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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닷새

영혼의 쓸모에 대하여, 황금꽃의 비밀

by 해리포테이토

융은 1919년 처음으로 '원형(archetype)'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레드북을 쓰기 시작하는 해가 1913년이니까, 내면탐사 6년여 만에 중요한, 인류의 정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황금 같은 불덩어리를 쥐게 된 것이다. 내면세계가 그 보물덩어리를 순순히 내어주었을까? 아마도 그는 훔쳐왔을 것이다, 천상의 불을 훔쳐온 프로메테우스처럼. 그가 두려움 가득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연금술의 도움 덕분이었다.


융은 중국 도교 사상서인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 이에 관해 융은 '황금꽃의 비밀'로 책을 썼다)를 접하면서 북미와 아프리카를 방문해 원주민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또 인도를 방문해 힌두교의 상징적 역할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다양한 종교를 통해 무의식의 심층으로 내려갔고 그러면서 정신의 구조에 대한 체계를 잡아간 것으로 보인다. 연금술의 도움으로 그는 영혼과 함께 내면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연금술의 도움으로, 나는 마침내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로 배열할 수 있었다. (<레드북> 452쪽 에필로스)


연금술은 '금'이 되는 과정이다. 스스로가 황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황금이 되는 것이 끝이 아니다. 노란색 황금이 되면 더 나아가 빨간색 장미나 펠리컨이 되어야 한다. 펠리컨은 가슴을 스스로 쪼아 그 피를 새끼에게 먹이는데 그래서 '자기희생'을 의미한다. 연금술의 '황금' 다음은, 자기희생의 '십자가'이다.


융은 말한다, 과거 역사에 있어서 역병이 창궐하던 때 사람들이 전염병에 두려워하던 때에 한 성자가 종기에 난 고름을 입을 대고 먹었다고, 그 고름에서 장미 향기가 났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우리는 역병 전염병에 넌더리를 냈던 그 성자로부터 그런 것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종기의 고름을 마시고 거기서 장미 향기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9쪽)



레드북의 1권 3장은 '영혼의 쓸모에 대하여'이다. 그런데 영혼에 대해 쓸모 있다, 없다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영혼이 있다, 없다 그렇게 존재의 유무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하지 않을까. 융이 '이해력이라는 목발을 짚고' 영혼의 '뒤를 절뚝거리며 따르고 있어'(27)라고 말한 것처럼, 나도 융의 말을 이해력이라는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몇 년 전에 신화와 꿈, 초월심리학을 공부한 친구들을 만나 영혼의 유무에 대해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영혼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영혼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 수 있다는 것, 영혼이 떠났다가 세계를 일주하고 돌아와 눈물범벅이 된 자신과 비몽사몽간에 만나기도 했다는 것 등.


사실, 영혼이 떠났다가 세계를 일주하며 헤매고 방황하다가 눈물범벅이 된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였다. 영혼에 관한 문제를 꺼낸 것은 나 자신이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비몽사몽 간에 나는 눈을 뜨고 보았다, 나의 영혼을. 내가 "어 왔어."하고 인사를 했고 그때 내 얼굴은 광대처럼 분장한 얼굴에 눈물에 씻겨 내려가며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환상과 꿈을 이어서 꾼 것이다. 영혼의 형체는 남성 여성으로 말할 수 없는, 어떤 기다란 두 다리가 있는 에너지 형체였다. 그리고 나는 언제 어떻게 해서 왜, 내 영혼을 잃어버렸는지 안다. 내가 나의 영혼을 되찾는데 4년쯤 걸린 것 같고, 그동안 영혼은 나를 찾아 세계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 세계의 방황은 아마도 내 무의식에서의 지구 한 바퀴이기도 할 것이다. 영혼이 없이 나는 이 시대의 정신과 함께 그럭저럭 살았었다, 영혼이 없는 줄도 모르고.


융이 레드북을 쓰기 시작하면서 영혼을 소리쳐 부른 것은 필연적인 작업이었다. 내면을 탐사함에 있어서는 먼저 영혼을 갈구할 일이다. 그러고 나서 영혼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대화하고 절뚝거리며 걸어가기.


만약에 당신이 자신의 영혼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다면 영혼의 하인이 되도록 하라. 만약에 당신이 자신의 영혼의 하인이라면, 당신 자신이 영혼의 주인이 되도록 하라. 이유는 당신의 영혼이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당신이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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