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문장을 낳는다
1979년 10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나는 늦잠을 잤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엄마 아빠는 잔소리 폭탄을 마구 던졌다. 나는 폭탄 맞은 머리를 하고 눈곱을 떼며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뭐지, 이 이상한 공기는? 뭔가 술렁이는 분위기에 알 수 없는 '바쁨'같은 게 있었다. 나는 지각할까 봐 바빴기에 발걸음을 재게 놀리며 달리듯이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학교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이상한 기운과 술렁이는 공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날은 1979년 10월 27일 아침이었다. 10월 26일의 다음날 아침이었다. 산정상처럼 우뚝하니 솟아 있는 교문이 보일 때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아이들이 너무너무 슬프게 울었다. 통곡하는 아이도 있었다. 한 아이에게 물었다.
"왜 울어?"
그 아이는 눈물 젖은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안 슬퍼? 대통령이 죽었는데."
"......"
나는 뽀송뽀송한 얼굴로 눈만 꿈뻑꿈뻑했다.
눈물 젖은 그 아이나 뽀송뽀송한 얼굴의 나나, 그 당시 죽은 그 사람에 대해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던 열두 살이었다. 아무것도 몰라도, 아니 아무것도 몰라서 나는 슬퍼할 수 없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공유된 경험이 있어야 생기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들이 그렇게도 슬피 울었던 것은 슬퍼하는 어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내 주위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바람직하든 않든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어른들 뿐이었다.
꼬리 따기 놀이라는 게 있다. 두 편으로 나누어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여럿이 죽 서서 상대편의 꼬리를 붙잡는 편이 이기는 놀이다. 또 말장난으로 하는 꼬리 따기가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래,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기르면 기차"하는 말장난 같은 놀이. 언어유희다.
글쓰기도 언어유희다. 꼬리 따기처럼 써보는 것이다. 앞문장의 있는 단어를 따서 다음 문장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한정 없이 쓸 수 있다. 물론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엉뚱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아래는 위에 쓴 글을 어떻게 단어 따기를 해서 썼는지 쉽게 보이도록 표시해 보았다. 좀 인위적인 면이 있다.
문단과 문단을 연결할 때는 밑줄 친 것처럼 앞문단의 첫 문장을 따오는 방법도 있다. 대개 한 문단을 쓰고 그다음 문단을 쓸 때 많이 막히는데 이 방법을 쓰면 좀 도움이 된다. 이것 역시 인위적인 면이 있지만, 리듬이 형성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반복하면 리듬이 생기고, 반복에는 편안함이 있다.
(예)
1979년 10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나는 늦잠을 잤고, 여느날과 다름없이 엄마 아빠는 잔소리 폭탄을 마구 던졌다. 나는 폭탄 맞은 머리를 하고 눈곱을 떼며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뭐지, 이 이상한 공기는? 뭔가 술렁이는 분위기에 알 수 없는 '바쁨'같은 게 있었다. 나는 지각할까 봐 바빴기에 발걸음을 재게 놀리며 달리듯이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학교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이상한 기운과 술렁이는 공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날은 1979년 10월 27일 아침이었다. 10월 26일의 다음날 아침이었다. 산정상처럼 우뚝하니 솟아 있는 교문이 보일 때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아이들이 너무너무 슬프게 울었다. 통곡하는 아이도 있었다. 한 아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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