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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Jun 14. 2023

미국 땅을 처음으로 밟은 날

포틀랜드 여행기 (1)

시작은 다예였다. 다예는 밴쿠버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다. 와플을 1인 1판 하면서 맛있게 먹고 있는 와중,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자는 말을 했다. 워홀 비자가 끝나면 다예도 나도 각자의 나라로 귀국할 것이기 때문에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마침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조금 생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가 정한 여행지는 밴쿠버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시애틀이었다. 버스만 타도 미국에 갈 수 있다니! 이왕 시애틀에 가는 거 조금 더 아래에 있는 포틀랜드도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틀 먼저 출발해 포틀랜드를 여행한 후, 시애틀에서 다예와 만나기로 했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포틀랜드를 몰랐다. 먼저 다녀온 워홀러 친구의 추천에 호기심이 생겼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예쁘고 귀여운 카페와 서점, 굿즈가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별이 너가 좋아할 것 같아’라는 말이 귀에 남아있었다.





여행 출발 당일, Flix 버스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는 길은 숲의 숲의 숲이었다. 내 옆에는 세련된 할머니가 앉았는데 미니 블랙 원피스와 체인 가방이 멋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뒤에 앉은 사람이 시끄럽게 통화하는 것과 창 밖에 내리는 비가 싫다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뒤에 앉은 남성은 말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창 밖은 우중충한 하늘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USA 땅을 밟는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꼭 여행을 떠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세운 목표, 내가 번 돈, 내가 산 티켓. 그것들이 나를 기쁘게 했다. 큰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미국의 숲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배고프면 안 되니까


밴쿠버에서 많은 자연을 봤기에 익숙할 장면이라 생각했지만 미국으로 가면서 본 숲은 느낌이 또 달랐다. 캐나다와 미국의 경계선(border)을 지날 땐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입국 심사대 앞으로 가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심플하게 지나갔다.




길이 막혀 5시간 만에 도착한 시애틀. 호스텔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다운타운 근처에 별점 4.9, 댓글 500개가 넘는 식당이 있어 그곳에 가기 위한 버스표를 구매했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홈리스들과 힙합 노래를 크게 튼 외국인들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은 저녁 7시가 되어갔고, 꾸중충한 날씨까지 더해져 미지의 시애틀이 무섭게 다가왔다. 버스표는 포기하기로 하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어 정류장을 떠났다. 근처 일식당에서 카레에 치킨을 추가해 먹었다.


호스텔은 4인이 이용하는 룸이었다. 운 좋게도 루비라는 필리핀 사람과 둘이서만 이용하게 되었다. 중년 여성 루비는 토론토, 한국, 유럽 등 다양한 곳을 여행한 여행 덕후였다. 유럽에서 3개월 산 적도 있음을 강조했던 것 답게 호스텔도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나는 가방에 있는 쿠키앤크림맛 포키를 주며 치약을 빌려줄 수 있냐 물었고, 루비는 흔쾌히 빌려줬다.


이를 시원하게 닦은 후, 넷플릭스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틀었다. 덕분에 5분 만에 꿀잠을 잤다.


제법 편안한 숙소였다




다음날,


포틀랜드로 가기 위해 오전 7시쯤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 있던 루비가 '굿모닝' 인사를 건넸다. 루비는 짐을 싸는 내게 연락처를 물었다. 나중에 필리핀에 놀러 오라고, 같이 보라카이를 가자했다. 인스타그램도 아니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언젠가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틀랜드로 가는 길엔 암트랙이라는 기차를 탔다. 적당한 흔들림,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경치, 여기에 잔잔한 노래까지 들으니 오묘하게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어떤 이동 수단도 기차의 감성을 따라올 수는 없을 테다.


기차에서 바라 본 풍경


창문 밖으로 다시 미국의 드넓은 숲이 등장했다. 이쯤 되면 포틀랜드에 도착했을 만도 한데, 아직도 포틀랜드 가려면 3시간이 남았다. 이 나라의 땅은 왜 이렇게 큰 건지.


들판을 바라보며 작년에 봤던 영화 <미나리>가 떠올랐다. 이 넓은 미국의 땅이 그들에게 얼마나 버겁게 느껴졌을까. 낯설었던 캐나다에 적응하기까지 삐그덕 댔던 지난날이 있기에, 영화 속 장면이 처연하게 다가왔다.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영화를 제작하신 감독님은 다음 작품을 제작하고 계실까’,


‘이름이 정이삭 씨였지 아마’,


‘이삭.. 이삭.. 토스트 먹고 싶다’…


그 후, 잠을 세 번 청하고서야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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