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를 읽고
창세기 2-3장을 보면 벌거 벗은 상태에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던 아담과 하와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뒤 부끄러움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몸을 가린 이야기가 나온다. 이 과일을 먹으면 선악을 알게 되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화술에 넘어가게 되었고, 이와 같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려는 인간의 경향성으로 원죄(original sin)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 주로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죄의 레퍼토리이다. 죄를 지은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아담과 하와처럼 부끄러움을 느낀다.
윤동주는 부끄러움의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저번주는 연고전 시즌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 비장한 베토벤 바이러스와 어울러 윤동주의 '서시'를 가사로한 응원가를 제일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그의 '쉽게 씌어진 시'를 곱씹으며 읽은 순간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일부
저번주에는 오랜만에 함께 인천에서 일하던 전공의 친구들과 모였다. 올해 2년차가 될 예정이었던 친구가 10월에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어서 이사 전에 한번 모이자고 해서 모인 자리였다. 저녁을 먹고 근처 카페로 들어가 후식을 먹으며, 만약 전공의로 3명이 모두 다시 돌아가게 되면 1년차로 들어올 친구도 아예 그만 두었으니, 그때는 2, 3, 4년차 업무를 최대한 동등하게 나눠서 아랫년차에게 일이 과중하게 부과되는 일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2년차 친구는 조심스럽게 자신은 1년차 일이 본인에게 올라오는 것은 그렇게 불편하지 않고, 그 점에 대해서는 2월에 예비 1년차가 되려고 했던 전공의가 아예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다만 본인이 내년에 군대에 가지 않고 전공의가 될 수 있을 지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순간, 머리를 '댕' 하고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언젠가 병원에 이 구성원 그대로 돌아가서 어떤 형태로 일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나름 그것이 아랫년차들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의무사관 후보생 서약서를 작성한 상태였고, 군대에 가지 않으려면 그 요건이 군전공의 수련기관에서 33세까지 과정을 마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중간에 그만두었기 때문에 내년이 되면 무조건 군대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군대를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의 전공의 자리는 비어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그런 이유로 현 사태에 대해 전공의 수련을 다 마치지 못하고 군대에 가야한다는 압박으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마음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이후,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조사를 받게 된 사직 전공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리스트를 본 적은 없고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건너들은 바에 의하면 복귀하여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들에 대한 험담과 그들의 아주 사소한 과거의 일들까지 작성되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x 파일' 같은 리스트를 작성하는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는 바는 아니며 내부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은 총구의 방향이 잘못 향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기에, 그 전공의가 나오는 뉴스 기사 사진을 보면서 이런 일로 뉴스에 의사가 나오게 된 것이 참 부끄럽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 전공의가 자신 옆에 일하고 있었을 전공의라고 생각하니 참 안쓰러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2주 전에는 big 5 병원 대표 전공의들이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었다. 그들은 기자들 앞에서 떳떳한 얼굴과 표정으로 미리 준비한 말들을 자신있는 목소리로 내뱉었지만,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하고 겉옷으로 가린 채 기자들을 피해 걸어가는 모습이 대표 전공의들과 대비되어 응급실에서 내 옆에서 같이 힘들어하며 일하고 있었을 전공의 같아서 더 처량해 보였다는 것이다.
모임은 서울에 가서도 잘 지내길 바란다는 안부인사와 함께 마무리 되었고, 다음날은 근무날이라 야간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뉴스 기사와 사진들을 보면서 한번도 내 전 직장동료에 대한 글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당직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끄러운 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그 친구보다 내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를 얻어 꾸준하게 근무를 하면서 현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줄어드니 의정 갈등 사태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다시 병원에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돌아가지 못하거나 돌아가지 않는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 병원에 취직을 하지 못해 샐러드 가게나 호두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전공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상황이 어서 빨리 해결되어 수련병원으로의 복귀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클 것이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전공의 역시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그 행위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밤에 병원에서 잠도 푹 자면서 월급도 따박따박 받고 있는 나는 이 사태를 해결 하기 위해 무엇을 해보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저번 주일에는 교회에서 나눔을 마치고 저녁을 먹었는데, 모이고 나니 의료인과 의료기사의 모임이었다. 3명 모두 현 사태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끊임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각자가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정부와 의사 모두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렇게 건보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대 증원이 실현된다고 하면 결국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암담한 미래에 대해서는 모두 공통적인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우리는 의료정책에 대한 방향 결정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까? 정부에 대해서는, 2월에 참석한 차관과의 대화를 통해, 근무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뀔 시에는 나몰라라 할 공무원과 국가기관을 보며 꾸준한 기대를 갖기가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에 대해서는 실패하고 본인들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프레임이 씌어진 의사협회에 기대를 갖기에는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전공의협회 역시 소통할 노력이 부족하고 그 단위가 작으며, 수련기간이 끝나면 그 직위에서는 벗어나는 구성원들이기에 지속성이 없다.
저녁을 같이 먹은 자매님의 추천을 통해 다음 주부터는 시민건강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의료개혁에 대한 세미나를 참석하기로 하였다. 나 역시 의사라는 프레임에 자유롭지 않으며 정부와 병원에 대한 실망으로 현 사태로 인해 의료 정책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은 잃은 상태이다. 정책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비롯하여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관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민협회에서 주관하는 강연을 통해 공부해 보고자 한다. '쉽게 씌어진 시' 에서 말하는 나 스스로와의 악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서시'에서 말하는 대로 죽는 날까지 하늘에 우러러 부끄럼이 없길 바라며 계속 걸어가고자 한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마지막 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