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를 마무리 하며 다시금 2024년도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3월 쯤 작성 했던 일기에 "2024년 목표 3가지"라는 문장이 눈을 끌었다.
1)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기
- 전문의 시험 공부를 열심히 독려하기 위한 문장이었던 듯하다. 시험은 응시도 못했고, 아직 성형외과 전공 서적 6권 중 2권도 채 다 보지 못했다.
2) 안정적인 연애하기
- 3월 일기를 쓰기 직전에 짧은 연애를 마치고 연애는 커녕 썸의 근처에도 닿지 않았다.
3) 저년차 부터 위의 전임의 선생님들과도 소통하며 부족함 없는 전공의 치프로 일하기
- 2월 근무 중단 후, 작년 한해 동안 병원 문턱 조차 밟지 못했다.
사설을 보면 알겠지만 2024년 한해 간 3가지 목표 중 단 하나도 이룬 것이 없다. 전공의로 다시 병원에 돌아가지도 못했고, 주변 상황이 받쳐주지 않았기에 당연히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패 요인을 다시 돌아보니 설정 과정에서부터 나 자신에 대한 목표는 없었고, 다만 나의 '역할'에 대한 목표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33년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어렸을 적부터 나는 항상 어떤 '대상'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정했다. '의사'가 되는 것',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 남자친구한테 좋은 '여자친구'가 되는 것 등. 이런 목표는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간과할 수 밖에 없고 결국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에 초점이 맞춰 질 수 밖에 없다.
최근 성 아우구스투니스의 '고백록'을 재밌게 읽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훌륭한 수사학자가 되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인생을 살았고 이를 이루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성찰 끝에 이런 성공에 대한 갈망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기독교인으로 거듭나 회심하여 고향인 북아프리카 지역의 주교가 된다. 그가 2000년이라는 동떨어진 시간 간격이 무색하게 나의 인생과 매우 비슷한 경로를 걸어 왔다는 것이 느껴졌고, 청년 시절까지 명예욕과 정욕이라는 헛된 것에 빠져 살았다는 그의 고백들을 마주하며 내 삶을 반추할 수 있었다.
사람이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열망 자체가 모두 헛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욕심이 없다면 살아가는데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삶이 지루하고 무용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아닌 역할이 중심이 되는 경우,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할까?' 라는 생각에 쉽게 사로 잡히게 된다. 그때 생기는 것을 '자격지심'이라고 한다.
전공의 시절, 이런 생각들에 사로 잡혀 늘 기가 죽어 있었다. 특히 교수님들에게 일 잘하기로 인정 받는 다른 선생님들을 보며, 스스로의 부족한 능력을 탓하면서도 '나도 열심히 하는데 왜 저 선생님처럼 칭찬해 주지 않지?'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하나 둘씩 주변의 친구들이 동료 의사들이나 좋은 직업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다른 친구들처럼 수월하게 연애하고 결혼할 기회가 없을까?' 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를 만회하고자 근무 시간이 아닌 날에도 계속해서 차트를 확인하고 환자 파악을 하며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했다. 몇 없는 쉬는 날에는 남들이 소개팅을 시켜 준다고 하면 항상 응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오버 리액션을 하거나 감정소비를 하며 많은 시간을 썼다. 물론 그 노력을 통해 내 직업적 평판이 미미하게 상승 했고 1달이라는 짦은 연애 경험을 한 번 더 제공해 줬지만, 그 투자한 시간이나 비용에 비례한 결과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2024년도에 저 3가지 목표를 이루지 못해 아쉽지는 않은가? 첫번째, 세번째 목표는 병원 복귀의 가능성이 사라지며 자연스럽게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두번째 목표는 연애를 하지 않고서 혼자 안정적인 상태가 되어서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며 저 3가지 역할 모두 나에게 그렇게 큰 의미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을 떠난 환경적인 요인이 나의 자격지심을 줄이는 것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작년 한해 동안 만나고 어울렸던 사람들이 그런 것들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직업이나 돈 같은 그들이 가진 것, 이룬 것들로 갑옷처럼 둘러 싼 사람들이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따뜻하고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당신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라는 영화의 유명한 명대사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과 같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귀도 얇고, 심지도 굳지 못한 내가 환경의 영향에 관계 없이 이런 마음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목표 설정의 방향부터 바꾸어 나가 보려고 한다. 2025년에는 어떤 역할로서의 목표가 아닌 내 삶의 태도를 목표로 정했다. 올해의 목표는 '절제하는 삶'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같이 사색하며, 기다리며, 단식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작년 동안 나를 관찰하며 식탐이 너무 많고 급하게 먹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를 줄이고 같이 밥먹는 사람들과 속도를 맞춰 함께 식사할 것이다.
2025년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물인 뱀의 해이다. 누군가에게는 간교하고 위험해 보이는 동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지혜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동물이다. 올해는 뱀의 허물을 벗듯 나 또한 그동안 갑옷처럼 갖추어 입었던 나의 헛된 것을 버리고 나 스스로 빛나고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