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별 Aug 31. 2023

꿀별, 몬트리올에 가다

불어씨와 자리 쟁탈전

오늘은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이동하는 날이다. 몬트리올은 퀘벡주에 있는 곳으로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캐나다 내에서도 꽤나 특별한 곳인데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 북미권의 파리라는 별명이 있기도 하다. 


밴쿠버부터 캘거리, 토론토까지는 모두 영어만 써서 그런지 다른 언어를 쓰는 도시로 간다는 것만으로도 여행 느낌이 낭낭했다. 아침부터 몬트리올로 가는 기차를 타러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메르시~~!”



표를 확인했던 역무원이 말했다. 메르시(merci)는 불어로 ‘감사합니다’를 뜻한다. 출발 전부터 불어라니! 내 앞에 서있던 어르신 부부는 불어가 영어보다 더 익숙해 보였다.


표를 확인하니 운 좋게 창가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얏호~! 기쁜 마음으로 자리 앞으로 갔는데 웬 흑인 남자애가 내 자리에 떡하니 앉아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표를 다시 봤다.


‘D Window’


내 자리인 것 같은데.. 창가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물었다.


“여기 너 자리 맞아?”


남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응!"


참나. 내 자린 거 같은데 뭐라는 거야. 나는 여기 내 자리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 말이 이해가 안 간다 답했다. 그리고, 자기는 불어만 할 줄 안다고 했다.


뭐지. 아까까진 영어로 대화한 것 같은데. 혹시 창가 자리에 앉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가. 그는 불어만 쓸 수 있는 걸 증명하듯 제스처만으로 대화를 끌었다. 생각보다 스무스하게 주고받은 걸 보면 바디랭귀지도 랭귀지인가 보다. 대화가 이어져도 불어씨는 자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바디랭귀지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파파고를 켰다. 나를 도와줄 21세기의 앵무새가 등장했다. 나는 즉석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불어로 만들었다.


‘너 티켓 보여줘 봐’


불어씨는 아! 하더니 “너 자리가 여기라는 거구나!”했다. 다행히 자리 쟁탈전은 완료됐다. 



기차에서 과자를 판매하는 사람이 나왔다. 둘은 불어로 대화했다. 남자는 빵을 사려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백인 남자 직원은 머리가 길었다. 긴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은 상태였다. 거기에 펜을 하나 꽂아놨는데 깜찍해 보였다. 


일기도 쓰고, 노트북에 글도 정리하며 기차 분위기에 녹아들고 있는데, 갑자기 불어씨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번 역에서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를 콕 찌르는 게 아닌가.


그는 여기 몬트리올이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 지도상으로는 아직 아닌데? 나는 아직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아!’ 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리 쟁탈전때와는 달리 포기와 순응이 굉장히 빠른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불어를 쓰는 너가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자는 거야! 프랑스어로 들리는 역의 이름을 나보다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냥 나 빨리 보내고 창가자리 앉고 싶다 말하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어씨와 교류 아닌 교류를 하며 무사히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도착해선 배를 채우기 위해 쌀국숫집에 갔다. 구글 지도에서 별점 4점이 넘고 댓글 1000개가 육박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먹는 편이다. 감사하게도 1인석 소파도 있었다. 나는 스프링롤과 팟타이를 시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는데 나만 혼자였다.


이런 나를 응원하는것마냥 서버들이 오며 가며 따봉을 날렸다. 이 장면.. 왠지 익숙했다. 혼밥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아니다. 이것은 마치 마라톤의 한 장면 같았다.


목표는 접시 비우기


접시를 완주하고 후식으로 행운의 포춘쿠키를 먹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몬트리올의 거리를 걸었다. 어디선가 버스킹이 들렸다. 남자와 여자가 존 레논의 이메진을 부르고 있었다. 남자는 템버리를 발에 끼고 박자를 탔다. 할머니의 손을 잡을 할아버지도 아이를 안은 엄마도 그 자리에 섰다. 이 노래가 이렇게 좋은 노래였나. 이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몬트리올의 거리가 생각날 것 같았다.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져 낭만이 가득한 밤이었다.

이전 10화 나이아가라 폭포 절벽 아래까지 다녀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