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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엿새

사막과 지옥. 낙타와 다이아몬드와 풍뎅이

by 해리포테이토

융의 영혼이 그를 사막으로 이끈다. 융은 자신이 생각한 여정이 사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영혼의 이끌림으로 사막에 왔다. 먼지만 날리는 황량하고 뜨거운 사막. 천천히 걸으며 그는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은 영혼의 장소를 피해 왔다고. 그리고 자신의 자기는 사막과 같으며, 또한 '자기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고독'이라고, '고독은 자기가 사막이 될 때에만 진정할 수 있다'(레드북 32쪽)는 것을 깨닫는다. 이어서 여러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자 영혼이 말한다. 기다리라고, 사막의 본질은 고통이라고.



2025년 7월 3일 목요일 오전 레드북 독서모임하는 날, 일찍 만난 S와 꿈이야기를 했다. S가 꿈에 낙타를 보았다고 했다. 나는 꿈에 당나귀를 보았다고 했다.


낙타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예전에, 신화와 꿈 아카데미에서 꿈워크숍을 했던 때의 어느 분의 꿈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사막을 걷던 낙타가 오아시스 옆에서 두 다리를 꿇으며 쉬는 꿈이었다. 그 꿈을 듣던 그날은 화창한 봄날이었고 성당 안 식당이었고, 점심시간이었으며, 둥근 테이블에 네댓 명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식사를 하던 우리는 그분의 꿈과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함께 눈물을 흘렸었다. 또 다른 사막 관련 꿈은 어떤 분이 다이아몬드를 보는 꿈이었다.


나는 S에게 '낙타'하면 사막이 떠오른다면서, "사막이라는 경험과 정서, 고통괴 인내, 사랑과 그리움과 슬픔과.. 그런 것들을 견디며 지나온 그 에너지, 그 시간들을 꽉꽉 모아서 압축한다면, 다이아몬드가 될 것 같아요.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고 어둠속에도 빛을 발하며 자기만의 정체성으로 엮어진 보석일 것 같아요. 북유럽에서는 난쟁이들이 크리스탈을 짠다고 해요, 겨울에, 천을 직조하듯이. 난쟁이는 보물이 어디 있는 곳을 아는 이들이잖아요."


사막을 통과한다고 누구나 다 다이아몬드같은 보석을 만들어낼까? 사막을 통과할 때 낙타처럼 걸어가야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내가 꾼 당나귀 꿈을 떠올리고 있었다. 낙타의 장소를 사막으로 떠올린다면 당나귀의 장소는 어디인가? 당나귀의 장소는 비탈진 길 거칠고 험한 산길 같은 곳이 아닌가. 나의 사막은 그런 장소인가, 당나귀는 인간이 변신해서 겪는 황금당나귀 이야기도 있는데, 낙타와 당나귀 둘 다 짐을 싣지. 노동, 감정노동..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S가 말했다. "그런데 제 꿈의 낙타는 사막이 아니고 정원에 있어요."


신기한 것은 이날 레드북 읽을 부분이 이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S는 이미 사막으로 정원을 만들었다. 1권 4장 사막에서 융이 말한다. "나는 또 사막으로 정원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4장이 끝나는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는 곧 사막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막을 지나온 다음 날 밤에 융은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린다. 5장 미래의 지옥으로의 하강이다. 신화 속에서 영웅들이 하계를 다녀오듯, 하지만 융이 떨어지는 하계는 신화보다 더 실제적이다. 그는 엄청난 깊이의 아래로 떨어지고, 그때 '깊은 곳의 정신'이 그의 눈을 열어준다. 잿빛 암벽을 보며 떨어지다가 컴컴한 동굴에 이른다. 동굴 바닥은 시커먼 물과 진흙탕 바닥이다. 그곳에서 빛나는 붉은 돌을 보고 집는다. 이 붉은돌이 연금술에서의 현자의 돌일 테고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다이아몬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피 흘리고 누군가는 그곳을 떠나고, 뱀들은 태양빛을 가리고, 바닥은 진득한 핏물도 흐르고…


무시무시한 지옥 풍경을 체험하는데, 융은 어떻게 광기 어린 장면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가 그 길을 지나올 수 있었던 힘 중 하나는 균형일 것이다.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사이의 균형. 신성과 인간성의 균형 등. 지옥으로의 하강은 곧 자신의 무의식으로의 하강일 테니까. 융은 글과 그림을 그리면서 무의식에 압도 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무의식에 치우치지 않고 의식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대의 정신'과 '깊은 곳의 정신' 사이에서도 균형을 강조한다. 그 어떤 정신도 신성하지 않다고.


"오직 둘 사이의 균형만이 신성할 뿐이다."(40쪽)


그리고 그 무시무시라고 끔찍한 지옥에 풍뎅이 있다. 우리 무의식에는 무섭고 끔찍한 것도 있지만, 마땅한 죽음과 치유와 생명의 부활을 가져오는 풍뎅이도 있을 것이다. 융이 '동시성'을 말할 때 종종 언급되어지는 풍뎅이 이야기가 있다.


한 여성이 융의 상담실을 노크했다. 그녀는 이성과 합리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신화와 전설 같은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풍뎅이가 나오는 꿈을 자주 꾸었고 그래서 융을 찾아온 것이다. 융은 "풍뎅이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며, 지금 여기 당신의 내면 정신이 다시 태어남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똑똑똑". 누군가 문을 노크한다. 돌아보니 창밖에 풍뎅이가 있었다. 꿈속의 그 풍뎅이가 튀어나온 양. 융은 창문을 열어 풍뎅이가 들어오게 하고 말한다. “여기 당신의 풍뎅이가 있습니다.” 이 풍뎅이 사건,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로 그 여성은 치유되었다고 한다.



카를 융 <레드북> (부글북스) 38쪽)
Panthéon égyptien (Author: Jean-François Champollion Illustrator: Léon Jean Joseph Dubois)



판테온 이집트 1 신화인물컬렉션

전자책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2440247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sam/E00001189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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