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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29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by 해리포테이토

나는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서 돌아가신 두 분의 이야기를 언니들과 이모로부터 들었다. 그들의 첫 만남은 대강 이랬다.


1953년 (혹은 그다음 해) 경상북도 상주가 고향인 지씨녀는 열다섯에 김씨남을 만나 결혼한다. 술꾼이었던 아빠와 작은 무녀였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지씨녀는 동생 셋을 건사하느라 바빴다. 찰박찰박, 추우나 더우나 사철 빨래를 하던 그 개울가에서, 그날 마침 (혹은 하필) 김씨남의 눈에 띄었다. 그는 미군과 함께 상주에 잠시 들렀던 것이다. 엉터리에 눈치껏 말하는 통역도 꽤 쓸모가 있어서 그를 불러주는 곳이 있었고 그렇게 전국을 미군부대와 다녔다. 낼모레면 서른이 되는 김씨남은 아직 총각이었다. 중매를 하는 족족 퇴짜를 맞았다. 여러 번의 퇴짜를 맞은 탓인지, 그는 집을 떠나 가열차게 전국을 다녔더랬다. 아마도 퇴짜의 원인은 그의 두 손에 있었을 것이다. 그는 손가락이 없다. 십대 때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거의 모조리 잘려먹었는데, (훗날 여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렸다고 말한다) 열 손가락 중 엄지만 손톱이 있을 뿐이었다. 여덟 개의 손가락 끝이 둥글고 뭉툭하게, 한마디 정도만 남아있었다. 그나마 엄지 손가락이 남아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김씨남은 지씨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다행히도 그녀의 아빠는 그의 손을 문제삼지 않았다. 호방하게 내어놓는 술과 용돈에 어깨춤을 추며 즉시 결혼 승낙을 했더랬다.


그리하여 엄마의 십팔번이 탄생한다. "내가 열다섯에 쌀 한가마에 팔려"로 시작하는 십팔번. 엄마는 그렇게 팔려왔다고 한스러워했는데, 게다가 사는 내내 바람을 피우고 머리를 다치는 등 오만 고생을 다 시켰는데도, 아빠를 끝까지 보듬어주었다.


아빠 친척은 몇 있는데 엄마 쪽은 어찌 된 영문인지 없다. 사진 속 젊은 엄마와 함께 있는 어르신들을 생전 본 적이 없다. (아주 어릴 때 한번 본 것도 같다) 사진 속 어르신들은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 같다. 아니 그냥 옛날이야기 그 자체인 느낌이다. 궁금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살아온 이야기들, 산을 넘고 강과 들을 건너온 이야기가. 그들의 깨달음과 지혜를 듣고 싶다. 저 문 너머, 달의 뒤편에 계신 그들의 이야기가.



타인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뒷담화는 유혹이다. 먼저 내 부모의 뒷담화부터 하는 게 어떨까. 살살 조심해서 풀어보면 그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까.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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