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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Jul 19. 2021

통계가 사람을 치유하다

나이팅게일 이야기

  

  백의 천사 또는 등불을 든 여인이라 불리며 간호사의 모범으로 알려진 나이팅게일은 사실 뛰어난 통계학자이다. 현재 전 세계의 병원은 나이팅게일이 제시한 방법으로 지어진다. 통계학자로서 의료 체계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친 군인의 사망자 수와 병균에 감염된 환자 수를 비교 분석했다.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병상의 적절한 간격을 계산했으며 위생개념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1858년 나이팅게일은 그 공로를 인정받고 여성 최초로 영국 왕립 통계학회 회원으로 선출된다.


  통계학자로서 나이팅게일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1853년 러시아와 터키는 크림반도에서 충돌했다. 1854년 영국 정부는 터키를 지원하기 위해 전쟁지역에 간호사들을 파견했다. 그때 나이팅게일은 영국 간호 사단을 지휘하는 간호장교였다. 야전병원의 상황을 본 나이팅게일은 충격에 빠졌다. 그녀는 코를 움켜쥐며 군의관에게 말했다.


  “아니 이게 병원인지 화장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병원의 위생 상태는 최악이었다. 침대 시트에는 제때 갈지 못해 고름과 핏물이 뒤섞여 악취가 진동했다. 썼던 붕대는 버리지 않고 돌려썼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환자가 유입된 탓이다. 그 탓에 환자들은 감염증으로 쓰러졌다. 감염증으로 사망한 환자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은 종일 반복되었다. 그녀는 우선 환자들의 위생과 영양 상태를 먼저 개선하기로 했다. 개인 식기를 구매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제공했다. 붕대는 새 걸 썼고 침대 시트는 더러워지면 바로 갈았다. 병원 바닥은 하루에 한 번씩 마루 걸레로 닦도록 지시했다.


  나이팅게일은 전쟁 중에 있었던 모든 일을 빅데이터로 만들었다. 병원에서 필요한 환자복, 침대 시트 심지어 수건의 숫자까지 날짜별로 빠짐없이 기록한 것이다. 그녀가 작성한 〈영국 군대에 관한 노트〉는 분량이 1,000쪽이 훌쩍 넘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병원에서 죽은 병사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보다 많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1856년 봄,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그녀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빅토리아 여왕이 그녀를 파티에 초청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여태껏 기록해온 통계를 바탕으로 여왕을 설득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숫자를 끔찍이 싫어했다. 숫자들이 잔뜩 나열된 자료를 여왕님께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숫자를 어린아이도 보기 쉬운 형태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그녀는 ‘장미 그림(Rose diagram)’이라 불리는 그래프를 만들었다. 숫자를 의미 있는 형태로 바꾼다는 것은 당시로써 엄청나고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장미 그림은 1854년 4월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30도씩 회전하는 그래프이다. 30도씩 회전한 한 칸의 간격은 1개월이다. 부채꼴 반지름의 길이는 1개월간 사망한 병사의 수를 나타낸다. 하늘색으로 칠한 부채꼴의 반지름은 전쟁터에서 사망한 병사의 숫자이다. 바깥쪽 회색으로 칠한 부채꼴의 반지름은 야전병원에서 사망한 병사의 숫자이다. 흰색은 기타 요인으로 사망한 숫자이다. 오른쪽 다이어그램은 위생 개념을 도입하기 전이고 왼쪽은 그 후이다. 오른쪽 다이어그램의 회색 면적보다 왼쪽이 훨씬 작음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다. 나이팅게일이 위생개념을 도입한 뒤 병원 내 군인의 사망률은 42%에서 2%로 줄었다. 

  나이팅게일의 노력을 알아본 여왕은 병원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왕립위원회를 편성했다. 장미 그림이 설득의 도구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병원은 사람을 치유하는 곳이다. 하지만 불과 몇백 년 전만 해도 병원은 죽음의 장소였다. 청결함을 지키지 못해 고약한 악취가 나고 쥐들이 돌아다녔다. 나이팅게일이 숫자를 설득의 도구로 잘 활용했기 때문에 지금의 병원은 깨끗하게 다시 태어났다. 그녀가 발명한 장미 그림을 보면 야전병원의 위생이 열악하다는 짙은 호소력과 환자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느껴진다. 여기 야전병원에서 감염증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환자들이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젠 숫자를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통계학으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린 나이팅게일을 기억하며 말이다.




로즈 다이어그램 이미지 출처 : 지상의 책. [책 미리보기]#3 나이팅게일에게 왜 통계가 중요했을까? 2019. 10. 4.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133066&memberNo=3917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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