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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 Oct 31. 2024

기억 줍기

글쓰기는 겨울의 입구에서 이삭을 줍는 것


"일꾼들이 돈을 막 셌어. 구겨진 돈을 펴며 슬쩍슬쩍 주머니에 집어넣어도 했지. 그래도 엄마 아빠는 몰라. 그까짓 돈쯤이야. 방안에 돈이 그득 했거든."


큰언니가 말했다. 나보다 아홉 살 많은 큰언니는 항상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다. 양장점은 우리 집 1층에 달린 가게였다. 쇼윈도에 목 없는 마네킹이 입고 있던 붉은색 원피스가 기억난다. 커다란 텔레비전 장식장과 흑백 다이얼식 전화기도 기억난다. 둘째 작은 아버지가 맨날 와서 어딘가로 전화했던 것도 기억난다.


우리 집은 쌀가게를 꽤나 크게 했다. 당시 돈으로 2백만 원을 들고 쌀 사러 갔다가 잃어버려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어떤 여인에게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만) 큰 지장은 없었다


풍요는 거기까지였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보증을 섰고 순식간에 집을 날리고 엄청난 빚을 졌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첫째 아들네를 나와 둘째 아들네로 갔다. 첫째 아들이 머슴살이 해서 대학공부까지 시킨 그 둘째 작은 아버지 집으로, 이후 선산을 가로챌 그 둘째 아들집으로. 그리고 첫째 아들은 빚냉이를 피해 여섯 명의 자식을 친척집에 골고루 맡기고 서울로 간다.


서울로 가기 전, 육 남매가 처음으로 부산시 동구 수정동 그 쌀집을 나와 공사장에 있는 어느 컨테이너에서 하룻밤을 지냈던 걸 나는 기억한다. 컨테이너는 여덟 명을 다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우리가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쥐들을 피해 나무궤짝 위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그 겨울 땅바닥의 냉기와 컴컴함과 그 어둠 속에서도 나무궤짝이 보이는 선명함,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둘째 언니가 지르던 그 비명소리가 기억에 남아있다. 그날 밤이 지나고 우리 육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글쓰기는 기억을 줍는 행위다. 수많은 낱알들을 보며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려 줍는 행위다. 다음은 기억의 조각들을 이삭 줍기에 비유해서 쓴 내 옛날시이다.



이삭 줍기



사다리 놓고 올라가는 다락이지만

개똥벌레처럼 별빛이 날아드는 창과


장난치다 수없이 빠지고 건져져도

여전히 하늘처럼 맑은 우물이 있던 곳


아이스케키 사달라 떼쓰며 종일 울다 지쳐 잠들던

그 여름의 시원했던 대청마루와


뜀뛰기를 못해 맨날 고무줄만 잡던

개구쟁이 우리들의 석류나무가 서 있던 골목길


나무에서 떨어져 무르팍이 깨져도

내미는 포도송이 앞에서 헤헤 웃던 그날도


바람이 차다

밤차 타고 떠나던 엄마 아빠의 뒷모습도

우리 형제 흩어져 아는 집에 더부살던 그날도

사촌형제 군고구마 먹는 모습 훔쳐보던 그날도


주운 동전 하나 덕에 더부살던 집을 나와

영도다리 사글셋방 큰언니한테 가던 날

언니들과 이불 덮고 누워 베개 적시던 그 밤에

골목길 울리며 돌아드는

찹쌀떡과 메밀묵 사려 소리

자장가로 삼아 자던

그래서 엄마 꿈을 꾸며 자던 날

배가 고파 연탄가스를 그리 마이 무운나

하며 엄마처럼 안아주던 큰언니의 얼굴도


그날

그 모든 날들을

언니 손잡고 서울 올라오던 날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털어버렸던 기억의 조각들을

이제는 강아지처럼 따라오는 햇빛을 데리고 가

가슴보다 큰 바구니를 들고서

저무는 가을에 줍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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