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한국인 동행
//아직 끝나지 않은 홀리데이의 기록을 이어서 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어떻게 그 타이밍에서 그 사람을 만났지? 우연히 함께 한 후 ‘참 좋은 인연이었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만난 그녀도 그랬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는 날이었다.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은 뉴욕과 미국 통틀어 가장 큰 세계 5대 박물관 중에 한 곳이다.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뉴욕의 지하철은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맛이 있는데, 지하철 공기의 답답한 공기는 뉴욕에 오래 살아도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숨 쉬는 데 방해가 돼 답답한 마음, 미술관에 간다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있을 무렵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
“I want to go this. Is it right?”
나 여기 가고 싶어. 이거 타는 거 맞아?
중년 여성, 왠지 한국인처럼 보였다. 응? 여긴 내가 가는 곳이잖아? 그녀의 핸드폰 속에서 메트로폴리탄 사진이 보였다. 가는 방향이 같아 자신 있게 답했다.
“YES!!”
흡족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내게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어디에서 왔니?
“I am from Korea”
“미투!!”
그녀도 한국 사람이었다. 10시쯤 나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마침 같은 미술관에 가는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기막힌 타이밍에 느낌이 왔다. 오늘 왠지 이 사람이랑 다닐 것 같다는. 우리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고, 어쩌다 뉴욕에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제 이름은 명애에요“
68세 명애씨! 미술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지인을 만나러 뉴욕에 왔다 홀로 미술관에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서툰 영어를 구사하지만 용기를 냈다는 그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스몰톡을 나누고 있다 그녀는 말했다.
“아~! 그럼 별이씨 따라다니면 되겠다!”
아니 잠깐, 이렇게 나의 선택 없이 동행이 된다고? 나는 그녀로부터 간택되었다. 하지만 선뜻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미술관 관람하는 날. 이런 날은 혼자 여기저기 쏘다니는 게 제맛이다. 늘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눈알을 굴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하고 있는 찰나 명애씨는 쐐기를 박았다.
“내가 점심 사줄게~ 우리 점심 같이 먹자^^”
그렇게 나의 새로운 동행이 생겼다. 한국에서 오신 68세 명애씨! 우린 지하철을 탔고,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에 도착한 후, 키오스크 앞에 섰다. 이미 표가 있는 상태였지만, 몸만 온 명애씨의 발권을 위해서였다. 키오스크에 쓰인 영어에 당황한 명애씨. 뒤에 서 갈 곳을 잃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참견을 시전 했다. 톡톡 거침없이 눌러가는 나를 본 명애씨는 감탄했다.
아유 별것도 아닌걸요. 진짜 별건 아니었다. 키오스크에 쓰인 영어엔 익숙해졌으니까. 근데 뭐랄까. 뿌듯했다.
특별전으로 고흐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가장 보고 싶었던 거였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고흐의 전시를 찾아갔다. 명애씨의 거침없는 질문 공세에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명애씨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안경을 꺼냈다. 빨간 뿔테 안경을 쓰고 열심히 감상하셨다. 천천히 감상하는 편이라 시간들 들이고 있는데, 명애씨가 내게 왔다. 반고흐의 사이프러스를 보고 전율이 돌았다며 감탄했다. 그녀가 미술에 감탄하는 모습에 나는 더 감탄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먼저 특별전을 떠났다.
혼자 남은 나는 에어팟으로 조용한 피아노곡을 들었다. 그리고 고흐의 그림을 천천히 감상했다. 이 날 특별전은 반고흐의 <사이프러스> 그림이 메인이었다. 메인까지 닿기 전에도 벽면은 고흐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있었다.
손을 턱에 대고 그림을 골똘히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옆에 섰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언뜻 봤다. 그림을 깊게 고민하고 보는 것 같았다. 입가에 슬쩍 띄운 미소를 보자니, 고흐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세상을 떠났는 지 실감할 수 있었다.
명애씨가 감탄했던 <사이프러스>는 실제로 보니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 울룩불룩 거침없이 튀어나온 붓질에서 고흐 그림의 생명력을 확인했다. 또,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성하는 고흐의 집념에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계속 그려내는 것.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과 이따금씩 찾아오는 공허함. 삶의 끝까지 그려진 작품들을 관람하다보면 작가들이 남긴 생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특별전에서 나와 다른 그림들까지 관람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명애씨와 만나기로 한 로비로 돌아갔다.
밥은 명애씨가 사주셨다. 이케아 식당처럼 뷔페식이라 밥만 한 개 쟁반에 담았더니, 빵과 음료도 담으라 했다. 와! 미국에서 밥을 얻어먹다니. 이건 진짜 대박이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들고 점심을 촬영했다.
“어머! 젊은 사람이랑 같이 먹는데 나도 해야지!!”
명애씨 역시 사진을 따라 찍으셨다. 배가 별로 안 고프다며 자신의 샌드위치 반쪽까지 내 쟁반에 얹어주고야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꿀맛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명애씨와 미국생활의 인연, 아드님과 며느리 소식을 전해 들었다.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미국에 왔다고 했더니 어린 나이에 좋은 경험을 했다며 자기 일처럼 좋아하셨다.
명애씨는 그래도 이왕 나온 거 여기서 더 생활에 보는 건 어떠냐 물었다. 지난 캐나다 생활동안 지쳐있던 게 컸던 지라 그럴 생각은 아직 없다고 했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명애씨는 자기 일처럼 아쉬워했다.
그 후 ‘미국에서 성공하는 삶’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눴다. 캐나다에 올 시점에 명애씨를 만났다면 내 생각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땐 이미 캐나다 생활을 한 이후였기에 ‘미국에서 성공하기보다 집 가서 발 뻗고 자고 싶어요’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배를 채운 후 각자 2시간 30분 정도 미술관람을 더 했다. 둘 다 혼자 잘 다니는 스타일이라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미술관에서 나온 후 한 컷의 인증샷을 남겼고, 근처의 센트럴파크를 걸었다. 센트럴 파크를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일정이 여유 있진 않아 조금만 걸었다.
명애씨와는 지하철에서 헤어지게 됐다. 혼자 잘 다니시는 분이지만 걱정이 되는 마음에 개찰구에 같이 갔다. 그런 나를 보더니 고마워하며 떠나셨다. 돌이켜보면 약간 어머니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고흐의 그림과 독립적인 동행, 공짜 밥까지. 알 수 없는 인연들과 내면이 채워지는 경험. 여행은 역시 재밌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