상상도 못했다. 그저 지금의 일에 적응하고, 가끔 손님을 응대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퇴근 하고도 고민이 많았다.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이렇게 일하다가는 골병을 얹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 아닐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하느라 앉을 생각도 못하고 서서 밥을 먹고 있는데, 룸메 언니를 만났다.
도대체 우리집은 총 몇명이 사는 것인가? 처음 보는 언니였다. 그런데 세상에! 한국인 언니였다. 언니와 가벼운 인사 후, 나는 입이 터진 사람처럼 최근 하고 있는 일들과 나의 상태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1분 전에 처음 본 사람인데, 워홀에 오게 된 이후, 어떤 일을 했고,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을 말했다.
엉엉. 내 선택으로 온 거지만 너무 힘들다. 내가 일이 하기 싫어 흥칫뿡 이런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게 맞는 지는 모르겠다.
터져버린 입은 멈춤 생각을 못했다. 새삼 나 스스로도 그간 괜찮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더럽게 힘들었구나 느꼈다.
워홀에 온 후 힘든 일을 경험하면 가족들, 친구들한테는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다. '멀쩡히 온전한 나라와 사람들이 있는 곳을 놔두고 그러게 누가 가라했냐!' 아무도 내게 이런 말 할 사람은 없음에도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할까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선택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따부따 워홀썰을 풀어내는 나를 바라보던 언니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여기저기 지원할 만한 곳을 추천해줬다. 나는 언니에게 '언어도 안되고, 일도 잘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없어 아무데도 지원을 못 하겠다'라고 말했다. 언니는 그래도 지금 일하는 곳보다 좋은 곳을 가면 좋은 거니까 용기를 내라 북돋아주었다. 알고 보니 언니는 워홀로 캐나다에 와서, 영주권까지 딴 사람이었다. 경험이 훨씬 많은 사람이 용기를 주니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방으로 들어와 'indeed'를 켰다. 그리고 여기저기 지원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팀홀튼에도 지원했고, Cashier로 마켓에도 지원했다.
그런데 지원을 하다 문득 나는 오래 전부터 팀홀튼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정작 지원은 처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내 영어 실력과 주방 경험을 생각하며 지원할 엄두도 못내며 지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영어를 쓸 환경 근처는 엄두도 못 냈기에 인터뷰 경험도 없고, 그렇게 시간은 갔었다.
합격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연습하려고 하는 거예요
블로그 <EK의 커리어 노트>에서 만난 문장이다. 이번에 다시 여기저기 도전하기로 결심한 후 이 문장을 되새겼다. 내게 인터뷰와 이력서를 돌리는 일은 궁극적으로 합격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생각하고 선택하니 지레 겁먹고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내 실력으로는 상상도 못 할일이야', '누가 나를 써주겠어'라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합격이 아닌 연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도전을 당과 락으로만 구분 짓지 않기로, 지금의 두려움을 딛고 문을 열기로 했다. 적어도 인터뷰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자기소개는 외워있는 상태가 될 테니까. 그런 불안정 지대로 나를 계속 해서 던지기로 했다.
면접은 다음주 수요일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많은 영어 인터뷰를 경험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연습일 뿐이다.
그러니
도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