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열여드레

지옥, 제물 살해

by 해리포테이토

아마도 레드북 책 전체 중 가장 무시무시한 장면인 것 같다.


융은 또 지옥으로 들어간다. 음침한 납골당에 시신들이 있다. 악마 같은 존재들이 있다. 뱀처럼 생긴 악마 같은 남자들이 어느 처녀의 몸 위에 있다. 그런데 이 처녀는 악마 중 가장 사악한 존재의 눈을 뽑으려는 듯 낚싯바늘을 꽂는다.


악마들이 처녀를 고문하고 죽이려 했지만 그녀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발악하며 스스로를 지켰고 마침내 악마의 눈에 작은 낚싯바늘을 꽂는 데 성공"(207쪽)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악마의 눈을 뽑아버리지는 않는다. 뽑아버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가 두 번째 과업에서 히드라를 없앨 때 단지 잘라낸다고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악의 요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12장 지옥에 이어 13장 제물살해에서, 융은 원하지 않는 환상을 또 접한다.


뱀들이 우글대고 매스꺼운 느낌의 섬뜩한 계곡과 범죄와 악의 냄새를 풍기는 곳, 나무들은 시든 곳. 바위 위에 머리가 깨어진 마리오네트가 있다. 바위는 제물을 바치는 제단인가? 그리고 옆에 끔찍하게 뭉개진 소녀의 시신이 있다. 머리가 깨어진 것은 상징적으로 좋은 의미를 띨 것이다. 이제 머리보다는 심장의 언어로 받아들인다는.


소녀의 시신 옆에서 베일을 쓴 여성의 형상이 나타난다. 그녀는 융에게 소녀의 시신에서 간을 꺼내 한 조각 먹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소녀의 영혼이며 융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치료의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융은 무릎 꿇고 앉아서 소녀의 간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는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역겨움을 참고 참으며 삼키는데 융은 기절할 것 같은 끔찍함을 계속 느끼면서도 거부하지 않았고 결국은 삼키는데 성공한다.


그러자 소녀의 영혼이 고맙다고 말하며, 베일을 걷어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융의 영혼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불은 당신을 통해서 제대로 탄다. 당신을 안내하고 있는 그것은 당신이 그 길을 가도록 강요한다."(216쪽)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땅에 닿기 전에 혹은 떨어지려고 할 때 무섭고 놀라서 꿈에서 깨곤 하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지옥의 공간과 제물 살해의 장소에서 참고 인내하며 그곳을 직시하는 융의 용기에 새삼 감탄하며 나도 담대하고 용감해지기를.



칼 구스타프 융 <레드북> 부글북스 2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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