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과 초록색의 만남
융은 초록색 옷을 입고 높은 망루 위에 서 있다. 멀리서 붉은색 옷을 입은 존재가 말을 타고 온다. 융은 붉은 존재가 악마라고 생각한다. 붉은 존재가 반갑게 인사한다. 그는 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다. 그가 융에게 무얼 기다리고 있냐고 묻는다. 융은 온갖 종류의 것들을 기다린다고, 특히 세상의 부(富)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둘은 종교와 관련된 대화를 주고받는다. 종교와 삶의 엄숙함과 진지함, 춤과 기쁨에 대해.
붉은 존재가 삶에는 진지함보다 춤을 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융은 수긍한다. 춤을 추면서도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춤출 줄 아는 능력이 없어서 그런 능력이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붉은 존재는 그 말을 듣고 가면을 벗는다, 스스로가 이제 진지해졌다고, 삶을 춤추는 영역이 자신과 관련된 영역이라고.
"춤이 상징할 수 있는 제3의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어."(93쪽)
이어서 융이 입은 초록색 옷에서 잎이 나기 시작한다. 붉은 존재가 말한다. 자신이 기쁨이라고.
종교, 춤, 기쁨, 환희. 이런 단어들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죽음이나 고통, 지옥 이런 것보다 더 어렵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춤과 환희를 말하는데, 과연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춤과 환희인지, 신을 향한 춤과 환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붉은 존재가 말한, 삶에는 진지함보다 춤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나는 너무 진지하다. 그래서 춤을 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나의 삶에, 살아가는 일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기 어렵다. 어쩌면 내가 '알려고'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춤은 아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니까.
이 장의 마지막 단락을 곱씹어 읽어본다. 고개가 기울어지며 '무슨 말이지' 하면서도 '흐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내 안의 악마적인 것을 만나고 인정하는 것, 그렇다고 내가 악마가 되는 것은 아닌, 자기 자신을 잘 지키기도 해야하는 것. 단순히 악마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말 붉은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앎이 담겨 있다. 내가 초록색이 되었을 때 내 안의 (혹은 밖에서 오는) 빨간색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내가 악마와 타협하는 과정에, 악마는 나의 진지함의 일부를 받아들였고 나는 악마의 기쁨의 일부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만약에 악마가 더욱 정직하게 변했다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더욱 다잡아야 한다. 기쁨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삶과 삶의 실망으로 이끌고, 바로 이 삶과 삶의 실망으로부터 우리 삶의 완전성이 시작된다. (칼융 레드북, 2권 1장 붉은 존재 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