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
어릴 적 집에는 늘 고양이가 있었다. 이름은 늘 '나비'였다. 나비들은 늙어 집을 나가 안 들어오는 것으로 생을 마쳤던 것 같다.
나는 사나운 고양이를 좋아했다. 어느 날 언니가 친구집에서 노랑병아리 같은 새끼고양이를 데려왔다. 절대 인간 손길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나비였다. 표범 같은 얼룩무늬에 흰색 털신을 신은 그 아이는 내 손을 가장 먼저 받아주었다.
언제나 사납고 날렵할 것 같은 노랑나비도 어느 순간 느릿느릿해졌다. 햇살 속을 나른하게 걷거나 가게에 쌓아둔 쌀가마니와 안방 장롱 위를 사뿐히 날아다니거나, 수채 앞에서 꿈쩍 않고 사냥 자세로 어둔 구멍을 노려볼 때 나는 나비에게서 재미와 기쁨, 안전과 신비함을 느꼈다.
나는 예닐곱 살 쯤이었고 우리 집은 대가족으로 쌀가게를 하고 있었다. 나비는 풍요로운 곳간을 잘 지켜내고 있었지만 아빠는 이상하게도 고양이를 싫어했다. 고양이를 보면 발로 차거나 목덜미를 잡아 냅다 던져버리곤 했다. 공중으로 내팽개쳐진 나비는 그때마다 한 바퀴 멋진 공중회전을 하고 가볍게 지상으로 착지하곤 했다.
그렇게 늘 멋진 서커스를 보여주던 그 아이가, 어느 날 공중회전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빠가 나비를 여러 번 집어던진 장면이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인지 상상인지 정확하지 않다. 글쓰기는 시간여행인데, 어린 시절의 시간 여행에는 사실과 상상을 구별할 수 없다. 둘 다 시간 여행의 연료들이다.
1999년 초여름 어느 날 시골 장터에 친구랑 놀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한 마리 샀다. "샀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때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결국 파양 한 나 자신을 조롱하는 언어인 셈이다. 이름은 또 멋지게 "산마루"라고 지었다. 성은 산이요, 이름은 마루라고.
진한 밤색털을 가진 귀여운 바둑이었다. 시골 장터의 할머니가 종이 박스 안에 여러 마리를 놓고 팔았다. 가장 귀여웠고 똘망똘망했다. 박스 안에서 나를 바라보던 까맣고 깊은 눈동자를 보았다. 나는 사랑과 연민을 느꼈고, 나의 눈동자에서 할머니는 충동구매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다음날은 하루종일 지방으로 여행 가는 날이었다. (어쩌면 1박으로 한 여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미안해서 당일로 기억을 변형시켰는지도.) 마루는 종일 끝없이 울었고, 다음날 구석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지쳐 잠들어 있을 때 엄마라는 작자가 나타났다.
환경 조성도 하지 않고 기본 지식도 없이 데려와 키운 마루는 점점 사나워졌다. 나는 손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물리기를 여러 차례. 6개월쯤 지나 나는 사나운 개를 다룰 수 있는 사람에게로 보냈다.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울 거라는 말과 연락처를 받았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의 품에 이상하게도 얌전하게 안겨 가는 마루는, 멀어지면서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횡단보도 지나가면서도 건너편에 있는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기른 강아지, 마루. 마루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된 봄, 나는 새삼 고민이 깊었다. 이러다 진짜로 꼴등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60여명의 반에서 오십몇등이었다.
숙제를 안 해 가도 그만, 구구단을 못 외워도 그만, 영어 발음기호 몰라 전혀 읽을 줄 몰라도 부끄럽지 않았고, 손바닥을 맞는 것 따위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괜찮았다. 그게 훨씬 행복하지 않은가, 한참 신나게 놀고 잠깐 혼나는 게.
그런데 왜 새삼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고 하니,
좋아하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엘은 학교에서 가장 높은 아이큐를 가졌으며 전교 일이 등을 다투고 춤과 노래까지 잘하는 인기 있는 아이였다. 교문 앞에는 때로 엘을 보러 온 다른 학교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훗날 인기 연예인이 될 게 분명한 키 크고 노래 잘하는 쥐와 사귄다는 소문이 있었다.
3학년, 나는 엘과 같은 반이 되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나갔다 오니 엘이 내 자리에 앉아 내 공책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서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낙서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간질간질했던 몸의 감각은 생생하다. 엘이 슬쩍 잡아당기더니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내 허리에 왼쪽 팔을 두르고는 무슨무슨 말을 하며 맞은편의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나는 허공 높은 곳에서 그네를 타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엘은 방과 후 나를 기다렸다. 같이 가자고 했다. 아주 같은 방향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한 방향이었다.
나는 엘과 친구가 되기 위해 깊은 고민을 했고, 결국 비슷한 지적 수준을 갖추기로 작심했다. 나는 교과서를 필사하며 외웠다.
나는 엘과 친구가 되었다. 등하교를 같이 했다. 이따금 쥐가 합류해서 셋이 놀았다. 건물 옥상에 있는 롤러스케이트 장에 같이 가기도 하고, 골목길을 걸으며 취미와 장래희망 등을 이야기를 하는 행복한 시간도 가졌다. 크리스마스이브 전까지.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엘과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엘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주 추웠다. 나는 한두 시간 정도 기다렸다.
그리고 엘의 집으로 갔다. 마당의 나무는 며칠 전 내린 눈으로 하얗게 얼어 있었고, 오후의 엘의 방은 불이 켜 있었다. 엘과 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엘과 함께, 엘의 방에서, 엘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보내주었다는 그 보드라운 담요를 덮고, 행복에 겨워하던 그 자리에 쥐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엘이 나와 만나는 이유가 쥐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가 잠시 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늘 외면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모르 척할 수 없는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나는 엘의 집 앞 전봇대 아래 언 눈더미 위에 서서 한참을 덜덜 떨다가 돌아섰다. (사실은 엘의 집과 우리 집이 그렇게 멀었다는 걸 이때 분명하게 보인다.) 나는 걷고 걸었다. 눈물이 흘렀고 서러웠고 억울했다. 인도를 걷다가 어느 언덕처럼 높은 인도를 지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달리는 차도 아래로 떨어져 죽는 상상을 했다.
그때 나는 적어도, 첫사랑의 실연으로 죽는, 그런 바보는 되고 싶지 않았다.
첫문장은 첫사랑 같은 거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거나 쓰기 시작하는 것이 유익하다. 끝부분에 쓴 것이 첫문장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