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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여드레

영웅 살해

by 해리포테이토

레드북의 1권 7장은 지크프리트의 나팔 소리로 시작한다. 지크프리트는 죽은 자들의 뼈로 만든 전차를 타고 산을 가로지르며 오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 아닌 우리로 표현된다) "우리는 동시에 무기를 쏘아", 그는 쓰러지고 '나'는 달아나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융은 이 영웅 살해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것이 죽음을 넘어서는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때 깊은 곳의 정신이 다가와, "최고의 진리는 부조리와 같다"는 것을 알게 한다. 융은 이어서 두 번째 환상을 본다. 행복의 정원에 비단옷을 입은 존재들이 거닐고 있는 장면. 융은 내면의 깊은 곳을 건넜음을 알게 된다. "나는 죄를 지음으로써 새로 태어난 존재가 되었다"(51쪽) 영웅 살해라는 죄를 지음으로써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죽임으로써 살린다는, 부조리와 같은 진리.


옛날 게르만족의 땅에 지크프리트라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성장해 영웅의 여정을 떠난다. 첫 번째 모험은 불을 뿜는 용을 죽이는 것이다. 이 용은 니벨룽겐 족의 보물을 지키는 저주받은 존재였다. 사람들은 용을 피해 숨어 지냈는데 그때 지크프리트가 나타나 용의 심장에 칼을 꽂고, 용의 피에 몸을 적신다. 용의 피는 무적의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투명망토를 비롯한 보물을 차지하고 용사로서 명성을 날리고 공주와의 사랑도 이룬다. 하지만 그의 힘을 시기하고 두려워한 이들에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는 무적인데, 어찌 죽임을 당했는고 하니, 그의 유일 약점, 즉 용의 피에 몸을 담글 때 나뭇잎 한 장이 등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크프리트는 게르만 신화 중 하나로 '니벨룽겐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지크프리트는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나 테세우스처럼, 용을 죽이는 것으로 모험의 시작을 알린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자 승리자가 되기 위해, 참다운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극복의 핵심은 죽음이다. 죽여서, 자신의 것으로 한다. 죽여서,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


극복해야 하는 그림자는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긍정적인 것이 있다. 긍정적인 것을 나의 것으로 감히 수용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을 영웅으로 삼는다, 추종자가 된다. 화이트 투사가 그런 것이다. 화이트 투사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로버트 존슨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신화로 읽는 She> 등의 저자)은 어릴 때부터 우상으로 여겼던 슈베르트 박사를 씹어먹는 꿈을 꿈으로써, 영웅을 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킨다.


지크프리트는 무의식의 어두운 세계를 정복하려는 자아의 시도이며, 사회적 영웅이 되려는 자기실현의 초기 단계를 보여준다. 지크프리트는 독일인들의 영웅으로, 단순한 롤모델 이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아의 영웅적 환상으로 자리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등한시했던 그 무엇으로 인해 파멸을 맞은 것이었다.


영웅을 죽이는 것은 진정한 자기를 향해 나아가는 상징이다. 누군가를 따라서 살지 않겠다는 것, 흉내내기를 멈추겠다는 것,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런 말을 융은 책이 끝날 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말한다.


얼마 전 나는 살인하는 꿈을 꾸었다. 두 번 다 총을 쏘아 죽인다. 한 번은 거칠고 야만적인 한 남자가, 며칠 뒤에는 내가 직접 총을 쏘는 꿈이다. 그런데 죽임을 당하는 존재가 선명하지 않다. 나는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어떤 영웅을 죽였는가? 이런 식의 죄가 어떤 식으로 나를 구원하게 될런지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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