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break
‘걷는 사람.’ 걷다 보면 누구나 쟈코메티풍 대못 대자걸음. 세상을 탕탕 박으며, 세상을 비활성화시키며.
조각가 시커먼 손톱 아래를 지하차도처럼 먼저 걸어보는 사람.
터덜터덜 걷지 말고, 종필양복점 재단사 가위 벌리듯 다리 찢으며 걸어본다.
언젠가 보았던 탱고 마에스트로 이름은 '한걸음.’ 아르헨티나 밀롱가로 날아가 탱고를 배웠다. 부두 노동자들의 환희와 애절.
한 발짝, 한 걸음이 광두정을 장식으로 박은 칠흑 반닫이의 어둠처럼 조악해진다. 반 걸음도 띄어놀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종이비행기에서 장난감 권총으로 납치를 꿈꾸는 자의 말이기도 할.
잔설 덮인 길에 쾅쾅 박는 발자국. 세상의 모든 길에 '광두정' 박기. 그 소심한 광기와 착란.
식상했던 '한 발짝, 한 걸음'이 느닷없이 '움직이는 액체'로 약동하며 흘러간다. 세상에서 나는 혼자 걷길 가장 잘하는 '걷는 사람.’
겉으로는 자책을 표방한 이 '자만'도 독이 될 수 있어. 푸른바다입술뱀이 말해준다.
독이 있거나 없거나 오히려 맹독성 걸음을 걷는 자는 그 내적 동기가 우월하거나 저열하거나 그 무엇에도 관여가 없다. 그렇게 탕탕 걸어 자의적으로 외부가 부여한 휴지休止 밖으로 탈주할 뿐.
그의 안락의자 위로 황금 견장 두 개가 걸린 게 보였어! 가여운 노인은 너무 허약해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했어. 그는 거기 앉아 접시의 콩을 먹으며, 신음하고 사색했어.
-리디아 데이비스 ‘늙은 군인’에서
1동으로 들어오는 119를 봤다. 퇴역 장성의 집이다. 그집 1층 화단에는 초록 플라스틱 벨벳 같은 게 깔렸다. 가짜 부겐발리아 같은 나무들이 이글댔다. 나무 속에서 들것이 실려 나왔다.
누군들 슬프고 괴이한 날들이 언제 퇴역할 줄 알겠는가. 반 걸음 걸어본다. 휘청거리다 한 걸음 내닫는다. 무엇에든 규정되기 싫어 미끄러운 블랙 아이스의 연휴를 ‘걷는 사람.’
청사의 해엔 푸른목도리방울뱀에 매혹될 것 같아. 그 방울뱀은 아마 리라를 켜는 음악의 신이겠지. 아니면 밀롱가의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검은 손톱의 조각가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