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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로에서

5월 전공의 추가모집

by 람람

“언니 다음주에 전공의 모집 열리면 들어갈거야?”

오랜만에 성형외과 전공의 동기가 연락이 왔다. 정부에서 전국 수련병원에 전공의 추가 모집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돌아갈 의사를 밝힌 전공의들이 2000명 정도이고, 이는 전체 사직 전공의들의 1/5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에 응했다고 하는 주변 사람도 없고 나 또한 그런 문의를 받아 본 적도 없어서 사실 여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성형외과 전공의로 일하던 대학 병원 근무를 그만 둔 지 1년 2개월이 지났다. 작년 2월, 보건복지부에서 내세운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패키지 항목들을 보며 재정적으로나 근무 형태로나 실현 불가능한 여러 요소들을 도대체 어떻게 시행한다고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병원을 그만 두고 한 달 뒤인 3월, 여의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박민수 차관과의 대화를 통해 의대 증원 숫자 뿐만 아니라, 여러 사항들에 대해서 공무원들이 얼마나 졸속으로 일을 진행하였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승인한 필수 의료 패키지 항목에는 무슨 말들이 적혀져 있는지도 모르고, 전공의들에게 자신의 처치를 한탄만 하며 대화의 여지를 한 칸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안하무인 식으로 일들이 진행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업무개시명령을 시행하겠다는 경고성의 등기가 여러 차례 집에 날아들었고, 그 때 마다 마음 졸이며 집에 아무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는 했다. 이로 인해 법적으로 전공의들이 면허 취소나 면허 정지와 같은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5월부터 여러 로펌들을 다니며 상담을 다녔다. 김앤장이나 태평양 같은 업계 1-5위의 로펌들은 정부에서 이미 압력이 들어와 전공의들을 변호해 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사를 보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을 뿐인데, 함께 로펌을 돌아다녔던 선생님들이 전공의들을 선동했다는 명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혐의가 없어 두 선생님들 모두 무탈히 나왔지만, 한 선생님은 그 일이 부담이 되었는지, 더 이상 함께 일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업무개시명령이 제대로 발동이 되지는 않았고, 병원에 묶여 있던 면허는 7월이 되어 풀렸다.


8월 부터는 집 근처에 병원에서 전공의 시절보다 편한 환경, 좋은 보수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일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친구들도 많았고, 일반의로 여러 미용 병원에 취직하게 되면서 이들을 싼 가격에 부리는 병원 원장들도 많아 문제가 되었다. 대학 병원을 등진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늘 고민했고,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 싶었다. 의료 정책에 대한 공부와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인구는 줄고, 건강보험재정이 점차 감소하는 상황에 전문의도 아닌 단순히 의사를 늘리는 정책은 의료비를 증폭시키기 쉽다. 결국 병원에 쓸 국가 재정이 없어신다면 건강보험의 민영화는 당연한 수순이다.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범위로는 국가에서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말도 안되는 정책을 펼치려고 했던 정권은 의대 증원 주장과 비슷하게 막무가내로 계엄 조치를 행하며 자폭하며 탄핵당했다. 이후 다가올 정권은 과연 의료 정책에 대한 혜안이 있을까?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의 정치 생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남시 의료원 상태를 보면 그리 희망적인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정책 제안안에는 ‘공공’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마치 허울좋은 명목을 들이대지만 지금의 성남시 의료원 같이 재정 적자가 지속된다면 제 2의 진주 의료원 같은 공공병원 폐업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교육부에서는 올해 4월, 2026년도에는 3058명으로 의대 증원 사안을 철회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으니 이제는 대학 병원에 전공의로 돌아가도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듯하다. 그러나 증원 철회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효율적인 의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점차 줄어드는 재정을 어떻게 활용해서 적절하게 환자들을 치료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 같은 전공의 한 사람은 병원이라는 큰 자본주의 시스템의 집합체 속에 일개 부품 하나도 채 되지 않는 존재이다. 내가 계몽되어서 대학병원에 다시 들어가든, 다른 사람이 나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든 큰 표시는 나지 않을 것이다. 1년 남은 전공의 생활을 다시 재개하기 위해 병원에 돌아갈지, 사직 전공의로서 제대로 된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릴지 선택의 기로에서 곰곰히 저울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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