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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과 함께 하는 인생여행, 열이레

알이 된 이즈두바르

by 해리포테이토

내면에서 죽어야 할 존재가 있는가 하면 치유와 정성으로 살려야 할 존재가 있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융은 레드북 시작 단계에서 영웅을 살해하고, 이즈두바르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비천한 반쪽을 만났고, 그는 이 비천한 존재를 비천하게 대하지 않았다. 존중하고, 배울 것이 있다고 경청했다. 그리하여 그는 생명의 피를 토하고 죽었던 것이다. 융의 두 손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리고 나선형처럼 돌아가듯, 레드북 초기에 만났던 붉은 존재와 은자를 다시 만나고 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이즈두바르를 만난 것이다.


융은 이즈두바르를 사랑한다. 나도 나의 이즈두바르를 사랑한다. 내 깊은 곳 아주아주 깊고 멀고 멀리에서 온, 나의 상반된 쪽에 있는, 신을 경외하던 자연인, 벌레처럼 작은 나와 대비되는 커다란 존재.


독으로 인해 죽은 것처럼 뻣뻣하게 누워 있는 이즈두바르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융은 고민한다. 하지만 이즈두바르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거부하지 않는다. "죽음이 찾아오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라고 한다.


융은, 공상의 힘을 믿어본다. 이즈두바르가 자신이 공상 속의 존재라는 받아들이지 않고 분명 현실적인 존재라고 믿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여기며, 이즈두바르는 자신의 공상 속 존재라는 것에 터무니없다고 여기면서도, 그렇게 하면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묻는다.


나: 당신도 이름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걸 알잖아. 또 병든 사람에게 치료를 위해 새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도 알잖아. 새 이름과 함께 그 사람에게 새로운 본질이 생기는 거야. 당신의 이름이 곧 당신의 본질이 되거든.
(172쪽)


이즈두바르를 치료하기 위해서 장소를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거대한 존재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 융은 상상의 힘을 이용하여, 그를 등에 업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즈두바르라는 거대한 존재가, 짐이 융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가볍게.


그리스 신화에서, 이아손이 할머니로 변신해서 온 헤라여신을 엎고 강물을 건너듯. 하지만 이아손에게 신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는데, 융에게 업힌 이즈두바르는 아주 가볍고 오히려 그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 나의 반대 극에 있는 요소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들어 올리고 가볍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융처럼, 알처럼 작게 만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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