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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Feb 24. 2024

우리는 모두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 입니다.

 근무 중단 D+4

'Nurses' 라는 캐나다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에서 매우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다. (물론 내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게 대사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남자 의사가 호감 있는 여자 간호사에게, 당신은 그렇게 똑똑한 데 왜 의사를 하지 않고 간호사를 하냐는 예의 없는 질문을 했다. 여자 간호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간호사가 된 것이 아니에요. 나의 일은 환자를 돌보는 거에요."


의사든 간호사든 결국 우리는 환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인턴 때도 많은 간호사, 응급구조사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며 여러 도움을 받았지만, 전공의 1년차 때는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많이 의지했다. 일어나자 마자 시작하는 드레싱 업무부터 내가 내리는 처방에 대한 투약, 수술 전 검사 시 채혈, 수술방에 환자를 보내는 과정 등.. 환자가 입원해서 부터 퇴원 하는 시간 안의 모든 순간, 선생님들의 도움 없이는 우리는 환자를 돌볼 수 없다.


이번 근무 중단 당일에도 혹시나 입원 환자들에 대한 처방이나 조치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성형외과 주 병동에 사과의 메세지를 전달하였다. 사직서를 쓰고 나서는 조심스러워 일부러 간호사 선생님들과는 아무 대화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메세지 내용이 변명처럼 들릴 것으로 보여 걱정했지만, 3년 간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버텨 왔기에 폐를 끼치는 것에 대해 아무 말 없이 병원을 나와 버릴 수는 없었다. 보낸 메세지에 대해 병동에서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라는 메세지가 돌아왔다. 병원을 떠나는 와중에 감사인사를 받다니. 우리는 당연히 해야할 마음의 표현을 하지 못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돌아오는 작은 마음의 표현 덕분에 위로를 받는다.


1년 차 때 만나, 지금까지도 사적으로 그 인연을 이어오는 간호사 선생님이 있다. 현재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책임업무를 맡고 계신다. 당시는 코로나가 한창이었고, 이로 인해 병동의 업무과 과중되어, 일손 부족 시 타 병동의 간호사들을 파견 배치 했다. 김oo 선생님은 신생아 중환자실 병동에서 성형외과 병동에 파견되어 나의 환자 소독 업무를 함께 해주셨다. 선생님의 해맑음으로 주변 사람까지 밝게 만들어 주는 분이셨다. 본인이 하던 업무와는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우셨을텐데도 적극적이고 성실하셔서 성형외과 병동에서 우리 병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 받으셨을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분이기도 했다. 나도 매일 선생님이 병동에 파견 오는 날이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번은 업무 중 손가락이 베이셔서 봉합을 해드렸는데 성형외과 의사로 부끄럽지만 그 자리에 흉터가 남으셨다. 지금 다시 해드린다면 흉터가 더 티나지 않게 예쁘게 봉합해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2년 차 말에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나 식사를 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나에게는 정말 햇살같은 위로가 되었던 선생님인데, 알고 보니 선생님도 그 때 위의 상사의 괴롭힘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그것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어야 할 지, 성형외과 병동에서 제안 받은 대로 병동을 옮길 지 고민하셨지만 신생아중환자를 돌보는 업무를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계속 근무하셨다고 했다.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께 들은 신생아중환자실의 어려움은 또 다른 큰 문제로 느껴졌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은 근처의 30km 근방에 있는 병원들 중 유일무이하게 신생아중환자실을 갖고있다. 근처의 10km 거리에 있던 병원의 신생아중환자실은 해당 도에서 가장 큰 신생아중환자실을 갖고 있었지만,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년 전에 폐쇄되었다. 미숙아나 조산아의 출산이 필요한 경우, 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마련이 되어야 안전하게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나 자연 분만을 한 뒤 아이를 받을 수 있다. 무작정 아이를 낳는다고 모든 아이가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점차 노산이 많아지며 태어나는 조산아나 미숙아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신생아 중환자실의 유무는 매우 중요하다.


1달 전, 조산 위험이 있는 산모가 응급실에 내원하였고, 산부인과에서는 제왕절개가 필요한 상태로 판단하였다.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더이상 환자를 받을 준비를 할수 없어 산모를 받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산부인과 교수님이 판단하기에는 다른 신생아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으로 가는 도중, 산모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태로 진행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제왕절개를 시행했다. 아이는 신생아 중환자실로 떠 넘겨지듯 들어왔지만 결국 태아가 사망하는 일이 었었다. 산모는 태아 사망에 대해 병원에 기소를 진행했고, 관련된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 및 간호사들이 조사받고 있다고 하였다.


환자를 돌보는 것에는 의사, 간호사 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충분한 기능이 되는 병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생아 및 소아중환자실은 점차 소멸되고 있다. 병실 부족은 단지 소아과나, 산과(産科)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신과만 해도 우리 병원은 몇년 전 폐쇄병동을 없애 버렸다. 얼마 전 인기 있었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나오듯 입원이 필요한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 간호사 뿐만 아니라 상담사, 보호사 등의 여러 인력이 필요하다. 폐쇄 병동 운영을 위한 인력은 중환자실 만큼 많은데 실제적으로 병원이 받는 병실비는 달랑 일반 5인실 병실료와 동일하니, 낮은 수익을 내는 이런 정신과 병동 수는 점차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은 여러 기사들로 점점 위험하게 조장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치료가 가능한 병실은 점차 없어지고 있다.


수익을 이유로 병원은 충분한 병실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환자 치료를 위해 필요한 운영비를 내려고 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정부는 낮은 의료 수가를 유지하려고 하고 병원 인력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다면 아무리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한들, 대학 병원의 필수 인력과 지역 의사들의 수가 늘어날까? 의사와 간호사 모두 환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과 자본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가 원활히 소통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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