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과 당뇨발
"으아악... 살려주세요!"
참다 참다 터져 나온 외마디 비명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환자의 왼쪽 발바닥부터 장딴지까지 가득 찬 농을 벅벅 긁어낸다. 일전의 시술로 뻥 뚫린 발바닥과 발등을 통해 녹아 부스러진 뼛조각들이 함께 긁혀 나온다. 장딴지 부분은 너덜너덜해진 피부 아래로 빨간 근육과 하얀 인대가 훤히 드러나 있다. 피부 밑의 조직은 노출된 부분을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데 숟가락같이 생긴 수술 도구로 그곳을 건드리니 고통을 견디다 못해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는 일주일이 넘도록 수술방에 내려와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당뇨발로 인한 감염 때문이다.
성경에는 나병 걸린 사람들이 자주 나온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들을 치유하셨고 (마 8:1-4) 열두 제자에게 권능을 주며 나병 환자를 치료하라 (마 10:8) 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나병은 더이상 불치병이 아니며 전세계 나병 환자들의 수도 1만명 중 1명 미만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21세기 나병'이라고 불리는 병이 있다. 바로 당뇨발이다. 당뇨의 유병률이 높아 질수록 이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당뇨발은 나병과 달리 전염성은 없지만 감각 신경이 둔해 지면서 상처가 생기게 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기전으로 발생한다. 당뇨발은 그에 더불어 피부에 공급되는 혈류까지 나빠지면서 치료가 어렵다. 발끝부터 미라화 (mummification) 되어 발가락이 검게 말라 비틀어지거나 상처가 생긴 부분으로 감염이 되어 고름이 생기고 살이 썩어 들어간다. 혈액 공급이 잘 되지 않아 주사 항생제를 주어도 상처 부분까지 도달이 어려워 치료가 더디다. 이런 이유로 강제적으로 외부에서 괴사되거나 감염된 부분을 자르거나 긁어내야 하기 때문에 당뇨발이 심한 환자들에게 먼저 괴사 조직 제거 및 창상 세척술을 시행한다.
위의 환자는 40살의 젊은 당뇨 환자였다. 다른 병원을 갔다가 급한 처치가 필요해 보인다며 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응급실 전체에 코를 찌르는 썩은 음식물 냄새가 났다. 붕대를 풀어 보니 회색 고름이 발바닥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고 붉은 피부 병변으로 보아 무릎 아래까지 염증이 퍼진 상태였다. 일이 너무 바빠 당뇨약도 잘 복용하지 못하는 시기에 발에 상처가 생겼다. 저절로 낫겠지 싶어 병원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주일 만에 병변이 아래 다리 전체로 퍼진 것이다. 당뇨발 환자들에게는 각양각색의 사연이 있다. 지적 장애인이라 언제 상처가 생겼는지도 모르는 채 당뇨발이 시작되었고, 재건 수술을 해도 뒤틀린 발 모양으로 인해 당뇨발이 계속 재발하는 분도 계셨다. 나이가 50살이 넘고 키가 180cm이 훨씬 넘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를 왜소한 부모가 부축해 방문하고는 하셨는데, 그들의 표정은 항상 시름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외에도 인자한 인상의 한 평생을 성실히 살아오신 듯한 노인 분도 계셨다. 입원 기간 내내 새벽부터 쉬지 않고 성경책을 읽으시는 분이었다.
그 옆에는 환자분과 비슷한 인상의 배우자 분이 보호자로 계셨다. 새벽 이른 시간 소독을 할 때에도 깨어 계셨고,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내가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일하는 상담실 책상에 저녁마다 과일들과 식빵을 두고 가셨다. 선한 두 분의 마음만큼 병세가 빨리 회복되기를 바랐다. 혈관 시술을 하고 혈류를 좋게 하는 약도 계속 주입했지만, 말라가는 두 발가락은 제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발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수술동의서를 받았을 때 두 분 모두 크게 상심하셨다. 수술 후 봉합한 부분이 잘 낫지 않아 경과를 지켜봐야 했고, 오랜 입원 기간으로 인해 두 분 모두 지쳐 가셨다. 그럼에도 두 분의 성경 읽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고, 왜 현대에는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지 속상할 따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봉합한 상처가 아물어 내가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기 전 퇴원하셨지만, 몇 달 뒤 반대 쪽 발에도 비슷한 형태로 당뇨발이 시작되어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다른 전공의 선생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렇게 1년 뒤, 나는 원래 일하던 병원으로 돌아왔다. 한 선생님이 휴가를 가서, 매우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턱이 3조각으로 부러진 환자가 응급실로 와서 응급 수술을 위해 입원을 시키느라 분주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손가락이 잘린 환자가 왔다. 이 또한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 동강난 손가락을 적신 거즈에 감싸 놓고 냉장고에 보관하던 차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다급한 목소리로 아빠가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고 말하셨다. 아침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엄청 화를 내셨는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시더니 몇 분 후에 갑자기 “여기가 어디냐”고 하셨다는 것이다. 아빠와 직접 통화를 하니 내가 지금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인천이 아니라 학생으로 원주에 있다고 생각하셨고, 몇 년 전 기억만 남아 있었다. 걱정이 태산 같이 몰려왔지만 너무 바쁜 상황이었기에 엄마에게 뇌 영상 검사가 가능한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서 응급 진료를 보는 게 좋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는 기분이 들었다.
병동 콜로 인해 잠깐 응급실을 나와 병원 로비로 나섰는데 거기서 1년 만에 두 분을 마주쳤다. 환자 분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고, 두 분 모두 이전에 비해 더 노쇠해진 모습이셨다. 반가운 마음에 두 팔을 벌려 인사를 드렸다. 보호자 분이 "오늘도 밥 못 먹었죠?" 하면서 바로 앞에 있는 카페로 끌고 가서 과자와 커피를 주문 하셨는데, 저절로 울음이 터졌다. 로비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지만 봇물처럼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더 오래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마자 그것들을 움켜 쥐고 일터로 뛰어 들 수 밖에 없었다. 저녁도 거르고 새벽까지 한 숨도 자지 못했지만 두 응급환자 모두 차질 없이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서 아빠의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응급실에서 일시적인 기억 손상이라 회복할 것이고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답변을 받고 퇴원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날 두 분을 만난 뒤,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거나 갑자기 아빠의 기억 손상이 치료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쏟아지는 일들로 인해 바다 속에서 허우적 대며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누가 산소통을 입에다 달아 준 것 같았다. 덕분에 멘탈 붕괴 직전이었던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두 손을 불끈 쥐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뇨발 환자들의 상처 치료에는 아직까지 내가 바라던 치유의 기적이 발현되지는 않고 있다. 환자 분은 아직도 통원치료를 다니고 계시고 새까맣게 말라가는 발가락이 감염 없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기 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의학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상처도 흉터나 후유증 없이 성경에서 예수님이 그러셨듯 말끔히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질식 직전 상황에 만난 두 분 덕분에 내가 살아났듯, 언젠가는 모든 환자분들에게 그런 기적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