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보름

이즈두바르를 만나다

by 해리포테이토

'나'(융)는 황량한 산맥의 높은 협곡 사이를 걷는다. 길은 차갑고 뜨겁다. 흰색과 검은색의 길. 검은 부분을 디뎠다가 뜨거움에 놀라고, 흰색 부분을 디뎠다가 차가워서 놀란다. 뜨거운 강철과 차가운 얼음 길을 절름거리며 걷는다. '나'는, 길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돌진하듯 나아간다. 잠시 뒤 거대한 '수소 영웅 이즈두바르'를 만난다. 그는 머리에 황소 뿔을 달고 가슴에는 쇠갑옷을 입고 양날 도끼를 들고 서 있다.



"길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154쪽)


처음 <레드북>을 읽을 당시에, 해석이 어려운 암호문을 보듯 책을 읽어내려 갈 때, 이 문장을 만나고서 무언가 울림을 느꼈다. 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는 바늘 같은 문장이었다. 이후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벽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듬해에 두번째로 <레드북>을 읽게 된다. 이때 이즈두바르가 꿈에 나왔다. 푸른 들판 위에 서 있는 이즈두바르. 내 꿈에 나온 이즈두바르의 모습은 융에게 나타난 모습과 달리 <마지막 거인>(프랑수아 플라스, 디자인하우스)에 등장하는 거인과 흡사하다) 네번째 읽을 때, 바늘같은 이 문장이 이즈두바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하게 된다.


이즈두바르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웅 길가메시를 가리키는 옛이름이다. 길가메시 신화를 잠시 살펴본다. 길가메시는 힘 있는 군주로, 그는 아름다워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또한편 백성을 억압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었다. 그의 오만함을 본 신들이 야생의 존재 엔키두를 만들어 지상으로 보낸다. 둘은 만나자마자 격렬하게 싸운다. 승패가 가려지지 않는다. 결국 서로 다른 힘의 막강함에 매료되어 둘은 친구가 된다. 둘은 이때부터 신나게 모험을 한다. 그 모험이라는 것은, 신성한 숲을 없애고 이웃 나라를 정복하며 세력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은 둘의 조합은 엔키두가 병으로 사망함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이즈두바르는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떠난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있다는 인간을 만나러 간다. 그는 힘겹게 도착해 영생의 인간을 만나지만 '잠'을 이기지 못해 '영원'을 얻지 못한다. 대신 지독한 고통을 참으며 깊은 물 속에서 건져온 늙지 않는, 불로초를 쟁취한다. 그러나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불로초를 뱀이 먹는다. 죽음도 늙음도 정복하지 못한 길가메시는 털레털레 고향으로 돌아간다. 길가메시는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융이 내면 탐사 과정에서 이즈두바르가 나타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본문을 가만 살펴본다. 융은 이즈두바르를 만나 과학과 진리에 대해 말을 나눈다. 이즈두바르는 '과학'이라는 '독'으로 인해 상처입는다. 그는 "죽어야 한다면 죽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며 "독을 물리칠 수 있는 마법의 말"을 말해보라고 요청한다. 융은 진리에 대해 말한다. "외면" 세계에 대한 진리와 "내면" 세계에 대한 진리.



나 : 과학이 우리로부터 믿음의 능력을 앗아가 버렸어.
이즈두바르 : 뭐라고? 너도 그걸 잃어버렸다고? 그러면 너는 어떻게 살아?
나: 우리는 이렇게 살지. 한쪽 발은 차가운 데에 담그고 다른 쪽 발은 뜨거운 데에 담그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거야!
:
나 : 당신의 진리를 열망하고 있어.
이즈두바르 : 내가 서쪽 땅을 갈망하고 있듯이. 조심해.
(레드북 160쪽)




이즈두바르가 들고 있던 양날 도끼 자체가 분화의 상징으로, 상반된 뱡향을 향하는 칼날이 바로 융과 이즈두바르일 것이다. 또한 이성과 감정, 직관과 감각, 이러한 대극의 원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융은 말한다. 삶이 나아가는 경로는, 거부당했던 그 반대의 것들 너머로 이끈다고. 부드러운 것과 고통스러운 것들, 차갑고 뜨거운 대극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이쪽에서 저쪽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번 장은, 상반된 것과의 조화와 균형, 통합의 과정은 어떤 길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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