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캐나다 갔나
벌써 한국에 온 지 3개월이 넘었다. 캐나다에서 지낸 것이 전생처럼 느껴지는 요즘, 올해가 가기 전까지 워홀의 기록을 어서 마무리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캐나다에서 했던 WorkWorkWork.
그냥 Work도 아니고 Work인 이유는 캐나다에서 쓰리잡까지 했기 때문이다. 일에 미쳐서는 아니었고, 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카페와 레스토랑 근무, 디자인 프리랜서까지 싹~ 쓰리!
첫 번째로 구했던 일은 푸틴 레스토랑이었다. 푸틴은 감자튀김에 그레이비소스를 뿌려 먹는 캐나다 전통 음식이다. 당시 나는 캐나다에 온 지 13일째 정도 된, 푸틴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력서를 돌리다 당일 합격이 되었고, 다음날 바로 출근했다.
캐나다에서 구한 첫 잡이 현지 레스토랑이라니, 아주 기뻤다. 하지만 막상 출근을 하고 보니 영어로 소통을 하며 일을 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고, 현지 맛집이었던 그곳은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모든 직원이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일을 했다.
그 사이에서 열심히 감자를 튀겼으나 애석하게도 출근 둘째 날에 잘려 새로운 일을 구하게 되었다.
자신 만만하게 떠났던 초심은 뒤로 보내고, 영어의 한계를 느꼈던 나는 며칠 후 한인잡 샌드위치집에서 잡을 구했다.
한인 부부 사장님께서 운영하셨던 이곳은 돌이켜보면 깊은 추억을 안겨준 곳이다. 정신없었던 감자튀김 집과는 달리 나름 슬로우할 땐 슬로우 했던 편이라 외국 손님들을 차근차근 바라보고,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드에 나올 것 같은 따뜻한 할아버지의 정석 개리부터, 마들렌 도둑과 무해한 약쟁이들, 현장의 흙과 먼지로 뒤덮여 있지만 언제나 행복한 미소로 점심을 먹던 롱쇼맨들, 일터 근처에 있어 급식소처럼 매일 오는 단골손님들까지.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이곳에도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계산기"였다. 보통 한국에선 결제를 할 때 포스기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 가게는 메뉴를 치면 가격과 영수증이 나오는 포스기가 없었다. 그저 계산기만 존재했다. 손님으로부터 메뉴를 듣고 메뉴판을 보고 내가 가격을 직접 찍어야 했다.
집에 가서 메뉴를 익히고, 가격을 외웠다. 음료수 2.39부터 햄버거 11.29까지 열심히 외웠다. 근데 신년을 맞이하며 가격이 인상되었다. 세상에나 도로 아미타불.
계산할 때만큼은 포스기를 사용하고, 조금 더 영어를 쓰는 환경으로 직업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섰다.
캐나다의 원양어선이라 불리는 팀홀튼. 그때는 현지잡이라고 폴짝폴짝 뛰었다.
그래도 사실 당시 기가 많이 죽어있었던 내게 팀홀튼은 나름 용기가 되었다. 한인 샌드위치집에서 만들었던 샌드위치에 비하면 팀홀튼 샌드위치는 굉장히 단순했다. 고작 한 달의 경험이었지만 나는 제법 경력직이었던 것이다.
첫날부터 매니저는 나의 샌드위치 실력에 만세를 외쳤고, 초 단 시간에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출근하면 언제나 샌드위치 바를 맡았고, 샌드위치 만들기에 몰입했다.
이때 나는 나에 대해 힌트를 많이 얻었는데, 바로 내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서빙보다 한 자리에서 집중하여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패스트푸드점 답게 여기선 어나더레벨의 진상을 만나 슬픈 나날도 있었지만, 외국인 코워커들과 일할 수 있어 좋기도 했다.
캐나다의 카페나 레스토랑은 보통 한국처럼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대신 '쉬프트'라는 매주 새로운 시간을 받는다. 근무시간이 유동적인 만큼, 매니저가 쉬프트를 줄이면 생계에 위협을 느끼기 딱 좋은 구조다.
불안정한 쉬프트와 바쁜 팀홀튼에서 풀타임으로 일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이때부터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캐나다에서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갔는데, 다시 디자인 일이라니. 비전공자로 디자인 일을 시작했던 터라, 만들면서도 누가 나를 뽑겠어 같은 자괴감에 괴로웠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어찌어찌 완성했고, 두 개의 업체와 일을 시작했다. 졸지에 WorkWorkWork 쓰리잡이 된 것이다.
첫 번째 업체는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일은 한국에 있을 때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어서 어렵지 않게 했다. 아니, 오히려 팀홀튼에서 바쁘게 일하다 앉아서 일하니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역시 한인 업체였기에 소통은 한국말로 했고, 일할 때 대표님이랑 이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꿀별아 오징어순대 인스타 디자인 만들어줘"
"네, 근데 오징어순대가 영어로 뭐예요?"
"오징어순대? 잠깐만.. (파파고 이용)"
대표님과 도란도란 앉아 디자인을 하고, 파파고에 오징어순대를 검색하며 근무를 했다. 음식 업체인 만큼 집으로 가는 길 갈비탕 얼린 것을 손에 쥐어주셨던 대표님 덕에 끼니 걱정도 줄였다.
근무지가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보니 퇴근길 10시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 시간대에도 제법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캐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느꼈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져 두 번째 업체와 마지막 근무지는 다음 글에 이어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