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반스의 '시대의 소음'
유리창팔랑나비가 유리창을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해링 본 무늬가 정어리를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물조리개가 빨간 제라늄을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줄리안 반스의 '시대의 소음'을 읽다 덮어놓고 '귀찮아'라는 말을 또박또박 손바닥에 적어본다. 모든 간섭은 귀찮아.
쇼스티가 쇼스타코비치를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겁쟁이가 겁쟁이를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제발, '즈다노프' 검열관님. 저를 귀찮게 하지 말아요. ‘귀찮음'은 입도 배꼽도 하얀 창자도 아닌 '귀'의 편찮음. 제발 제 음악을 놔주세요. 제 귀를 편하게 놓아줘요.
저는 '붉은 베토벤'을 꿈꾼 적이 없어요. '새우 칵테일 속의 새우같은 명성은 보잘것 없어요.' 멋진 수염도 고귀한 복장도 소용 없어요. 제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요. 귀찮게 하지 말아요.
끊임없이 저를 귀찮게 감시하는 그들은 제 귀에 대고 속삭여요. 쇼스티, 당신 음악은 '굴착기'같소.
쇼스티, 부드럽고 한들대며 삶을 고양하는 음악을 만들어요. 절망이나 실의, 후회 같은 건 애당초 우리가 원하는 '귀의 설탕졸임' 음악에는 없소.
끽끽거리거나 조롱하지 말아요. 고무하세요. 약동하세요. 함께 가세요. 귀의 소금광산은 필요치 않아요.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음악. 음악에 혼란을 허용하지 말아요.
그래요, 그렇지요. 포르티시모와 장조의 음악. 영혼의 개조를 위한 음악. 강철노동자가 집에 가는 길에 휘파람을 부는 음악. 이런 음악이 아니라면 악보를 그릴 종이를 줄 수 없어요.
포르티시모가 피아니시모를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장조가 단조를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기쁨이 저조하면 어떡하나.
쇼스티, 당신의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예요. 꽥꽥거리고 으르렁거리는 개 짖는 소리에 불과해요. 망상, 허영, 허무.
가금류 집단농장 69번에 가서 닭장 안쪽, 널빤지로 만든 책상에 갈래요. 그런 음악을 생산하려면 지금 당장 가방을 싸세요. 발진티푸스가 들끓는 완행열차에 부적으로 마늘 목걸이를 걸고 당장 기차를 타세요.
쇼스티의 가방에는 언제든 속옷 한 벌, 치약과 칫솔. 카츠베크 세 갑. 그곳으로 불려나갈 준비.
숨부리나, 음악은 '숨부리나'처럼 쌕쌕대고 앙앙거리고 울부짖어요. 부엉부엉해요. 그의 딸 이름은 공교롭게도 '작은 혼란'이라는 뜻의 숨부리나.
귀찮음은 귀의 편치 않음, 편찮음. 모든 음악 박해자들의 거칠고 쉭쉭거리는 소리.
감시자 즈다노프씨는 전혀 몰라요. 귀가 편하고 유순할 때, 쇼스티, 그는 고래고래 들을 수 있다는 걸.
쇼스티가 지저분한 기차 객실에서 마늘 목걸이를 걸고 들었던 '삼화음.' 보드카가 담긴 세 개의 유리잔이 서로 부딪칠 때, '삼화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쇼스티에게 돌려 주어요.
기차에서 만난 '거지와 감시인과 음악가'가 내는 더없이 맑고 고통스런 '삼화음.' 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박살낼 때조차, 삶과 음악과 사랑은 아이러니처럼 지속된다는 것.
궁중곡예사 '유로디비'가 바보인 척 아이러니를 연기하듯. 사라지듯이, 마치 죽어가듯이 '모렌도'를 현악 사중주에 빈번히 끼어넣듯. 너무 오래 살아 삶이 점점 무시무시해지듯.
쇼스티는 쇼스타코비치, 그의 음악은 '숨부리나'라는 작은 혼돈의 딸. 유리창팔랑나비가 허공에 부딪칠 때, 그 '쨍그랑.'
유리창과 팔랑과 나비의 우연한 '삼화음.' 검열받고 위축된 우리 안의 쇼스티에게 삼화음을 들을 수 있는 유순한 귀를 돌려주어요. 귀찮음은 귀의 편치 않음. 편찮음.
복도가 계단을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흰눈비비추가 비비새 울음을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피아노시모가 모렌도를 귀찮아 하면 어떡하나.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저 / 송은주 역 | 다산책방 |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