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단 + PAD 3M 11d
나중에 나이가 들어 지금 시기에 대해 자서전을 쓴다면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2024년 봄, 나는 직장을 잃었고 연애도 실패한 32살 백수가 되어있었다."
뭔가 꼭 희망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복선을 암시하기 위해, 필명을 쓰는 자기 계발서 저자가 선택한 첫번째 문장 같다.
문제는 나는 여전히 32살 백수고 봄이 지나 여름이 되어가는 길목에 있다.
한번에 여러가지를 잃어버리며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일단 도피처를 찾아가야 했기에 KTX를 타고 3시간이 걸리는 집으로 빠르게 도망쳤다.
첫 일주일은 상실감을 덮으려는 지, 입에서 저절로 미친듯이 노래만 흥얼거렸다. 멈춰있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어서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동생이 요가를 등록하고 너무 바빠 잠시 중단한 상태였고, 그 뒤에 남은 기간을 내가 물려받았다.
요가는 어느 정도 심신 안정에 효과적이었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양 두발의 촉감을 느끼면서, 지금 내가 땅을 밟고 있는 그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지금 있는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면서 다른 감정들은 잠깐 피할 수 있었다.
미움도, 그리움도, 상실감도.
당장에 수입도 없고, 집에 도망쳐 온 상태였지만 만 30세가 넘어서까지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통장을 확인했을 때, 잔액은 2백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4년 간, 수입이 고정적으로 들어왔었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가계부를 써본 적도, 최저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도 계산해 본 적이 없었다. 직장 근처에 1년 이상 계약한 집 때문에 월세, 공과금이 지속적으로 나가고 있고 그 외에도 연금, 적금 및 보험으로 대략 130만원 정도의 고정 지출이 있었다. 현재 잔고로는 1달이 지나면 부모님께 손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내가 드렸던 돈에 대해 장부를 갖고 계셨고, 다시 돌려줄 수 있으니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현재 부모님 재정도 안정적인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도움을 드렸으면 드렸지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출을 어떻게 줄이지?' 일단 집에 있으니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며 거의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수입은?'
면허가 일하던 직장에 묶여 있는 탓에 쉽사리 병원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 면허 정지에서 취소도 가능한 위험성이 있었다. 의사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르치는 일이었다. 의대생일 때, 짧은 시간이었지만, 방학 때 중/고등학생들 수학을 가르쳤다. 성실한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성적이 오르는 학생들이 꽤 있었고, 그에 따라 나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여러 과외사이트에 글을 올렸지만 문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오랜 기간동안 화상강의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친구의 도움으로 한 화상과외 사이트를 소개받았다. 직접 회사에 찾아가 교육을 받고, 녹음강의 평가도 받았다. 중/고등학교 수학은 오랜만에 본 내용이었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 수업 준비를 했다.
화상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된 학생은 수줍었지만 성실하게 수업을 받을 것 같은 학생이었고, 앞으로의 수업에 큰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인터넷 속도 문제로 학생이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본사에서는 내 노트북이 너무 오래되어서 속도가 느린거라고 하였고, 내 노트북을 새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 학생 수업 시, 세금 공제를 하면 10만원 정도의 수입이 나오는 데 노트북 구매를 위해서 50만원 이상의 거금을 쓰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소비였다. 고민 끝에 노트북은 사지 않기로 했고, 일단은 수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참 인생이 맘대로 되는 게 없네." 부모님과 웃으며 내뱉은 말이었지만, 웃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집 거실 책장에 꽂혀있던 '월든' 이 눈에 띄어 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라는 하버드를 졸업한 꽤 유망했던 젊은이가 월든 호숫가 옆에 살면서 적은 책이다. 고등학교 때 '양서'라는 과목에서 수업 했던 책 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그저 숲속의 호숫가 옆에 살면서 관찰한 것들을 적고, 작가가 농사 짓고 수확한 것들에 대해 적은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난 음악에 대해서 발표하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모험을 떠날 때 숲속을 거닐면 배경음으로 깔렸던 라벨의 '볼레로'를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글의 줄거리만 보고 작가가 전달하고 하였던 메세지는 이해하지 못한 고등학생의 짧은 식견이 드러났던 발표였다.
소로우는 생전에는 크게 인정 받지 못하던 인물이었고, 45세라는 짧은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편안한 죽음은 본 적이 없다'는 그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 누군가가 남긴 후일담을 보면, 스스로의 인생에 후회없이 살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농사를 짓는 것도 경제적인 수단이 아니라 최소한의 본인의 섭취를 위해 행하는 편이라 거름이나 퇴비를 쓰지 않았는데,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노동이나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나 행동은 하지 않고, 가장 최소의 경제적인 행동으로 본인의 삶에 만족감을 느끼는 그의 행위가 현재 나에게는 꽤 배워야 할 점인 것 같았다. (물론, 소금 섭취가 식사 시 필요하지 않다는 그의 말에는 의사로서 동의할 수 없었고, 왜 단명했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었다.)
'월든' 외에도 처음 읽었을 때와는 글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 책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이다. 인턴 때, 4년차 정형외과 선생님이 취미가 독서와 운동이라고 하시면서 추천해 주신 책이었다. (헬스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이 인상적이었던 여자 정형외과 전공의 선생님이셨는데 동기들에 비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임상진료조교수가 되셨다.) 3년차 초반이 되어 읽을 시간이 생겨 짧은 책이라 순식간에 읽긴 했는데, 당시에는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인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이 재미있게 읽지 못했다. 다시 읽으니 싯다르타가 수련 후의 빈털터리 상태에서 상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한 이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현재 빈털터리 상태와 다름 없는 나에게 필요한 덕목이었다. 내 상태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성찰해야하는 단계였고, 멈춰 있는 상태에 대해 답답하게 여기지 않으며 행동해야 할 날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단식은, 말 그대로 식사를 줄이기도 했는데, 그 외에도 이전과 다르게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고, 소비를 줄였다.
불필요한 식사를 줄이고 신선한 것들만 먹고 요가와 운동을 하니 몸이 건강해 졌고, 저절로 상실감으로 지쳐있었던 마음도 건강해졌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전공의 생활 동안 줄어들었던 자존감도 다시 회복되었다. 그 사이에 정말 감사하게도 병원 선배인 정신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후원을 받게 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은 조금 해소가 되었고, 의사로서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의국 선배들의 도움으로 로컬 병원들의 수술 참관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앞으로 내가 할 일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언제 이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과연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이 시간을 잃어버린 채로만 보낼 수는 없다. 거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일어나고 싶어서 집을 떠나 다시 상경했다. 고독한 상태지만 외로움에 지치지 않고 용기내어 이겨 나가기를, 빈 시간을 글로 채우고 가꾸며 성장하기를, 지나고 나면 이 시간이 아무렇지 않아지기를 바라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