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마다 7남매의 대부분이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 떠들썩하게 모여 차례상 앞에서 조상님들께 절하던 시절은, 시간이 흘러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이들이 성장하고 몇몇 가정은 해산되면서 옛 추억이 되어갔다. 올해는 처음으로 차례를 지내지 않고 보낸 추석이었다. 작은 할아버지 댁 친척까지 모여 명절을 보낼 때는 아이들 6명이 모여 놀며 나에게 즐거운 기억들을 선사해 준 선물 같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철없는 시절이라 몇 사람의 희생으로 그 시간들이 만들어지는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33년간 해마다 앓던 명절 스트레스에서 올해 처음으로 해방되어 조금 더 편해진 모습이셨다.
과거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들은 나를 오랜 시간 지켜주고 또 성장시켜 준 기반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이루어 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추석에 집에 돌아가 겪은 몇 가지 일들은 보수적인 생각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면이 있다는 것과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부모-자식 간의 세대차이를 좁히기가 어렵다는 것을 맞닥뜨리게 해주었다.
첫째로는 혼전순결에 대한 부모님과의 대화였다. 나 역시 어른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혼기가 꽉찬 나이이니, 부모님의 주변에는 자식을 시집, 장가 보내는 친구분들이 많은 상태이다. 부모님의 지인 분의 아드님이 며느리로 들어올 사람을 집에 데리러 오는 날이었는데, 두 사람이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을 예약해서 거기서 잔다고 한 말이 지인 분의 심기를 거스린 것 같았다. 호텔에서 묶는 것을 안된다고 반대하지는 않으셨지만, 지인 분은 본인이 무시당한 기분이 들며, 이 상황이 도덕적으로 맞는 상황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부분의 2-30대들은 교제 후 잠자리를 갖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시대에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는 에피소드였다. 성경에서는 성행위 자체가 결혼이라고 말하고 신중하게 해야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피임약이나, 피임도구들이 잘 개발된 현 시대에 출산의 위협이 없다면 모든 커플들이 혼전순결을 꼭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아버지는 그럼 동거를 하지 왜 굳이 결혼을 하냐고 반박하셨지만, 결혼은 법적으로 파트너를 책임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고, 이는 내가 상대방을 법적으로 책임지고, 상대방 역시 그 책임을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 질문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졌다.
두번째는 목사님의 설교였다. 연휴 기간 본가에 내려오게 되어 원래 다니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는 어려워서 집 근처의 다른 교회를 방문하였다. 로마서 7장에 대한 설교를 하며 아래 구절에 대한 예시를 이와 같이 들어주셨다.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는 예로 본인이 신학을 공부할 때 책에서 읽은 구절을 그대로 말씀하셨는데, 순수한 청소년들이 성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성에 눈 뜨게 되어 이로 인해 그런 죄를 알게 된다고 하셨다. 딥페이크 사건으로 저번 주말 혜화역에서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위하는 이 시국에 그런 예시를 들다니 부적절한 예시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인해 너무 어린 나이에 쉽게 그런 문화에 노출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나이에 제대로 된 성교육이 꼭 필요한 시대이다. 뉴스 페이지만 클릭해도 이상한 야한 성인물 같은 그림이 그려진 광고창이 노출되는 시대에 성교육이 문제가 된다는 식으로 설교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이런 의견을 부모 세대에 전달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문화에서는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부모님은 이런 소재로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지 않으신 것 같았고, 본인들의 생각 또한 바꾸실 의향이 없어보였다. 잠깐 방문한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께는 더더욱이나 이런 의견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앞에서 말한 예시들로 인해 이전 세대의 생각들에 반박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들의 생각과 교육 덕분에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안전히 살아올 수 있었음을 느끼게 된 순간들도 있었다. 연휴기간 동안 매일 아버지께 운전 연수를 받았는데, 아버지와 동행하지 않을 때 조차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이 느껴질 정도로 꼼꼼하고 세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마지막에는 울산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나를 아버지가 배웅해 주셨는데, 그동안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 주신 시간들 덕분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첫 고속도로 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도착하고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드렸는데, "수고했다. 축하한다."며 칭찬해 주셨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칭찬에 인색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정하게 말씀해 주시니 자신감도 솟구치고 마음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들의 교육과 사랑 덕분에 그래도 32년이라는 인생을 잘 살아올 수 있었음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항상 내 안에 내재된 불안이 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실망시키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 이런 이유로 나는 매일을 울고 적응장애로 약을 먹으면서도 전공의 1년차 시절 한 순간도 도망치지도, 그만두지도 못했다. 그러나 동생이 치과 페이닥터 1년차로 일할 때, 물론 그것은 전공의 과정도 아니었고 좋은 근무지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해하지만, 나에게는 그만두지 말라고 어르고 달래던 부모님이 동생에게는 빨리 일자리를 그만 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왠지 배신감이 들었다. 동생에게는 나와 다른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속상했다고 털어놓자, 동생은 내가 주변 사람의 조언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 조언으로 인해 전공의를 그만두고 나중에 후회하며 부모님이나 자신을 탓할 까봐 그만두라고 이야기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동안 가족들의 조언에 큰 영향을 받고 휩쓸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지만, 그 모습 또한 그들에게 사랑 받고 싶어 생긴 나의 모습이었음을 알기 때문에 더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믿는 신앙은 내 삶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전제된 삶이라고 이야기 한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 아니라도, 의사가 아니더라도, 전공의 과정을 다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믿음 안에서 나는 내가 내리는 어떤 결정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셨듯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새 계명을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죄인들에게 자유함을 주셨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하지만 그 자유함은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살라는 자유함이 아니다. 내가 자유 안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음은 내가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공의 시절 나를 괴롭히던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항상 기도했고,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 역시 또한 피해자임을 알았기에 용서했다. 지금의 전공의들의 상황과 기성세대들의 탄압과 무시도 모두 이해하고 수용하기는 어렵고 이해하기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불안 속에서 고통 받지 않고, 이미 사랑 받고 있는 내 삶에 감사하며 나는 또 다른 이들을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