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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열하루

가르침과 결심

by 해리포테이토

1권의 9장과 10장, 가르침과 결심이다. 융은 두 번째 이미지에 이끌린다. 바위투성이의 분화구 같은 곳, 어느 집에 들어선다. 살로메와 엘리야가 있다. 살로메는 맹인처럼 벽을 더듬으며 걷고,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뱀이다.


엘리야가 묻는다. 살로메가 당신을 사랑한다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냐고. 그러자 융은 자신에겐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생각이 떠오르고 또 잊어버린다고 답한다. 엘리야가 말한다. 그 생각을 자신의 자기와 분리시킬 수 없겠느냐고.


살로메가 말한다. 나는 당신의 여동생, 당신과 나의 어머니는 마리아. 융은 놀라며, "당신은 상징이고, 마리아도 상징이지." 엘리야가 말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 분명하게 존재하는 실체라고, 우리를 수용하라고.


융은 침묵한다. 살로메는 사라지고, 주위를 둘러보자 불꽃을 감고 있는 뱀이 보인다. 융이 다시 걷기 시작하자, 거대한 사자가 앞서 걷는다.


뱀과 사자는 1권의 마지막 페이지에도 나온다. "(깊은 곳의 정신) 그 신비 안에서 인간은 두 가지 원리, 즉 사자와 뱀이 된다. 나도 다른 존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각자만의 개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이번장에서도 강조한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융은 말한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기쁨이나 쾌락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융의 이미지에서, 살로메와 '나'가 왜 남매로 나왔는지 알 듯하다. 남매의 사랑은 신화와 민담에서 자주 나온다. 남매는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사랑의 형태, 사랑의 원형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마리아인 것은 곧 나 자신이 메시아이며 구원자가 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메시지와 구원은 자기 자신에게서 올라온다.


먼저 갈망을 알아야 할 터. "자신의 갈망을 인정하는 것은 켤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가 불가능하거나 아는 것이 매우 괴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갈망은 삶의 길이다." (72쪽)


그리고 자기를 포기하지 말고, 모방하는 삶은 아니라고 말한다. 흉내 내는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라고,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산다는 것은 곧 자신이 과업 자체가 된다는 의미이다... 유쾌하지 않으며 길고 긴 고통이다.... 당신 자신이 당신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73쪽)


그러니 생식력이 있는 '예견'과 수용력이 강한 '쾌락'의 원리를 알라고, 이것의 승화에 대해서도 말한다. 스스로 그리스도 같은 존재가 되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희생을 통해서, 나의 쾌락이 변하면서 보다 높은 원리로 승화하고 있다. 사랑은 앞을 보지만, 쾌락은 앞을 보지 못한다."(85쪽)


엘리야와 살로메는 아마도 '예견'과 '쾌락'이라는 추상을 인격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나서 살로메는 '사랑'으로 승화된다.


이번 장을 읽으며 인생에서 '가르침'과 '결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가르침도 결심도 없이 부표처럼 산 것 같았다. 그러다 곰곰 생각해 보니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많은 가르침이 있었고 결심들이 있었다. 그리고 사랑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쾌락들이 떠올랐다. 고통에서 멈춰서 버렸던 쾌락들이 있다. 아프고 슬프고 끔찍하거나 지루한, 다양한 고통들이 있다.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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