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스무날

정원의 스승 필레몬

by 해리포테이토

그리스 신화에 유명한 부부들이 있는데, 그중 '데우칼리온'과 '피라', '필레몬'과 '바우키스'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노부부의 전형이다.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홍수 뒤에 살아남은 인간이다. 부도덕한 인간 세상이 홍수에 의해 정화될 때 의로운 존재로서 살아남은 부부이다. 홍수가 끝난 뒤 소원을 물어보자, 이들 부부는 동반자로서의 인간을 원했고, 그때 신은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다. "어머니의 뼈를 어깨너머로 던져라."


이 말을 지혜롭게 알아듣고, 대지라는 어머니의 뼈인 '돌'을 어깨너머로 던진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고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는, 인간을 재창조한 인물들이 데우칼리온과 피라이다.


필레몬과 바우키스는 인간의 신에 대한 환대 시험에서 통과한 가난한 부부이다.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거지차림으로 마을을 방문하는데 모두가 문전박대를 한다. 이제 그만 "이 마을을 멸망시키고자"할 때 마지막으로 남은 한 집만 더 가보자고 한다. 이 집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성을 다해 신을 대접한다. 필레몬과 바우키스에게 소원을 물어보자, 이들은 신전의 사제가 되기를 원했다. 이들의 소원은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신전 앞 경건한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융은 그러한 필레몬의 신화 이야기를 자기만의 필레몬으로 보여준다. 2권 21장에 마법사부터 등장한다. (2권 21장은 2권의 마지막 장으로 매우 길다. 21이라는 숫자에 맞추기 위해 끝내기 위함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융은 필레몬을 만나 '마법'을 배우기를 원하고, 필레몬은 마법에 대해 설명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법과는 다르다.


필레몬은, '공감'과 '고독' 속 '자신의 정원'에서 '생명의 물'을 주는 존재이다. 그는 융 내면의 '다가올 것들의 지혜'를 품은 존재이면서, 우리 안에 있는 필레몬이기도 하다.


도처에 있는 신을 환대하며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우리 안의 지혜를 인격화한 존재가 필레몬일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신이 자신의 안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르지 않는 단지로부터 땅을 비옥하게 할 물이 당신의 정원으로 흐르고 있다." (레드북 323쪽)


잊고 있던 꿈이 기억났다. 몇 년 전 아마 레드북을 두 번째 읽은 뒤일 것이다. 꿈에서 필레몬을 만났다. 나는 필레몬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 내 무의식에 저장되어 나의 정원을 가꾸게 하지 않았을까. 나는 작은 정원이다. 내 안에 작은 정원이 있다. 작은 나무와 담쟁이들과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누군들 자기 안에 정원이 없을까.





Philemon and Baucis (1658).jpg Philemon and Baucis (1658)Rembrandt van Rijn (Dutch, 1606-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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