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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열흘

1권 9장 신비로운 조우.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진화 네 단계

by 해리포테이토

드디어 살로메가 등장한다.


'신의 본질에 대해 곰곰 생각'하던 밤에 융은 어떤 이미지를 만난다. 엘리야와 살로메. 융이 살로메를 가리켜 헤롯의 딸, 피에 굶주린 여자라고 표현하자, 엘리야는 살로메가 자신의 딸이며 앞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융이 놀라워하자, 엘리야가 살로메의 맹목과 자신의 시력이 영원한 동반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살로메 역시 엘리야가 자신의 아버지이며 깊은 신비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셋이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살로메가 융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살로메 : 당신을 사랑해요. (62쪽)


사랑 고백이 뜬금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살로메는 융의 아니마였을 터. 융은 아니마와 아니무스 개념을 연구 설명할 때 이들의 진화 단계를 설명한다. 각각 4단계로 설명했다.


남성 무의식에 있는 여성성인 아니마는 남성 내면의 감정과 관계성을 발달시키는데 영향을 준다. 이 발달 단계를 융은 신화 속 여성으로 비유해서 설명한다. 아니마의 발달 단계


첫 번째는 이브. 이브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측면이다. 이 단계에서의 남성은 여성을, 어머니적인 존재, 보호와 양육, 안정감을 추구하며 신체적 욕망의 대상으로 투사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헬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헬레네) 헬렌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여성이다. 이 단계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관계나 아름다움을 투사한다.


세 번째 단계는 마리아. 영적인 수준으로 승화된 단계. 이때의 아니마는 영성과 순결성, 도덕성을 상징하면서, 이 단계의 남성은 여성에게서 단순한 육체나 아름다움을 넘어서 정신적 영적인 면모를 찾으며 정신적인 동반자로 인식한다.


네 번째 단계는 소피아. 지혜라는 추상개념 자체를 의미하는데, 소피아는 지혜와 초월성을 상징한다. 이 단계의 아니마는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성은 아니마를 내면의 지혜와 영적인 통찰력으로 통합한다. 외부에 존재하는 여성에게 투사하지 않고, 자기 안에서 최고의 지혜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아니무스의 발단 단계는 어떻게 될까?

여성 무의식에 있는 아니무스 발단 단계의 첫 번째는 '육체'가 키워드이다. 원시적이며 남성 신체의 힘이 강조되는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행동'이 키워드이다. 계획하고 일 잘하는 능력, 효율성을 가진 존재로 투사된다. 그다음 세 번째 단계는 '언어'다. 말과 이성의 능력이 강한, 학자 같은 지적이며 권위적인 존재로 투사한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의미'다. 영적 의미와 통찰력을 상징한다. 정신적 의미와 지혜를 구현한 존재로, 여성은 이 단계에서 아니무스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적 지혜와 삶의 의미를 찾는다.



꿈을 통해 이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나는 1단계와 2단계의 언저리에 주로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경우 높은 단계의 아니무스가 나온 것도 보았지만, 이러한 단계가 한번 거치면 완성이 되는 그런 일회적인 과정은 아닌 것 같고, 또한 단계도 섞여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계단 같은 과정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곡선 같은 과정인 것 같다.


지난봄 독서모임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 읽고, 다음에 읽을 책에 대해, 각자 두 권씩 추천하고 책들 중에서 두 권을 고르는 투표를 했다. 그중에 레드북이 있었고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레드북에 투표하지 않은 단 한 사람은 나였다. 이미 세 번을 읽어서 좀 지루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 꿈을 꾸었다. 한국에서 근육질을 대표하는 남자 연예인이 나와서 창문을 열어 환기시켜 주는 꿈이었다.


융이 살로메를 처음 만날 때, 나는 꿈에 나온 그를 생각했다. 왠지 닮은 느낌이 들었다. 원초적인 느낌 때문인지. 그리고 융의 살모메가 변신을 한 것처럼, 내 꿈속의 그도 두어 달 뒤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힘센 아니무스가 나와 창문을 열어 환기시켜 준 덕분에, 네 번째로 읽는 레드북은 지루함이 전혀 없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레드북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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