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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Mar 02. 2024

그리고, 남겨진 것들

근무 중단 D+11

"선생님, 저 성형외과 전공의 포기하겠습니다. 그동안 믿어주시고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3월부터 1년차로 근무 예정이었던 인턴 선생님이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기로 했다. 인턴으로 일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학교 후배였다. 그 선생님이 성형외과에 얼마나 진심이었고 많은 준비들을 하였는지 알기 때문에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 느껴져 마음 아팠다.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단호한 마음이 더 느껴질 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의사들은 자신의 업을 포기하게 된 것일까. 계약개시명령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명령으로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의사로 일하지 못하겠다고 사직하겠다는 젊은 의사들의 결심을 짓밟고 정부에서 강제로 일하라고 명령하는 이 현상은 또 무엇일까.


대장항문외과 전공으로 일하던 친한 외과 전임의 선생님은 올해 3월부터 대학병원 근무 계약 연장을 포기하셨다. '술 별로 안좋아하는데 술을 안마시고는 버틸 수가 없다' 고, 언제 만날 수 있는지 연락이 오셨다.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말 동안 입원 환자 회진까지는 돌고 그만둔다는 안쓰러운 말과 함께.. 환자를 돌보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의사일수록 점차 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되는 환경에 자괴감을 느껴 의료 현장에서 빠르게 떠나고 있다.  


2024년 2월 29일 오후 4시, 갑작스럽게 보건복지부 차관은 대전협 대표들에게 여의도 서울강원국민건강보험공단 회의실에서 만남을 제안했다. 문자는 각 병원의 대표들한테 전송이 되었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낀 대표들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해당 문자를 받은 사람은 아니었고 많은 전공의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입장 또한 전혀 아니다. 다만, 이 근무 중단이 누군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며 한 명의 개인적인 전공의로서 결심한 행동이었고, 기자들의 왜곡이나 해석하는 사람의 곡해 없이 정확한 정부의 입장을 듣고 대화하고 싶었기에 약속 장소로 발을 옮겼다.


분명 다른 전공의 선생님께 전달 받은 문자에는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적혀있었는데, 건물 1층부터 많은 기자들이 산포해있었다. 엘레베이터에 동승한 분이 전공의냐고 물어보셔서 혹시나 같은 전공의시냐고 되물어 봤는데 기자였다. 억지로 떠넘겨 주려는 명함을 뒤로하고 엘레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후다닥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로 들어가는 복도는 기자들로 인산인해였고 카메라 후레쉬 터지는 소리가 위협적이었다.


4시 정각에 회의실로 들어갔는데 창문 쪽으로는 박민수 차관을 포함하여 정부 관계자로 추정되는 분들이 4분정도 앉아 있으셨고, 벽 쪽에는 10분 정도 간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출입구 쪽으로는 전공의들이 앉아 있었고, 내가 오기 전에 도착한 전공의는 2분 계셨다. 회의 중간 2분 더 출석하셔서 전공의들은 총 5명 참석하였다. 문자에서는 '전공의들과의 대화'를 원한다고 하였지만, 질문 1개를 하면 본인의 사담을 포함하여 30분 이상 단독적인 발언만 지속하여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듣기가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자리가 대화의 장이 아니라 의사와의 협업에 지친 '고위공무원의 한풀이' 시간 같이 느껴졌다.


2천명 증원에 대해서는 절대 정부에서는 물러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의사를 2천명 늘린 이후에 정부가 이들을 어떻게 이용하여 지역의 부족한 인원을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없었다. 근무 중단 뒤에 전공의에 의존적인 비정상적인 대학병원의 구조를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전문의를 많이 고용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하는 보험료 상승 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필수의료패키지에 제시된 안들을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10조 이상의 정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하였지만, 연 건보료가 130조임을 고려하면 이 예산이 얼마나 턱 없이 부족한지 느껴질 뿐이었다.


성형외과 의사로서 미용 의료시술 별도 자격제도에 대해 문의를 하고 싶었다. 전공의 2년차 때, 불법 미용 시술로 눈 아래 피부 구축이 발생하여, 양측 눈이 비대칭이 된 여러 환자의 케이스를 모아 학회에 구연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성형외과 전공의로 일했지만, 내가 목격한 의료시술로 인한 부작용 케이스는 점차 더 늘어나고 다양해지고 있다. 미용 의료 시술에 대해서는 충분히 긴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고 반드시 오랜 기간 교육을 받은 적절한 사람에게 자격증을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항에 대해서는 '간호사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답변을 주었고, 피부 미용 쪽은 자유시장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건들 수 없는 분야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럼 패키지에 적힌 문장은 어떤 뜻인지 여쭙고 싶었지만 또 다른 답변으로 이어져 이에 대해 질문을 할 시간은 없었다. 물어보고자 한 질문에 대해 대답을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듣지 못해 아쉬운 시간이었다.


회의장을 떠나 선약이 있던 고등학교 친구의 집들이를 갔는데 그곳에는 회의장과 동일하게 5명의 전공의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이라 안부를 주고 받으며 웃고 떠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대화의 마무리에 그곳에 있는 전공의들 모두 '병원에 돌아가 일하고 싶다.'는 동일한 생각을 공유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틀 뒤 오늘, 의협에 속한 몇 분들은 압수수색을 당했고, 이름이 알려진 몇 명의 전공의들은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공시송달을 받았다. 정부의 압박에 여러 젊은 의사들은 심적으로 타격을 받고, 정말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대학병원을 떠나고 있다. 한치의 물러남 없는 이 싸움에 결국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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