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아흐레

신의 잉태

by 해리포테이토

융은 1944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생사를 넘나 든다. 여러 환상을 보던 중, 한 번은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본다. 지구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돌과 그 돌에 새겨진 사원을 보고, 그는 이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잎사귀 떨구기를 다 했다는 것을 느끼며 불만족과 만족을 동시에 느낀다. 이때 지상에서 한 존재가 떠올라 다가온다. 그는 원형적 존재로,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인 코스의 왕인데 지금 융을 치료하는 의사의 모습으로 온 것이다. 의사는 융에게 지구에서 융의 죽음에 대한 항의가 있어서 다시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통지를 하러 온 것이었다. 통지를 받는 순간 융은 현실로 돌아온다. 얼마 뒤 원형적 모습을 했던 그 의사는 융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된 그 시간에 침대에 누웠고 세상을 떠난다.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 513-528쪽 참고)


이번 장 '신의 잉태'를 읽을 때 다음의 문장에서 융의 자서전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옥에 머문 3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 옛날의 사람들은 그가 거기서 죽은 자들에게 설교를 했다고 말한다.'(55쪽)


융이 자서전에서 말한 지구를 떠났던 경험은 일종의 임사체험이다. 융이 레드북에서 말한 '그것을 경험'한 것이 자서전에서 서술한 그 내용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만약 죽음을 체험하고 다시 살아난다면, 융처럼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볼 것 같다.


나는 꿈에서 나의 죽음을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높이 솟구치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더니 하강을 하면서 진공 상태가 되는데, 그와 동시에 나는 바닥에 패대기치듯 떨어져 죽는다.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자기 몸을 바라보듯, 나는 죽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 당시 내 마음에서 어떤 상승과 하강 그리고 어떤 죽음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 꿈을 꾸었을 때는 내가 23세였고 그 해 11월 돌아가신 아버지는 59세라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슬픈 성장의 시기였다. 아버지라는 영웅은 죽고, 그때 나는 지옥이었다.


융은 지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옥을 여행하는 자는 자신이 지옥이 된다. 그렇기 때문이 당신이 왔던 곳을 잊지 않도록 하라. 깊은 곳은 우리보다 더 강하다. 그러니 영웅이 되지 않도록 하라." "지옥은 당신이 옛날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을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되는 때이다."(57쪽)


레드북을 읽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옥을 여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면을 탐사하는 것이 천국은 아닐 것이다. 과연 신은 무엇인가? 융은 "신은 모호성"이라고, "모호성은 생명의 길"이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신의 잉태란 "진정한 융합의 신비"라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어려운 말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여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