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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Oct 30. 2021

꽃잎보다 낙엽을 만져주는 사람

사랑을 그릴 수 있다면 어떤 모양일까?

  

  고정점(fixed point)이란 연속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전과 후의 위치가 같은 점을 말한다. 연속적인 변화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니 간단한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동그란 컵 안에 든 미숫가루를 잘 녹이려면 빨대로 구석구석 잘 저어야 한다. 연속적인 변화란 마치 빨대를 젓는 과정과 같다. 빨대를 저으면 컵 수면에 있는 미숫가루들이 여기저기로 이동한다. 이때 빨대를 휘젓기 전의 위치와 휘저은 후의 위치가 같은 미숫가루는 항상 존재한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w자로 젓든 혹은 마구마구 젓든 간에 최소한 하나의 고정점을 가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의 빨간색 점이 시계 방향으로 저었을 때 고정점이다.

 우린 앞서 함수란 원인과 결과의 대응 관계임을 알았다. 시계 방향으로 젓기 전과 후의 관계는 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 고정점 A의 위치가 변함없음에 주목하라.

  마찬가지로 w자로 젓는 것과 마구마구 젓는 것 또한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 다음 그림에서 B와 C의 경우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W처럼 최소한 하나의 고정점은 반드시 가진다.

 고정점은 변화가 일어나기 전과 후가 항상 같으므로 f(x)=x로 나타낸다. f(   ) 괄호 안에 무엇을 집어넣어도 그 결과가 자기 자신이란 말이다. 즉 아무런 변화가 없다.


  컵 모양이 도넛 모양이거나 별 모양일 때 고정점은 과연 존재할까? 고정점은 도형이 볼록한 경우에만 존재한다. 볼록이란 도형 내부에 있는 임의의 두 점을 이어도 내부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동그란 컵 내부에 있는 두 점을 어떻게든 잡아도 반드시 컵 안에 있다. 하지만 도넛과 별은 컵 바깥을 지나는 경우가 존재하기에 볼록하지 않다. 그러므로 컵을 휘저으면 미숫가루가 모조리 움직인다.


  볼록한 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변환은 반드시 고정점을 갖는다. 위 정리를 브라우어르 고정점 정리(Brouwer fixed-point theorem)라고 말한다.


  사랑을 그려낼 수만 있다면 아마 볼록한 공간일 테다. 아무리 저어도 움직이지 않는 고정점이 반드시 존재할 테니까.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알 것이다. 벚나무의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어머니와 함께 가을 산행을 하러 가는 길이였다. 어머니가 말했다. “벚나무의 잎이 먼저 물들어야 가을이 다가온단다.” 난 고갤들어 벚나무의 단풍을 찬찬히 살폈다. 빨강과 주황이 함께 어우러진 나뭇잎은 하늘에 흩뿌린 듯이 반짝이는 햇살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봄이 아닌 다른 계절의 벚나무를 기억하는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사람들은 눈발처럼 흩날리는 벚꽃잎만 떠올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벚나무는 사계절 중 꽃이 필 때 제일 아름다우니까. 꽃잎이 떨어지면 사람들의 관심도 떨어져 나간다.


  삶이 벚나무 같은 사람들이 있다. 개그맨, 작가, 배우 등등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모두 그들이 피워낸 꽃잎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끝장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매번 꽃을 피워내야 했다. 이미 꽃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의 곁엔 발길이 끊겼다. 도대체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들,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정말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난 결코 아니라고 본다.


  사랑은 한결같다. 한결같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고정점처럼 늘 변함이 없어야지. 어떤 변화가 주어지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꽃을 피우건, 낙엽이 지건 나무는 나무이다. 차갑던, 뜨겁던 물은 물이고 설레던 사람이 편안함만 남았어도 그 사람은 결국 그 사람인 것을.     



 

 꽃잎을 어루만지기보다 구멍이 난 잎사귀를 어루만져주는 사람이길. f(x)=x 처럼 늘 변함없이. 그게 사랑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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