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여행기
친숙하진 않았지만, 살면서 들어본 적은 있는 ‘시애틀’. 나는 시애틀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버스를 탔다.
시애틀에서는 앞서 말했듯 다애를 만나기로 했다. 다애와의 인연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집 뷰잉을 하다 알게 된 사이다. 캐나다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캐나다 생활을 열어줄 집을 구하고 있었다. 특이한 게 이곳의 집주인들은 뷰잉 하러 오는 사람을 동시에 부르기도 한다. 머쓱하게 말이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는 경쟁자였다.
집을 한 번 보고 각자 갈 길을 갔다면 이 인연은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부자 집주인이 다른 곳에 집이 또 있는데 거기도 볼 생각이 있냐 물었다. 적절한 가격의 집을 뷰잉 하는 것 자체가 귀했던 우리는 당연히 승낙했다. 집주인은 차로 이동을 하겠다며 가버렸고, 다애와 둘이서 30분 거리를 걸어가게 되었다.
걸어가는 동안 할 일은 대화밖에 없었다. 다애는 일본인이다. 캐나다에는 나처럼 워킹홀리데이로 오게 되었고,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호기심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집 구하는 건 정말 힘든 것 같다고 공감했고, 고향에선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겨울이라 자작자작 비가 오고 있었고, 우산이 없는 다애와 우산을 나눠 쓰며 걸었다.
두 번째 집에 도착했지만, 집주인은 한참을 오지 않았다. 그때부턴 어떤 대화를 했더라.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집 근처의 스카이트레인이 너무 크게 울려 ‘이 집과는 계약하지 않겠구나’하며 어렴풋이 생각했다. 다애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지 우리는 둘 다 그 집을 계약하지 않았다. 대신 헤어질 때쯤 인스타 아이디를 공유하여 종종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집뷰잉 하다 만나 친구가 된 저세상 인연.
사실 시애틀에 대해서는 이미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별로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밴쿠버와 다를 바 없으며, 여행 같은 느낌은 들지 않을 거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애틀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특히 외곽으로 갈수록 관리가 안되어 더럽고 냄새났다. 첫날처럼 날씨도 우중충해 별 기대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다예가 도착할 쯤부터 날씨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두웠던 시애틀에 쨍한 해가 들어왔다. 햇볕을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를 보며 새삼 날씨가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됐다.
우리는 스타벅스를 가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아니 무슨 시애틀까지 가서 스타벅스야 싶을 수 있지만, 이 스타벅스는 무려 ‘1호점’이었다. 어느 도시로 여행을 가도 볼 수 있는, 전 세계 3만 개가 넘는 매장을 가지고 있는 스타벅스. 그 전설의 시작점에 온 거였다.
나는 캐나다에서 지낸 후, 스타벅스에 대한 호감이 더욱 올라있는 상태였다. 외국 어디에서나 일관된 브랜드를 유지하는 매장을 보며 새삼 스타벅스라는 대기업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스타벅스 1호점은 바다 앞, 퍼블릭 마켓 근처에 있었다. 부두 근처에 있는 장터, 그곳에서 시작된 작은 매장. 관광 명소답게 1시간을 웨이팅 해서야 매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타벅스 1호점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스타벅스의 직원, ‘파트너’들이었다. 파트너들은 내가 보기에 파워 인싸들만 모여놓은 것 같았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손님과 웃으며 소통하고, 춤을 췄다.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똑같다고 하지만, 문화는 문화였다. 누구도 머쓱해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미국의 바이브를 느낄 수 있었다.
퍼블릭 마켓은 부산의 자갈치 시장 같은 현지 시장이다.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서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 속에서 시장다운 활력이 넘쳤다.
시장을 구경 하며 Pike place fish market이라는 생선 가게를 지나갔다.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알고 보니 물고기를 던지는 쇼를 보여준다고 했다. 손님과 거래가 완료된 물고기를 직원이 던져 손님이 직접 잡기도 하고, 직원이 잡아주기도 하는 퍼포먼스였다. 운 좋게도 우리가 지나갔던 때가 쇼를 보여주는 시점이었다.
정말 물고기를 던진다고? 싶을 찰나, 주황색 앞치마를 입은 직원들이 ‘우우우!’하며 마을 족장들이 낼법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운터 안에 있던 직원이 커다란 생선을 냅다 바깥쪽으로 던졌다. 손님들이 많은 쪽, 정확히는 내 쪽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쫄아 몸을 뒤로 뺐다. 너무 가까이 있는 나머지 생선에 붙은 얼음이 내 얼굴로 와사사사 튀었다.
월척!! 내 바로 앞, 모자를 뒤로 눌러쓴, 큰 키의 직원이 물고기를 덥석 잡았다. 그것도 한 손으로. 그가 생선을 놓쳤다면 나는 시애틀에서 김치싸대기도 울고 갈 생선싸대기를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더하여 그가 잡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내 마음이었다. 와 진짜 그 피쉬보이가 너무 잘생긴 거다. 깜짝 놀랐다. 어디서 영화 찍으셔야 할 것 같은 분이었다.
“He looks good!”
함께 있던 다애 역시 놀란 듯 말했다. 아무래도 피쉬보이는 다애의 마음까지 잡아버린 듯했다. 도대체 몇 명을 월척한 것인지! (근데 사실 시애틀 퍼블릭 마켓에 잘 생긴 남자들 짱 많다!)
시장에서 느낀 생동감과 입체감은 여러모로 살아있는 느낌을 전해줬다. 시애틀 남자들의 얼굴을 보고 심장이 뛰는 것인지, 시장의 활력에 심장이 뛰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호호) 이후 스페이스 니들, 관람차를 구경하고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갔다.
숙소는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현지 집이었다. 시간이 많이 늦어 우버를 타고 이동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외진 곳, 산 위에 있었다. 우버 기사 역시 이렇게 외진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는 걸 걱정하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기사님 30분 정도 길을 헤맸다. 나는 외진 그 집에서 무슨 일 생기면 세상 사람들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두려움을 느꼈다. 여길 선택하길 잘한 걸까.
집에 도착 후 만난 집주인을 만났다. 어우 더 무서웠다. 그냥 당시의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다애는 덤덤해 보였고, 나는 3초 정도 공포에 떤 후 딥슬립을 했다.
두려움과 다르게 다음 날 다시 마주한 호스트는 에어비엔비 리뷰에서 그랬듯 Open mind를 가지고 있었고, Warm and Kind 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으며 스몰톡을 나눴고, 그는 시애틀의 명소를 추천해 주었다.
둘째날도 여러 명소를 돌고 집으로 향했다.
여행을 모두 끝내고, 밴쿠버에 도착했다. 스카이트레인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는 길, 확실히 밴쿠버가 내 동네처럼 느껴졌다. 이곳의 예측가능함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은근 긴장 상태로 여행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자주 한국에 가고 싶어 했는데 여행을 해보니 밴쿠버가 또 편안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적응력은 이렇게나 놀랍다.
홀로 여행을 떠났으면 조금 외로웠을 것 같다. 스타벅스 1호점만 알고 있던 나에 반해, 명소를 많이 알고 있던 다애 덕에 짧은 시간동안 좋은 곳도 많이 돌아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밴쿠버 생활동안 다애 덕에 알게 된 맛집이 제법 된다. 좋은 인연은 역시 새로운 곳을 알게 하고,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나보다.
다애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시애틀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