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재윤 Feb 26. 2022

당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장애는 다수가 규정해버린 기준일 뿐


  우리가 알고 있는 도형의 모양은 대부분 평면 위에서 다룬다. 만약 구면 위라면 어떨까? 평면에서 두 점을 잇는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이와 달리 지구와 같은 구면에서는 곡선이다.

  평면에서 두 점을 잇는 선분은 하나만 존재한다. 하지만 두 점이 구면 위에 있다면 두 점을 잇는 선분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가. 평면에서 직선은 무한히 곧게 뻗어 나가지만 구면에서는 노랫말처럼 유한한 원이다.

 

  구면에서 직선을 측지선(geodesic)이라 말한다. 측지선이란 직선처럼 인식하는 곡선을 말한다. 쉽게 말해 2차원에 사는 개미는 측지선을 무한한 직선처럼 보겠지만 3차원에 사는 우리가 우주선을 탄다면 길이가 유한한 원임을 알 수 있다.


평면에서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다. 하지만 구면 위의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보다 크다.

 구면 기하학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무척 당황스럽다. “두 점을 잇는 선분은 무한히 존재한다.”, “직선은 원이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보다 크다.” 하지만 구면에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단지 기준이 바뀌었을 뿐이다.


기준이 달라지면 도형의 모양이 달라지듯이 장애도 그렇다.


  장애란 무엇인가. 대부분 “신체적,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의학에서 정의한 장애의 정의다. 사회학에서는 장애를 “권력을 가진 다수가 힘없는 소수를 규정짓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는 다수에 따라 소수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의학에서는 절름발이가 장애인이다. 하지만 사회학에서는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이 절름발이로 태어났다면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소수가 되기 때문이다. 단지 기준이 달라졌을 뿐인데 우리가 사는 세계에선 무척 생소해 보인다. 마치 구면 위의 삼각형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께 걸음을 맞추면 된다. 장애는 저마다의 세계가 있다. 당신이 장애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세계로 먼저 들어가면 되지 않는가.” 영화 〈증인〉에 나오는 대사를 조금 각색했다. 의학에서 장애인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이지만 사회학에서는 다수가 규정해버린 기준일 뿐이다. 그들은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며 비장애인과 다른 세계를 가졌을 뿐이다.




  장애인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규정한 장애가 사실 장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전 24화 1+1은 꼭 2가 아닐 수도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