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워홀러의 구직 여정기
밴쿠버로 온 후 구했던 정식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주방에서 두 팔 벌려 인사하면 두 팔 벌려 인사를 받아주던 따뜻하고 정겨운 손님들이 있는 곳.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주방 뒷 일은 날로 늘어났다. 업무의 분담이 명확하지 않으니 A부터 Z까지 배워야 했다. 이것을 배우고, 일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1년의 워홀 비자가 끝나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내다보이자 '퇴사'의 욕구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만두겠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일을 한번 해보고 안 맞으면 그만둘 수 있는 쿨함과 배짱은 한국이기에 가능했다. 이곳은 영어를 쓰는 나라이고, 나의 영어 실력을 출중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돌고 돌아 또 한인 잡을 구할 수도 있는데, 좋은 한인 사장님을 만날지가 미지수였다.
하지만 새로 알아야 하는 레시피와 주방의 체계,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비자 기간은 줄어들고 있는 것을 생각했을 때 더 시간을 끌지 않는 게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장 일찍 출근 한 날, 밥을 푸고 있는 사모님에게 조용히 말했다.
"사모님 저 아무래도 그만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머 근데, 또륵 또륵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내가 울지 몰랐다. 다 큰 성인이 주방에서 퇴사 의사를 전하다 눈물을 흘리다니! 두려웠다. 여기서 나가면 또 어딜 구해서 가야 하지. 여전히 다음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고, 밴쿠버에서 일을 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사모님은 나의 눈물을 보며 되려 다독여주셨다.
"적성에 맞지 안 맞으면 안 맞는 거지, 울지 않아도 돼."
그래, 해보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 눈물이 나오는 거흐엉흐ㅓㅇ엉ㅇㅇ..
다만 당장 그만두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 지금까지 일 배운 게 아깝지 않냐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하루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집으로 가서 누워있는 동안에도 일을 그만둘지 말지 고민했다. 문득 내가 워홀에 온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일이 쉽고 어렵고를 떠나, 나는 조금 더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한 후 다음날 사모님께 퇴사 노티스를 드렸다. 더 이상 사모님도 나를 말리지 않으셨다. 3주 정도 휴가를 떠나 막 합류 했던 언니가 너무 짧은 인연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함께 일할 때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꼭 해줬던 분.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에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마지막 날, 설거지를 하다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번호 물어봐도 돼요?"
언니는 남자가 아니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그래도 흔쾌히 번호를 종이에 적어주셨다. 언니 번호까지 챙긴 후 가게를 나섰다. 다시 새로운 직업 찾기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Indeed로 꾸준히 이력서를 냈던 덕에 한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포케집이었다. 인생의 첫 영어 인터뷰를 준비했다. 일을 할 때는 영어공부는 뒷전이곤 했는데, 진짜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으니 한 문장이라도 외우게 되었다. 워홀러들의 후기에 적힌 간단한 자기소개, 캐나다에 온 이유, 경력에 대한 문장을 정리해 외우고 갔다.
인터뷰 날, 동양인 남자 사장님이 나왔다. 그리고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영어를 굉장히 잘했다. 듣기 평가를 하듯 귀를 쫑긋 세우고, 질문에 성실히 답을 했다. 그러던 중 인터뷰어가 약간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다른 대답을 했나 보다. '쏘리?' 물으며 다시 질문을 받았다.
실전 인터뷰는 준비해 간 것과 달랐다. 인터뷰어는 내가 하게 될 업무의 이해도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5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인터뷰를 끝내고 포케집을 나서는데 내 또래의 다른 여자분이 들어왔다. 다음 인터뷰를 하는 사람인지 바로 내가 앉았던 자리로 향했다.
한인잡을 그만둔 것에 대한 막막한 마음과 인터뷰의 여파로 남은 답답한 마음이 섞였다.
영어로 하는 대화도
못 알아먹는 내가
일하면서 흘러가는 말들을
잘 붙잡을 수 있을까.
어쩐지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