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지즈코의 돌봄의 사회학을 참고하며
올해 초, 전공의들 근무 중단이 일어날 즈음 TV 매체에서 한 의사가 "지역에서 성적 낮은 학생 뽑고, 의무 근무를 시키면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 "그 의사한테 누가 진료받기를 원할까." 등의 발언을 하여 규탄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의 덕목을 성적 위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타고난 능력으로 의사를 선발하기 보다는 선발 뒤의 육성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첨언이 뒤따랐다. (출처 : "지역서 성적 낮은 의사, 국민이 원할까?"...의사단체장 발언논란 https://www.ytn.co.kr/_ln/0103_202402221321085196) 인턴으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던 2020년도 파업 시에도 "성적 낮은 의사에게 진료 받을 수 없다."라는 발언이 있었고, 나도 당시에는 의료에서 '성적'보다는 '환자를 돌보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성형외과 전공의로 일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데,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러다 최근 읽고 있는 사회학 책에서 그 답의 일부를 찾을 수 있었다.
교회에서 목장 모임 중에, 예방의학과 전문의인 자매님이 '필리핀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일본에서는 이에 대해 10년 전부터 논의가 있었다며 참고하라고 추천해 준 책으로, 도쿄대 사회학과 교수인 '우에노 지즈코'가 지은 '돌봄의 사회학' 이라는 책이다. '개호보험(介護保険)' -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토대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만들었다.- 을 토대로 일본에서 고령자 돌봄이 발전된 과정과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지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성형외과 전공의로 일할 때, 한창 코로나 시즌이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시설에 머물며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 분들이 뼈까지 썩어들어 간 욕창을 달고 병원 응급실로 와서 감염으로 인해 전신 상태가 저하되어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의 상태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시설 욕을 하는 보호자를 뒤로 하고,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스로 피부를 자르고 큐렛으로 엉덩이 부터 고관절 양쪽의 살을 뚫어야 했다. 그러면 음식물 쓰레기 썩는 냄새보다 지독한 냄새가 온 응급실에 진동하는데, 코를 틀어 막고 피와 고름이 철철 나는 뻥 뚫린 상처를 통해 수십 번 생리식염수를 넣어 세척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치매나 인지기능 저하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감각도 저하되어 있어 통증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테지만,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신음소리를 내곤했다.
욕창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시설에서든 집에서 간호를 하든 발생할 수 있다. 성형외과 외래에도 크고 작은 욕창 환자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하곤 한다. 수술로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이미 고령인 환자들에게 전신마취 수술은 risk(위험성)가 커서 수술 중에 죽거나 직후에라도 죽을 위험성이 높으며,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욕창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완치는 어렵다. 나의 조모(祖母) 또한 척추 시술 후 거동이 불편해지고, 치매가 악화되면서 현재는 요양병원을 거쳐 요양원에 머물고 계신데, 방문할 때마다 혹시 욕창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요양원에서 방치되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위와 같은 케이스를 몇 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배경으로 고령자 돌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이었지만 매우 흥미롭게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돌봄'은 물론 전문성이 더 필요한 '의료'와는 다르지만, 낮은 비용으로 높은 서비스 수준을 내기 위해 값싼 노동력(워커)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근무형태가 전공의들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가능한 질 좋은 돌봄(의료)을 위해서는 서비스를 담당하는 주체인 돌봄 전문직(전공의)의 노동조건(시간, 휴식)과 사회적 지위(임금, 사회적 인식)가 서비스 수준(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전공의들의 노동에 대한 정확한 보건학적인 논문이나 연구결과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동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장이 그저 지나쳐 지지 않았다. - 괄호 내의 색칠된 단어는 위 문장을 내가 전공의의 상황에 대입해 비유한 단어들이다.- (출처 : 돌봄의 사회학, 우에노 지즈코, 759p)
작가는 워커즈콜렉티브라는 시민사업체를 돌봄의 좋은 표준으로 내세워 소개하는데, 이는 대부분 고학력, 상류층 기혼여성으로 이뤄진 비영리 단체이다. 이용자들이 이 단체를 택한 이유는 낮은 비용으로 쓰기 편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었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워커)에서는 본인들이 '주부처럼 돌본다'라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이는 주부와 같이 싹싹하고 배려하며, 어떤 요구에도 응한다는 뜻이 되지만 반대로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전문성이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워커들은 저임금인 가사원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책임과 부담이 중한 신체개호는 기피하기도 했다. (출처 : 돌봄의 사회학, 우에노 지즈코, 764p)
학력이 의사의 전부는 아니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공부를 통한 전문성의 필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의대 증원을 위해 정부가 투입할 예산이나 대학이 제시하는 커리큘럼을 보아도 졸속이며, 결코 훌륭한 육성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대학병원은 정말 다양한 분과의 전문가들이 모인 장소다. 아무리 오래 근무한 전문의라도 본인이 타과의 진료에 대해서는 그만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자신이 전문인 분야가 아니거나 그 이상의 지식이 필요할 때, 꼭 그 분야 전문인 과의 진료를 받고 그 답변에 대한 차팅을 남긴다. 하지만, 다른 과의 전문성을 신뢰하는 만큼 본인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확실한 책임감을 갖고 진료에 임한다. 준비되지 않은 의학 교육으로 낮은 전문성을 가진 의사 배출이 늘어난다면 더욱 책임과 부담이 중한 필수의료 (대학병원에서의 진료)를 시행하려고 하는 의사들의 수는 감소할 것이며, 이는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환자에 대한 마음가짐만 준비된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는다면 그를 대면하는 순간에는 환자의 마음이 편할 수 있겠지만, 좋은 치료 결과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책이 말하는 '돌봄'은 전문성을 갖춰야 행할 수 있는 '의료'와는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이 글을 토대로 작성한 나의 글에도 분명 비약이 있고 반박할 논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호보험의 정책적인 면에서 성공과 실패를 그리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기록한 책의 내용들을 통해, 앞으로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정책이 시행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지가 눈에 그려졌다. 작가는 개호보험이 몇 차례 개정되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개호보험이 없던 시기를 비교하는 이는 없다고 말한다. (출처 : 돌봄의 사회학, 우에노 지즈코, 794p) 2025년 2천명 의대 증원이 진행된다면 결국 이를 되돌리려는 같은 정치가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 전과 같은 의료 혜택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고령화 돌봄을 말하며 당사자인 것, 당사자가 되는 것, 그리고 당사자에 대한 상상력이라도 있다면, 당사자의 니즈에 맞춘 사회를 구상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출처 : 돌봄의 사회학, 우에노 지즈코, 864p) 병원에서 일할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아프다는 것은 모두에게 불시에 찾아오는 일이다. 우리가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어떤 정책이 본인에게 가장 유익할 것인지 항상 고민하고 정책적인 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출처
책 : 우에노 지즈코, 돌봄의 사회학, 오월의 봄, 2024
기사 : "지역서 성적 낮은 의사, 국민이 원할까?"...의사단체장 발언논란 https://www.ytn.co.kr/_ln/0103_202402221321085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