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열아흐레

신성한 어리석음, 두번째밤

by 해리포테이토

문이 두 개 있다. 오른쪽문과 왼쪽문. 어느 쪽 문부터 들어가 볼까?


융은 먼저 오른쪽문을 선택해서 들어간다. 그곳에는 '사서'가 있다. 사서가 융에게 뭘 원하는지 묻고, 융은 토마스 아 캠퍼스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싶다고 한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한다.


예수를 진정으로 본받기를 원한다면 그 누구도 모방하거나 흉내 내지 않고 자기 길을 걸어야 한다고, 에수가 바로 그렇게 그 "어떤 본보기도 흉내 내지 않았"(239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적 세계에서의 책은 무엇을 의미할까? 꿈에 등장하는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만약 꿈에서 사서가 내게 "무슨 책을 원하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떤 답을 할까 궁금했다. 얼른 떠오르지도 않거니와 의식으로 떠오른다고 해도 무의식에서 원하는 책은 다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른쪽을 의식의 방향으로, 왼쪽을 무의식의 방향으로 보기도 하는데, 레드북 245쪽을 보면, "오른쪽에 나의 사고가 있고, 왼쪽에 나의 감정이 있다"라는 문장을 통해 여기서는 오른쪽이 사고의 방향이며 왼쪽은 그 대극인 감정의 방향이었다.


오른쪽문을 통해 들어가 '사서'와 대화를 나눈 융은 이번에는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곳에는 부엌이 있고 난롯가에 뚱뚱한 여인이 있다.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융은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어 정신병원으로 간다. 정신병원에는 의사와 교수가 있다. 그리고 뜬금없이 '옷장의 옷'을 본다. 그 옷들은 융의 페르소나, 의사로서 교수로서 살아온 융의 페르소나를 옷으로 보여준 것같다.


이번 장에서는 '종교적 광기'와 '신성한 광기'에 대해 말한다. 잊고 있던 야성을 일깨우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철두철미하게 그리스도만을 생각했던 이 세상의 정신을 뒤로하고, 재미있고 놀랄 만한 다른 영역으로 들어간다."(245쪽)



예전에 도서관에 들어가는 꿈을 꾼 적 있다. 오래된 신전처럼 느껴지는 도서관은 입구 정원에 성수처럼 솟는 둥그런 분수대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또 언젠가는 동화책을 한 아름 선물 받은 적도 있고.


이번에 도서관에 간다면 나는 어떤 책을 원할까? 궁금했다. 간절하다고 항상 꿈을 꾸는 건 아닌데, 이번에 그렇게 간절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다음날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갤러리 혹은 미술전시장 같은 장소에 들어간다. 서점처럼 책이 전시되어 있다. 책 옆에는 팸플릿이 있다. 나는 어느 책을 집는다.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간다. 카운터에는 한 남자가 있고 그는 내 책을 보더니 팸플릿을 가져다준다. 회랑처럼 기다란 저쪽에서 나를 알아본 청년이 내쪽으로 걸어온다. 나는 책을 펼쳐본다. 왼쪽 페이지에는 힌두교의 옴자 기호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옴자 획 하나하나를 대입해서 설명해 준다.


꿈에서 펼쳐본 그 페이지를 아직도 음미해보고 있다. 우주의 근원적인 진동이라는 그 옴자를 조그맣게 소리내 본다.






칼 구스타프 융 <레드북> 부글북스 29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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