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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Aug 06. 2023

동행을 여행지에서 구하는 ENFP의 나 홀로 밴프

2주간 나 홀로 여행의 시작

홀리데이의 시작으로 캘거리에 왔다. 캐나다에 올 땐 캘거리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여행을 가더라도 다른 곳으로 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캐나다에서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캘거리 근처 밴프를 꼭 가야 한다 입을 모아 추천했다.


나는 밴프를 여기 와서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캐나다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산맥이 있다. 바로 로키 산맥. 길이가 대략 4,800km에 달하는 북아메리카 서부의 대산맥이다. 밴프는 로키산맥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작은 산악 도시이다.


캘거리에 도착한 다음 날, 밴프로 가기 위해 오전 7시부터 나왔다. 버스 탑승 위치는 캘거리 HI호스텔 앞이었다.


‘아유 이 놈의 버스들은 무슨 표지판도 없어’


휴대폰에 뜬 지도 근처에는 다달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일면부지의 호스텔 앞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어디가 앞문인지도 잘 모르겠는 곳이었다. 밴프 여행 후기를 보니 뚜벅이도 가능하여 신청한 건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가려니 걱정이 들었다. 투어라도 신청할 걸.


비록 버스 표지판은 없었지만 토끼 두 마리가 있었다. 응? 우리가 아는 그 토끼 말이다. 캘거리는 길에서 어렵지 않게 토끼를 볼 수 있다. 나도 출발 전, 꼭 보고 싶었는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버스가 없어 얼굴은 찡그렸지만 손은 열심히 토끼를 촬영했다. 토끼가 다리도 길고, 근육도 있는 거 같고, 약간 캥거루를 닮았었다.


시간이 됐는데 버스가 오지 않자 부정적인 상상을 하게 됐다.

알고보니 버스 정류장이 다른 곳이었다. -> 오늘 버스를 못탄다 -> 내일은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가 예약되어있어 토론토에 가야한다 = 버스 놓치면 밴프 문턱도 못 밟음!


급한 마음에 버스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조급해진 나와 다르게 핸드폰 너머의 기사님은 여유 넘치셨다. 걱정 말라고, 자기가 가고 있다며 말이다. ‘휴~ 다행이야’하고 서있는데 5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다시 불안해졌다. 표지판도 없는 곳에 떡하니 서 있으니 더욱 그랬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조금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If you cannot find me, call me…”


나는 사람들이 내 발음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Can’t’을 굳이 ‘Cannot’이라 말하곤 한다. 그는 약간 웃으며 그럴 일없다 했다.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왔다.



리무진 버스는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 투어도 아닌데 한 아버지와 기사님이 열심히 대화를 했다. 애석하게도 찐 로컬 발음은 하나도 안 들렸다.

흑흑


한 시간 자고 일어났는데 세상에나 아직도 샬라샬라 대화중이었다. 이 나라의 엄청난 친화력. 뒤에 있는 중학생 아들램을 슬쩍 보니 그런 아버지가 익숙한지 뚱한 표정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 다시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에어팟을 꼈다.




자고 일어났더니 밴프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재미있게 구경하고, 밴프에서 길을 잃을 것은 걱정하지 말라했다. 밴프를 작고 길 찾기 쉬운 '토이 시티'라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밴프는 작고 아담한 상점이 많은 토이시티였다. 가운데 길이 나있었고, 그 뒤로 로키 산맥이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좋다고 하는 곳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코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동화 같은 거리 모습에 마음이 들떴다. 이곳을 당일치기로 왔다니 내가 정말 죄를 지었소.


천천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나에겐 여유의 시간이 없었다. 밴프의 핵심 모레인, 루이스 호수를 구경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재빠르게 기프트숍을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맨투맨을 발견했다. 보라색 Banff가 써져 있는 옷이었다. 이정도로 마음에 드는 기념품 옷은 처음이라 기쁜 마음으로 맨투맨을 구매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땐 난 스스로가 사진에도, 여행에도 관심이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나와 밴프를 잘 몰랐던 거였다. 이렇게 좋은 곳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를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모레인 호수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다 한 동양인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혼자는 혼자를 알아본다고 해야 할까. 왠지 그도 혼자 온 것 같았다. 느낌이 왔다. 기회가 되면 같이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자 해야지 후후..


버스는 두번 타야해서 한 번 타고 내렸다. 화장실에 가 밴프 맨투맨을 입었다. 그리고 다음 버스를 탔다. 버스엔 반가운 얼굴이 있었으니 방금 본 남자애였다. 광대를 가득 들어 올린 채로 혼자 앉아있는 그에게 달려가 옆에 콩 앉았다. 그리고 냅다 말을 걸었다. 참고로 나는 장기자랑 5분이 왜 고문인지 잘 모르겠는 ENFP다.


“Hi~~?^^”


중국에서 온 그의 이름은 핑. 핑은 온타리오에서 공부를 하기위해 캐나다에 왔는데 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행을하는 중이라했다. 그리고 나처럼 혼자 왔다고 했다. 딱히 낯가리지 않고 서글서글 말해주는 그를 보며, 나는 너무 신이 났다.


“After We would arrive, How about taking a picture each other?”

호수에 도착하면 같이 사진 찍으면서 다닐래?


그는 빙그레 웃으며 좋다고 했다. 야호! 그렇게 모레인 호수로 향하는 버스에서 동행을 구했다.




버스는 모레인 호수 앞에서 우리를 내려줬다. 모레인 호수를 실제로 봤을 때,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빙하가 녹아 생긴 물이라던데, 진짜 푸른빛의 호수였다. 이렇게 찐한 푸른색은 처음 봤다. 핑과 나는 넋을 놓고 호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만 호수의 광활함은 폰에 담지 못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핸드폰을 들고 서로를 찍어줬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핑이 찍어준 사진이 예쁜데, 예쁜데.. 발끝이…. 나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짓고 핑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렵사리 말했다.


“핑.. 사진 정말 골져스해. 근데 혹시.. 발끝을 핸드폰 끝으로 맞춰줄 수 있을까?"


나는 핑에게 다리가 길어보이는 황금 비율을 요구했다. 고맙게도 핑은 그런 나의 요청을 잘 반영해 주었다. 마침 우리 앞에 있던 커플이 사진을 찍었다. 대포카메라를 든 남자친구가 엄청난 프로셨다. 허리를 숙이고, 다리를 구부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중국인 커플이라 중국말로 대화를 했는데, 핑은 남자가 포즈를 제안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은근 자극을 받은 건지 열심히 핑도 더욱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최애 사진


꺄악!! 핑 진짜 너 엄청난 사진작가야. 핑이 찍어준 사진에 몇 번의 보정을 거치니 어메이징 한 사진이 나왔다. 정말 고마웠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 이런 사진을 못 남겼을 텐데.


우리는 호수 앞에 앉았다. 가방에 싸 온 블루베리가 있어 블루베리도 나눠먹었다. 그리고 서로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핑은 중국 상하이에 살았다. 회계 쪽에서 5년간 일을 했고,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캐나다 학교에서 이어서 코딩 공부를 할 예정이라 했다.


5년이나 지속했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갔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신기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정엔 다양한 길이 있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맞춰야해서 서둘러 루이스 호수로 향했다. 모레인 호수에서 받은 신선함 때문인지 루이스 호수는 그저 그랬다. 핑도 같은 생각이었는 지 큰 반응은 없었다. 우리는 호수를 따라 걷다 각자의 버스 시간에 맞추어 헤어졌다.


밴프에서 캘거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1박 2일을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땐 기프트숍에서 장난감에 감탄할 시간, 커피의 맛을 음미할 시간, 호수에서 물멍할 시간 등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 홀로 밴프행을 무사히 완료했다는 게 왠지 모를 뿌듯함을 남겼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이런 과정을 통해 나의 여행 스타일을 알아가는 거지 뭐.


다시 찬찬히 찍었던 사진을 봤다. 마음에 들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핑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고마웠다는 내용이었다. 핑은 내게 답장을 보냈다. 덕분에 자신도 즐거웠다고 이야기했다. 문자 끝에 '- Bin'이 붙 여있었다. 마지막에 알게 된 것인데, 그의 이름은 빈이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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