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자 레이든의 '보석 천 개의 유혹'
물때가 낀 기둥이나 썩어가는 널빤지, 밤새 내린 비로 푹 젖은 다리. 그 안의 독거자이던 푸른 벌레는 이 살가운 재앙 앞에서 제대로 피난했을까.
노오란 타래붓꽃이 핀 작은 연못은 조금 몸태가 불고 삐쭉삐쭉 물풀들의 이파리가 솟구칠 때, 그렇게 솟구치는 것들을 보며 갑작스레 삶의 요폐가 오는 것은 왜일까.
그렇게 혈관을 돌아나가던 환희의 핏톨에 갑자기 패혈증이 와서 심장이 멈추는 건 또 뭔가. 삶이 흑단목처럼 어두워질 때,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친구는 시코쿠를 순례하며 가끔 문자를 보낸다. ‘반짝이는 것들은 다 이곳 바다에 사나봐. 대낮에는 밤의 빛들이 이곳에 와 부서진다.’ 나는 그 바다의 반짝이는 것들을 호주머니에 주워담는다.
끝단의 실이 풀려나간 어두운 바다 속으로 드는 무한한 녹색 광선. 이 혼란스런 빛을 배고 산호는 새끼를 잉태한다. 그것이 골콘다의 다이아몬드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배꼽에 넣어서라도 밀반입한다.
에이자 레이든Aja raden은 ‘보석 천 개의 유혹stoned'에서 다이아몬드는 탄소동아리에 불과하며 에메랄드는 닭이 소화를 돕기 위해 삼킨 작은 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배 가른 암탉의 내장에 가득찬 작고 완벽한 에메랄드. 그 속의 원추세포가 민감하게 빛에 반응하며 150나노미터 파장의 녹색 빛이 쏟아진다. 그런 보석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지구가 뒤흔들리며 서로 멀리 떨어진 대륙판 두 개가 무척 세게 부딪쳐야 한다.
그렇게 부딪칠 때 우리 안에 느릿느릿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던 ’사랑의 혈관 vena amoris'도 가파른 순환이 이루어지리라.
심장박동기에서 그래프가 수평선으로 눕자 ‘고독’의 구멍처럼 그/아버지의 입이 벌어졌다. 나는 그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두 손으로 내내 받쳐들고 있었다. 그의 눈이 마지막으로 촉촉했다.
간병인이 검은 비닐 봉지를 내게 주었다. 짐을 싸라고. 그의 사물함에는 황새의 깃털 같은 기저귀. 나는 그의 틀니와 면도기, 털이 빠진 칫솔과 조그만 플라스틱 바가지와 수건을 쓸어담아 건네주었다. 간병인은 봉지의 끝을 묶어 바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사랑의 혈관을 떠난 차가운 사물의 총체들. 최승자가 인간은 왜 행복하면 안 되는지 묻고 또 물을 때, 이 존재의 댄스는, 이 ‘굼벵이 댄스’는 이렇게 검은 종량제 비닐 봉투 하나로 요약되고야 말았다.
그가 남긴 사물들의 세목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의 양단 마고자에 달려있던 두 개의 호박단추에 빛이 들어차는 걸 본다. 나는 그것을 떼어서 본다. 은동곳도 산호동자도 못되는 두 개의 플라스틱 호박 단추. 모든 것들이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노인성 반점처럼 이곳에 드는 빛들.
친구의 딸이 얼마 전 결혼을 했다. 강이 흐르고 현수교가 보이는 넓은 이국의 강안에서 그녀는 작은 결혼식을 했다. 그녀와 그녀의 반쪽은 손가락에 반지를 나눠 끼었다. 사진을 보여주는 친구의 눈 속의 촉촉. 노란 타래붓꽃 봉오리의 뾰족히 솟아오르는 촉촉.
친구의 남편은 약사였다. 그가 쓰던 약을 빻는 작은 절구에서는 늘 빛이 부서져 내렸다. 작은 절구에 고여 있는 빛. 그런 그/남편이 먼곳으로 먼저 이사를 가자, 그녀는 역시 그의 한복 마고자에 붙어있던 금단추 두 개를 보관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금단추 하나는 그들 손가락에서 반지가 되어 반짝거리고 있다. 딸은 아디치에의 말처럼 영원한 ‘아버지 재산’, 그렇게 예쁜 이름 ‘아쿤다’이니. 금단추 하나는 훗날 아들의 결혼을 위해 남겨두고.
갑자기 눈이 부시다. 노안이 오고 있는 광포한 이 통증의 군림. 그럴 때 나는 눈을 감고 소경을 체험한다. 침묵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객체는 없고 모든 것을 투과하는 빈 시선. 그 속으로 보석보다 더 찬란한 빛이 몰려들고 있다.
나는 이런 나라를 상상하곤 한다. 밤새 시를 읽은 나라의 신민들은 그 감동의 증표로 눈물을 뺨에 붙이고 거리를 오간다. 그 나라의 아름다운 법률 1조 1항.
그것이 한때 유행했던 ‘가짜눈물false larme'같은 것이라도 얼굴에 붙이고 이 거리를 걷다보면, 이 눈물도 보석처럼 반짝이겠지.
빛은 모든 곳에서 온다. 그것이 작은 돌이였거나 플라스틱 단추였거나 머리에 꽂는 핀이었거나 억지웃음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 빛을 모아 반지도 목걸이도 만들어 낄 수도 있고 걸 수도 있게 되었다.
아버지 마고자의 플라스틱 호박단추, 또 친구 남편의 마고자 금단추를 추모한다. 애도 일지를 쓴다. 다들 먼곳으로 아름다운 이사를 떠났어도, 그것들은 여기 남아 반짝이며 우리를 유혹한다.
*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
에이자 레이든 저 / 이가영 역 | 다른 | 2021년
-에이자 레이든Aja raden ‘보석 천 개의 유혹stoned'
#보석#돌#죽음#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